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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245

생트뵈브 선집 추천사 - 키시다 쿠니오 비평은 과학이자 예술이란 의미에서 생트뵈브는 그야말로 비평가의 전형이다. 비평 대조는 그에게 예외 없이 날카로운 메스가 드리워져 숨겨진 장점을 드러냈다. 프랑스 문학의 이해는 그의 '독설'에 신세 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테지. 단지 비평에 매료되는 걸 바라는 자 또한 그의 업적을 한 번 둘러봐야 한다. 2022. 6. 7.
'국어문화강좌' 감수자의 말 - 키시다 쿠니오 국어 문제는 이미 논의의 시대를 지나 착착 실천의 시대가 되었다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포함한 영역이 더욱 퍼지길 바라는 입장상 갖은 방면에서 의견을 들어 그 모든 해결에 이를 법한 방책을 국가가 갖춰야 한다 믿고 있다. 국부적이거나 혹은 본말을 생각하지 않는 주장의 난립, 대치를 이참에 한 번 음미하고 정리해 우리 일본어를 진정한 의미로 풍부하고 순수하며 강한 걸로 만드는 책임을 국민 전체의 염원으로서 이루고 싶다. 아사히신분샤의 '국어 문화 강좌' 기획은 그런 내 생각을 만족시켜 줄 사업의 하나이며 우리의 '말'을 사랑하고 이를 엄격히 기르려 하는 열성 있는 동업자 제군의 지침이 되리라 싶다. 2022. 6. 6.
취미'의 초원에 - 아나톨 프랑스 전집 서 - 키시다 쿠니오 인간이 평생 속에서 적어도 한두 번은 정신의 놀이로 시도해볼 법한 '취미'의 초원. 이 작가만큼 사람을 그 영역에 끌어 들이는 사람이 달리 있을까. 기지나 아이러니함을 경멸하는 건 좋다. 하지만 프랑스의 관용한 미소에 이끌리는 자는 감동 위에 무릎 꿇어 조용히 채찍을 휘두르는 문체의 매력에 인연이 없는 사람이리라. 그에겐 사상이 마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독자는 늘 가벼운 만남의 동반자인 일류 화술가의 말투를 귀로 주우며 흠뻑 빠져 가리라. 심지어 그 사상의 무게는 스스로 이를 받쳐줄 수 있을 정도로만 그쳐 있다. 단지 성가신 게 있다면 작가의 단순함을 치장한 어휘의 어두움을 그럴싸한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다. 번역에도 여러 번역이 있어 마땅하지만 이번 단편 전집에서는 그 방면의 정예가 빠짐 없.. 2022. 6. 4.
'현대연극론 증강보충판' 후기 - 키시다 쿠니오 다시 한 번 나를 위해 열린 연극의 문은 내게는 그리운 고향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과거의 내 친구이자 동료였던 수많은 작가, 배우, 연출가, 무대 감독, 무대 미술가 등이 제각기 곤란한 시대의 시련을 견뎌 주목해 마땅할 업적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선 새로운 재능의 싹이 희미하게나마 건전히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당연한 사실에 내게 희망과 용기를 주지만 한편으론 연극 전체에 걸친 폐해, 연극의 진보를 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았다. '소위 신극'의 도중에도 이대로는 결코 광명이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과거에 반복한 주장을 앞으로도 반복하여 주장할 필요가 있다 통감한다. 다행히 내 발언은 드디어 불필요한 잡음에 가로 막히는 일 없이 초심을 가진 사람들의 귀에 전해지는 때가 왔다... 2022. 6. 3.
15년 - 키시다 쿠니오 우리가 문학좌를 시작하여 이래저래 십오 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을 했는가. 그 부분에 엄격한 자기평가를 해도 좋을 듯하다. 확실히 개인적으로는 배우 다운 배우도 나오기 시작했다. 산파역인 내가 나이를 먹은 걸 생각하면 극단의 폭도 무게도 갖춘 거 같다. 하지만 일하는 양에 비해 질 쪽은 전체적으로 그리 높아진 거 같지 않다. 원인은 많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전쟁이리라. 적어도 예술 활동면에서 무력이 무언가를 결정짓는 시대만큼 불행한 건 없다. 대신 패전이란 경험은 훗날 어떤 게 올지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귀중한 걸로 남으리라 믿고 있다. 문학좌는 현재 지그재그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신선한 싹도 자라려 하고 있다. 올해는 희곡계에 연이은 변종이 나타날 거 같은 기척이 느껴지.. 2022. 6. 3.
생활에서 배우다 - 눈에 띄지 않는 습관 - 키시다 쿠니오 어릴 적부터 내 몸에 밴 습관이라면 평범한 일본인의 습관 이외엔 이렇다 할 게 없다. 단지 지금 생각하면 이것만은 더 많은 일본인이 그랬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극히 사사로운 일이지만 의외로 사람 눈에 들지 않는 습관이 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심어졌다. 노년이 된 지금 와서도 그 습관이 별 무리 없이 이어지고 있어 남이 신기해할 때가 있다. 한두 시간 서있는 정도는 조금도 어려울 게 없다는 게 바로 그렇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리에 앉으려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다퉈가며 앉으려 하나 싶어진다. 또 젊은 남자가 앉고 그 옆에 노인이나 여자가 서있는 걸 보면 참 우스우면서도 부끄러워진다. 서서 자리를 양보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한다. 젊은 남자가 도덕을 ..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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