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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928

'비극희극' 광고 - 키시다 쿠니오 *비극희극은 인생 속에서 무대를 보려 하는 자의 점안경이다. *비극희극은 근대 연극의 미궁을 찾는 자를 위해 편성된 신판 안내서이다. *비극희극은 지금의 연극을 보러 가지 않는 사람들을 관객으로 삼는 이동소극장이다. *비극희극은 또 극을 논하는 것밖에 재능이 없는 예술적 주점이다. *마지막으로 비극희극의 일부는 나의 빈곤한 노트이다.(키시다 쿠니오) 2022. 11. 3.
어머니의 심리학 - 키시다 쿠니오 어떤 지인 소아과 의사가 내게 말했다. '요즘에는 건방진 엄마가 늘어서 진찰할 아이의 병명을 먼저 말하곤 해. 지금 이런저런 치료를 하는 거죠? 하고 건방 떨기도 하고. 곤란하기 짝이 없어. 마치 엄마가 자신의 의학 자식에 보증을 받으려고 우리를 찾아온 거 같아. 그런 건 대개 오진인 경우가 태반이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게 의술도 다를 바 없어."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왜 세상은 이리도 안 풀리는 걸까 싶었다. 학교와 가정의 협력 내지는 연락이란 게 이따금 교육자의 입에 오르고 있다. 아이의 성적이 나빠지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원인을 어머니와 학교 교사가 솔직히 연구하는 길이 어딘가에 만들어지고 있는가? 자기 아이의 의무교육을 맡겨야 할 학교의 방침에 아이의 모든 장래와 그.. 2022. 11. 2.
노가미 군의 첫 번째 희곡 - 키시다 쿠니오 '꿈을 먹는 여자'는 노가미 아키라 군의 첫 희곡으로 나는 작가 본인에게 낭독을 받아 제1막에 이미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곳곳에 산만한 부분은 있으나 어찌 됐든 마지막까지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건 드문 일이다. 나는 불평하는 법 없이 구제점을 주었다. 그 사실이 작가에게 좋은 일이길 바란다. 문학좌가 중의일결, 이를 상연목록에 올린 것도 내가 거들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 작품의 힘이란 걸 믿는다. 더더욱 재밌어 질 듯한 연극이다. 어디가 재미있는가. 무엇보다 작가가 연극을 사랑하며 어느 정도 연극이란 걸 알고 있어 무대의 매력으로 만들어질 여러 조건을 잘 음미하여 결코 비루하고 속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오늘날 대중의 관심에 호소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물론이요 대다수의 작가가 .. 2022. 11. 1.
'홍당무'를 보고 - 키시다 쿠니오 영화 '홍당무'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건 감독 뒤뷔베가 단순히 르나르의 소설 및 희곡에서 그 주제를 따온 것만 아니라 르나르식의 '문장적 표현'을 영화의 리듬으로 구성해보려 꾀했다는 점에 있다. "이미지의 사냥꾼"인 원작자는 어떤 의미에서 카메라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나 슬프게도 암시와 간략이란 점에서 영화는 문학에 한 걸음을 양보해야만 한다. 단 르나르의 작품 자체에서 자연과 생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일본 독자에겐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점이며 뒤뷔베의 영화적 표현으로 프랑스 농촌을 둘러싼 빛과 어둠이 우리의 마음에 또렷이 다가온다. 배우도 적합하다 해야 하리라. 주인공 '홍당무'를 연기하는 리난 소년은 지나치게 미소년이란 느낌이란 게 결점일까. 어머니 폰츠네 부인은 우화적 인물로서 가.. 2022. 10. 31.
'남방화필기행' 서장 - 키시다 쿠니오 아카시 테츠조 군은 날카로운 감각의 화가이며 '살아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진 자연과학자이고 심지어 인간의 원시적 모습을 가장 사랑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그 성정과 육체의 특수한 편향 탓인지 소위 '남방'의 흙과 하늘에 끌렸고 이따금 표연함과 주머니 하나를 어깨에 짊어진 채 바다를 건너 붉은 길의 태양을 받아 홀로 환희의 소리를 질렀다. 방랑 예술가라 부르기엔 너무나 건강한 그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기괴한 환상이 아닌 신선한 감동이다. 소위 '남방진출'에 뜻을 둔 이들의 얼핏 장엄한 마음가짐보다도 나는 그의 피부와 혈액이 이야기하는 '남국의 냄새'를 더할 나위 없이 높게 산다. 기록의 평가 여부는 꼭 '알린다'에만 있지 않으며 되려 '느끼게 한다'의 깊이로 정해진다. 소식통의 소개가 왕왕 마음에.. 2022. 10. 30.
'홍당무' 역자의 말 - 키시다 쿠니오 (느끼는 바 있어 이 글을 특별히 넣는다) 이 번역은 온전히 자신의 오락으로 했다 해도 좋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끝내는 고속으로, 이래저래 오 년이 걸렸다. 소사쿠겟칸, 분게이슌주, 사쿠힌, 신카카테키분게이, 시, 겐지츠, 신세이넨, 카이조 등 여러 잡지서 조금씩 발표했다. 가장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이 소설을 작가 본인이 각색해 같은 제목의 희곡으로 만들었다. 이를 존경하는 친구 야마다 타마키가 7,8년 전 '적발'이란 제목으로 번역해 이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오늘날 르나르의 'Poil de Carotte'는 '적발'이란 번역명으로 통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적발'이란 제목도 물론 좋다고 보지만 본래 번역하기 어려운 제목이니 야마다의 '적발'은 야마다의 전매로 두는 게 좋겠지 싶어..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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