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사토 하루오

철사 세공 시 - 사토 하루오

by noh0058 2021. 11. 14.
728x90
반응형
SMALL

 "철사 세공으로 시를 지어라."
 ――이 말은 내가 아끼는 친구 호리구치 다이가쿠가 일반 시인에게 한 충고였다. 또 근대시의 창작에 대한 선언처럼도 느껴진다. 소위 감상적인 시정을 내려놓고 드라이한 시를 추구한 말이지 싶다. 그렇게 그는 감상의 들판서 시의 꽃을 꺽지 않고 지성의 산에서 시의 돌을 찾았다.
 그의 대담한 뜻은 민감하지 않은 나도 모르지는 않는다. 시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성을 도입해야 마땅치 싶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우리가 우리의 시의 소재로 쓰는 일본어란 철사가 아니라 견사이지 않은가. 일본어는 참으로 광택이 풍부하며 유연성이 뛰어나 한 마디 한 마디에 부드러운 심정이 담긴 감정이 세심한 말이다. 이는 즉 철사성이 빈곤한 말이란 뜻이 되지 않을까. 호리구치 군이 우리에게 그 좋은 충고를 주었을 때 그가 외국 생활 탓에 일본어의 숙명을 잊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외국어에 능통한 그는 조국어를 떠올렸다 그 너무나 유연성이 풍부한 말에 화가 나서 이 녀석을 철사로 만들어주리라 저주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곤란함에 정면으로 맞선 게 잊을 수 없는 그의 시가 가진 업적이다.
 일본어는 확실히 너무나도 많은 아름다운 여성들의 심정의 망령에 휘둘리고 있다. 마치 감상의 들판을 꽃다발처럼 만든 게 일본어다. 그건 또 수많은 여인들의 슬픔에 엮여 그리도 유연하고 그리도 광택 아름답게 되었으리라.
 일본의 시어는 여인들의 우타와 함께 발달한 걸로 여겨진다. 나는 국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여인들의 망령들이 붙들리는 걸 미처 끊어내지 못하였고 아끼는 친구의 충구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적 정서를 버린 채 고전파 시인에게 기울어졌다. 다행히 일본어의 마지막 화염을 불태우고 싶은 게 내 덧없는 꿈이기도 하다.
 옛 여인들이 모여 이만큼 아름다운 견사로 만든 일본어를 근대 여인이 얼마나 철사로 만들까. 혹은 더욱 세련되고 질 좋은 견사로 만들까. 혹은 화학섬유가 될까. 나는 이걸 기대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