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으려 한다. 요즘 술은 인간을 비굴하게 만드는 듯하다. 과거에는 술을 통해 소위 활력을 길렀다는 모양인데 요즘은 단지 정신을 얄팍하게 만들 뿐이다. 요즘 들어선 술을 미워하는 지경이다. 만에 하나 금주를 할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술잔을 박살 내야 한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정신이 얼마나 인색해져 있는가. 한 병의 배급주에 열다섯 개의 눈금을 긋고 매일 한 눈금씩 마시고 이따금 지나쳐 두 눈금이라도 마시면 곧장 한 눈금치 만큼의 물을 붓고는 병을 눕혀 흔들어 술과 물의 화합 발효를 꾀하고 있으니 정말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 배급 나온 540ml 가량의 소주에 질 나쁜 녹차를 한가득 넣고 그 갈색 물을 작은 잔에 붓고는 이 위스키엔 찻기둥이 서있군, 유쾌해 하고 허세를 부리며 호쾌하고 웃는 와중에 옆에 자리한 아내는 입꼬리도 올리지 않으니 차라리 비참할 정도의 광경이다. 또 과거에야 저녁 술상 중에 먼 곳에 지내는 친구를 보면 마침 잘 됐다며 상대 좀 해달라고 한 잔 따르는 등 활기로 넘쳤지만 지금은 한사코 어둡기만 할 뿐이다.
"자 그럼 슬슬 한 모금할까? 현관 닫고 문 잠그고 아예 덧문까지 내려버려. 누가 보고 부러워하기라도 하면 술맛 안 나잖아." 고작해야 한 모금뿐인 저녁술을 누가 부러워한다는 말인가. 정신이 인색해지니 바람 소리, 새 울음소리 하나에도 놀라고 발소리 하나에 식은땀을 흘리며 지독히 큰 죄라도 진 것 같은 심정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는 듯한 말 못 할 공포와 불안과 절망, 분노와 원망과 기도 따위로 실로 복잡한 심정으로 방의 불까지 꺼놓은 채로 등을 둥글게 말고 홀짝홀짝 핥듯이 마시고 있다.
"실례합니다"하고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와버렸군!" 안에 들여서 이 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이 병은 선반에 숨겨라, 아직 두 모금이 남아 있다. 내일과 모레 마실 몫이다. 이 술병에도 아직 세 모금 가량 남아 있는데 이건 자기 전에 마실 거니 이대로 두어라. 이대로 두어서 만지지 말아라. 이불이라도 깔아두어라. 자, 다 되었느냐. 방을 둘러보더니 대뜸 아양 떠는 목소리로,
"누구시죠?"
아아, 쓰면서도 구역질이 난다. 인간도 이렇게 되어서는 더 이상 구제할 도리가 없다. 활력을 얻었다 할 수 없다. "달 뜬 밤, 눈 내리는 아침, 꽃 옆에서도 마음의 목을 축시며 곳곳의 여행을 거드는 자"라는 과거 사람의 우아한 심경을 조금은 배워서 반성해야만 한다. 그렇게나 술을 마시고 싶은가. 수염까지 기른 다 큰 어른들이 저녁노을을 받아 땀을 흘리며 비어 홀 앞에 예의 바르게 줄을 만들고 이따금 발꿈치를 들어 비어 홀의 창문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젓고는 한숨을 내쉰다. 순서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내부는 아직도 혼잡하기 짝이 없다. 팔꿈치와 팔꿈치가 부딪히며 서로 옆자리 손님을 견제하고 지지 않는다며 큰 소리로 맥주 달라고 소리 치지를 않나, 도호쿠 억양으로 빨리 가지고 오라 재촉하지를 않나. 이렇게 소란 법석을 떨며 겨우 한 잔의 맥주를 받아 거의 아무 생각도 않고 다 마셔버리면 다음 손님이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이 사람을 밀쳐내며 끼어든다. 즉 멍하니 물러나야만 한다. 좋아, 다시 마시자.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또 문 바깥의 긴 행렬의 끝에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그런 걸 서너 번 반복하면 심신 모두가 지친 채로 아, 취했다 하고 힘없이 중얼거리면서 돌아온다. 나라에 술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요즘 들어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다. 조금 부족해졌다는 말이 도는 통에 이제까지 마시지 않았던 사람도 이참에 그 술이란 걸 사보자, 어떤 일이나 경험해 볼 일이다, 실행해보자 하고 괜히 소인배의 욕심을 부려 배급주를 받아 간다. 비어 홀에도 한 번 돌격해서 뒤섞여 본다. 어떤 일에도 져서는 안 된다. 오뎅집이란 곳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카페란 곳도 이야기론 들었는데 어떤 게 나올까.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 그런 보잘것없는 향상심에 어느 틈엔가 어엿한 음주가가 되어 돈이 없을 때에는 한 모금 술을 아쉬워하고 찻기둥이 선 위스키를 기뻐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람도 제법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 소인배는 도리가 없다.
