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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소설의 재미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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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란 본래 여자들이 읽는 것이지 소위 머리 좋은 어른이 얼굴색을 바꿔가며 읽거나, 하물며 탁상을 두드리며 독후감을 논하는 성질의 물건이 아닙니다. 소설을 읽고 자세를 고쳤다느니 고개를 숙였다느니 하는 사람은, 농담이라면 또 몰라도 그러한 행동을 한다면 미치광이의 행동이라 해야 할 테지요. 이를 테면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아내가 소설을 읽고 남편이 출근 전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묶으며 요즘 어떤 소설을 읽냐고 묻습니다. 아내가 대답하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가 재밌었어요. 남편이 조끼 단추를 잠그며 바보 취급하듯이 묻길 어떤 내용인데. 아내가 살짝 상기되어 그 줄거리를 이야기하다 스스로의 설명에 감격해 웁니다. 남편은 웃옷을 입으며 말하길 흠, 그건 재밌겠네. 그렇게 남편은 출근하여 밤에 어떤 살롱에 출석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길 요즘 소설은 역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지요.
 소설이란 건 이렇 듯이 정취 없는 물건으로 실제로는 부녀자만 속일 수 있으면 그걸로 대성공입니다. 그 부녀자를 속이는 방법도 여럿 있지요. 때로는 근엄을 꾸미고, 때로는 미모를 띄우고, 때로는 명문 출신이라 거짓말하고, 때로는 보잘 것 없는 학식을 끌어모아 드러내고, 때로는 자기 집의 불행을 부끄러움도 없이 발표하여 부인들의 동정을 사려는 의도가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라는 바보들이 그런 걸 띄어주고, 또 자신이 밥 먹는 길로 삼고 있으니 어처구니 짝이 없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말해두는데 옛날에 타키자와 바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쓴 글은 참으로 재미가 없었지만 그 사람의 사토미 팔견전의 서문에 부녀자들이 잠 깨는 용도로라도 쓰면 다행이겠다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녀자가 잠 깨는 용도로 쓸 소설을 위해 눈을 다친 후로도 구술필기를 계속했다니 바보 같지 않습니까.
 여담이 되겠는데 저는 언젠가 후지무라란 사람의 동트기 전이란 작품을 잠들지 못 하는 밤에 아침까지 전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잠이 오기 시작해 그 두꺼운 책을 머리맡에 던져두고 꾸벅꾸벅 졸았더니 꿈을 꿨습니다. 그게 또 조금도, 전혀 그 작품과 무관한 꿈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사람은 그 작품을 완성하는데 십 년을 들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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