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구치 다이가쿠는 에치고나가오카의 번토 집안서 아버지 쿠마이치가 도쿄 제국 대학서 유학 중에 혼고의 거처서 태어났다고 한다. 나와 같은 메이지 25년생인데 그는 1월이고 나는 4월이라 나보다 백 일은 더 살았다. 둘이 나란히 열아홉일 적의 어떤 날에 신시샤의 우타카이서 만난 게 첫 대면으로 요사노 아키코 씨의 소개를 받아 교우를 맺었다. 그 후로 사십칠 년 동안 함께 좋은 농담 나쁜 농담 섞어가며 담소를 기뻐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막역한 친구이며 내 분신이란 느낌도 든다. 이 오랜 교우는 전적으로 그의 너그러운 성미에 이유를 둔다. 노녀에 이르러 그 시와 작품이 점점 가경에 들어서는 건 그가 타고난 시인이란 증명이리라. 소년일 적부터 동문끼리 시를 쓰고 마찬가지로 카후 선생님을 흠모하여 미타에 다녔다. 그가 먼저 아버지가 공사로 재임한 브라질을 찾기 위해 미타를 떠났고 이어서 나도 미타를 물러났다. 그는 그 후로 십육 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해외에 머물려 나서서 신시대의 시와 글을 애독했다. 그렇게 번역한 "월하의 한 무리"란 시집은 그의 업적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 외에 폴 몰랑의 단편집을 뛰어나게 번역하여 문단에 공헌한 바 적지 않으니 오늘날 예술원회장으로 추천받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예술가 중 시가 쪽에는 카와이 스이메이 이외에 시의 회원이 없고 무로우도 나도 소설가로서 회원 자격을 두고 있으니 여기에 시단의 노신예 호리구치 다이가쿠를 시가 분과회 회원으로 참여시킨 건 예술원의 조치 중 가장 정확하다고 해야 하리라. 내가 항상 장난스레 말하길 나는 미타를 중퇴했으나 호리구치는 졸업했다고 말한다. 그의 여러 번역에 계발을 받은 바 적지 않으니 이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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