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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볼일도 없이 원고용지를 마주했다. 이런 게 진짜 수필이란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6월 19일이다. 맑은 날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메이지 42년 6월 19일이다. 나는 어릴 적에 묘하게 삐뚤어져서 자신을 부모님의 진짜 아이가 아니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형제 중에서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용모가 곱지 않아 일가족이 챙겨주는 통에 서서히 삐뚤어진 걸지 모른다. 한 번은 창고에 들어가 여러 서류를 찾아 본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 집에 출입하던 사람들에게 몰래 물어보고 다닌 적도 있다. 그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내가 태어난 날의 일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었죠. 저 작은방에서 태어나셨어요. 모기장 안에서 나셨지요. 굉장히 순조로웠어요. 금방 태어났지요. 코가 크셨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딱 잘라 가르쳐준 덕에 나도 내 의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평범함이 불만스러웠다.
얼마 전에 모르는 시인에게 편지를 받았다. 그 사람도 메이지 42년 6월 19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런 걸 인연 삼아 하룻밤 술이나 한 잔 하지 않겠냐는 편지였다. 나는 대답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남자이니 만나면 실망하실 겁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메이지 42년 6월 19일에 태어난 숙명을 당신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부디 그 소심함을 이해하고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의외로 솔직히 써냈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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