이따금 주점을 찾으면 정말로 불쾌한 일이 잦다. 손님의 얄팍한 허세와 비굴함, 가게 주인의 오만함과 욕심. 아 정말이지 술이 싫다. 그렇게 갈 때마다 금주 결심을 새로 하게 된다. 하지만 도무지 때가 무르익지 않은 건지 아직도 단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가게에 들어간다. "어서옵쇼"하는 말과 함께 점원이 웃으며 맞이해주는 건 옛날 일이다. 이제는 손님 쪽이 웃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손님이 가게 주인이나 여종업원에서 비굴한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인사하여 묵살당하는 게 통례가 되는 듯하다. 정성스레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며 가게 주인을 "선생님"하고 부르며 생명 보험 권유라도 하러 온 거 같은 신사도 있으나 이 또한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며 역시 묵살당하는 게 통례이다. 더 힘을 주는 녀석은 들어오자마자 가게 카운터 위에 놓인 화분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안 되지. 좀 더 물을 주는 게 좋아." 주인에게 들리라는 양 중얼거리고 스스로 화장실 물을 두 손으로 퍼 와 첨벙하고 화분에 끼얹는다. 동작이 큰 통에 화분에 들어가는 물은 고작해야 두세 방울이다. 주머니서 가위를 꺼내 가지를 다듬어준다. 화분 가게서 서비스라도 해주는 건가 싶으면 그렇지도 않다. 의외로 은행의 중진이기도 하다. 가게 주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주머니에 가위를 꽂고 다니는 걸 테지. 하지만 노력한 보람도 없이 역시 묵살당하고 만다. 중후하게 가도 화려하게 가도 무엇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같이 차갑게 묵살당한다. 하지만 손님도 그런 묵살에 겁먹지 않고 어떻게 한 잔이라도 더 마시고 싶다 바라는 마음에 끝내는 제가 종업원이라도 된 마냥 일일이 "어서옵쇼"하고 외치고 누가 가게를 나가면 "감사했습니다"하고 술렁인다. 정말이지 착란이자 발광의 광경이다. 정말로 애처롭기 짝이 없다. 주인은 홀로 조용히,
"오늘은 도미 소금구이야"하고 중얼거린다.
곧 한 청년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그거 참 고맙군요! 정말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다행이야 다행." 속으로는 좋은 일 하나 없다. 그거 참 비싸겠네. 나는 이제까지 도미 소금구이를 먹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지금은 크게 기쁜 척을 해야 돼. 힘들기도 해라 젠장! "도미 소금구이라니 참을 수가 없는 걸."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다른 손님도 질 수야 없다. 자기도 달라며 한 접시 이 엔의 소금구이를 주문한다. 이걸로 한 병은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은 무자비하다. 갈라진 목소리로,
"돼지고기 조림도 있어."
"아니, 돼지고기 조림?" 노신사가 빙긋 웃으며 "기다렸습니다"하고 말한다. 물론 속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노신사는 이빨이 좋지 않아 돼지고기를 잘 씹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돼지고기 조림인가. 나쁘지 않은걸. 주인장이 말이 좀 통해." 정말로 뻔히 보이는 멍청한 아첨을 하면서 지지 않으려는 다른 손님도 한 접시 이 엔의 수상한 조림을 주문한다. 하지만 주변에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낙오하는 자도 나타난다.
"저는 돼지 조림은 됐어요"하고 의기소침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자리서 일어나 "얼마죠?"하고 묻는다.
다른 손님은 이 불쌍한 패배자의 퇴진을 바라보면 바보 같은 우월감이 올라오는지.
"아아, 오늘은 잘 먹었군. 주인장 좀 더 맛있는 거 없나? 한 접시 더 주게나"하고 미친 거 같은 소리까지 한다. 술을 마시러 온 걸까, 먹으러 온 걸까.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술이란 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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