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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하루오37

철사 세공 시 - 사토 하루오 "철사 세공으로 시를 지어라." ――이 말은 내가 아끼는 친구 호리구치 다이가쿠가 일반 시인에게 한 충고였다. 또 근대시의 창작에 대한 선언처럼도 느껴진다. 소위 감상적인 시정을 내려놓고 드라이한 시를 추구한 말이지 싶다. 그렇게 그는 감상의 들판서 시의 꽃을 꺽지 않고 지성의 산에서 시의 돌을 찾았다. 그의 대담한 뜻은 민감하지 않은 나도 모르지는 않는다. 시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성을 도입해야 마땅치 싶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우리가 우리의 시의 소재로 쓰는 일본어란 철사가 아니라 견사이지 않은가. 일본어는 참으로 광택이 풍부하며 유연성이 뛰어나 한 마디 한 마디에 부드러운 심정이 담긴 감정이 세심한 말이다. 이는 즉 철사성이 빈곤한 말이란 뜻이 되지 않을까. 호리구치 군이 우리에게 그 좋은 충고를.. 2021. 11. 14.
신구 - 사토 하루오 내 고향은 쿠마노의 중심인 신구新宮의 한 마을이다. 신미야나 니미야라고 말하면 사람들한테 웃음을 살 테고 나로서는 고향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향문을 떠난 지 오십 년이 되었으니 고향의 신년이란 즉 내 유년 시절의 신년이란 셈이다. 천하는 태평했고 소년은 즐거웠다. 우물 펌프의 약수로 척척 얼굴을 씻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남자 형제 셋이 모여 별을 올려다보며 하얀숨을 내쉬고 집의 뒷산인 미즈노 씨 삼만육천오백석의 단카쿠성, 소위 오키미성의 니노마루 뒤에서 태평양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붉은 파도가 올라오는 건 신년에 걸맞은 활동적인 구경거리로 이를 보는 게 신년을 맞이한 우리집의 연레행사였다. 눈앞에는 깃발을 수없이 나부끼는 배가 많이 모여 있었다. 과거 쿠마노가와의 강입구에는 나루터가 자리해 있.. 2021. 11. 12.
행복 속에서 - 사토 하루오 이게 여섯 번째 연남일까.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더 해도 될 거 같지만 세 번은 어려울지 모르겠다. 메이지 25년 임진 4월 9일은 얼마나 복이 많은 날이었는가. 나는 삼라만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주어졌고 또 스승이나 벗, 가족 모두의 애정 속에서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생각해도 어지간히 행복한 처지지 싶다. 작년은 우연히도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니 올해는 꽃을 충분히 보고 싶다. 또 달이나 눈, 그 외에 살아서 봐야 하고 즐겨야 할 것도 많다. 행복하기에 좀 더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게 없지 싶다. 수많은 습작을 종잇짝 산에 묻어버린 늙은 나는 이는 올해 주제인 "종이"에 곤란해 입으로 읊어 본 것인데 사실 나는 별로 종잇짝을 만드는 편도 아니고 또 자신.. 2021. 11. 11.
사람 제각기의 고생 - 사토 하루오 늙으면 추해진단 말이 있는데 나는 옛날부터 그 말을 무척 싫어했다. 지독히 유치한 관념적인 말로 노인을 무조건 주눅 들게 하는 짓궂은 정치적 치사함이 담겨 지독히 순수하지 못한 점에서 무엇보다도 멍청한 말인 게 싫다. 늙는 게 추하다면 소년도 장년도 인간은 모두 처하리라. 청춘이나 장년만이 아름다움처럼 여겨지는 건 통속적이고 유치한 관념이다. 소년과 장년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노년에게도 아름다움은 있으리라. 노년의 아름다움은 소년과 장년의 아름다움과 조금 종류가 다르리라. 이를테면 백발 머리도 그렇다. 그것도 꽤나 아름답다. 그런 걸 소년과 장년의 미의 척도로 보니 추해질 뿐이다. 나는 노년만이 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도 죽음도 별달리 추하다 여기지 않는 탓인지 늙음이 죽음을 향해 휘청이며 가는 추.. 2021. 11. 10.
보기 드문 문학적 천재 - 사토 하루오 아쿠타가와상의 계절이 되면 항상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린다. 그가 깊은 집념으로 상을 받으려 한 걸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한 번 쓴 적도 있다. 당시에 그걸 폭로 소설인지 뭔지로 읽은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라 한동안 버려둔 채 작품집에도 넣지 않았으나 요번 '분게이'에 재록된 걸 오랜만에 다시 읽고 일언반구의 악의도 없단 걸 스스로 확인했기에 다시 한 번 안심하고 작품집에도 추가했다. 그 작품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고 되려 깊은 우정에서 나온 충고가 담겨 있다. 이는 지금 냉정히 읽어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작품은 조심스레 돌려 말하는 바 없이 사실을 고스란히 적어두었다. 나는 사실이라면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해도 된다 믿고 있다. 세속인이 아니라 적어도 문학에.. 2021. 11. 8.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 나는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을 가장 뛰어나다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만 쓴다고는 할 수 없다. 애당초 내 소설도 대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뎃셍 없는 그림은 성립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이야기' 위에 성립된다.(내 '이야기'란 말은 단순히 '줄거리'란 뜻이 아니다) 만약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어떠한 소설도 성립하지 않으리라. 따라서 나는 '이야기' 있는 소설에도 물론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이후로 갖은 소설 혹은 서정시가 '이야기' 위에 성립된 이상, 대체 누가 '이야기' 있는 소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바리 부인" 또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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