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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245

그 얼굴 그 목소리 - 키시다 쿠니오 모지에서 지롱까지 물론 배 위이다. T라고 자칭한 남자――장화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남자――콧수염을 기른 남자. "이렇게 조용한 건 드물다네요." 이쪽은 또 앞뒤로 뚜껑이 달린 금시계를 몇 번이나 꺼내보는 남자――볼일이 없음에도 선원한테 말을 거는 남자――누구에게나 밥을 같이 먹자 물어보는 남자. "아버지가 청일 전쟁 때 통역으로……" 그 아버지 사진을 꺼내러 가는 사이에 나는 내 객실로 내려갔다. 홍콩 ××기선회사지점장――알자스 출신의 프랑스인――아오지마에서 일본군 포로가 된 남자――독신. 매일 아침 모터보트로 가게에 출근해 매일 밤 자동차로 귀가하는 남자. "아아, 많이 취했네. 제가 춤 한 번 춰보겠습니다." ――(멋대로 하라지) "여자는 역시 일본 여자지요." ――(바보, 넥타이나 제대로 매.) .. 2022. 9. 17.
매소적 무대를 향한 공격 - 키시다 쿠니오 현대 일본 문화는 여러 부문에서 좀 더 엄밀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보아 가장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 여겨지는 연극에 몸을 담고 있으니 이 현상의 우울한 경향을 지적해보려 한다. 먼저 도쿄에 자리한 주된 상업 극장의 상연 목록을 보면 '근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희곡을 상연하는 경우는 예외라 해도 좋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 중에도 고등 교육을 받았다 할 사람은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극장은 소위 '고급 작품'을 기피하며 그런 걸로는 관객을 부를 수 없다. 생각한다. 또 손님만 와준다면 아무리 '볼품 없는 각본'이라도 고맙다는 양 무대에 올린다. 배우 중에는 학식은 별개로 상당한 예술적 감각을 갖춘 자도 있으니 그런 걸 진지하게 연기할 기력은 없으리.. 2022. 9. 16.
봄날 잡기 - 키시다 쿠니오 작년 가을부터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신문사에서 받은 일이 있으니 조심하며 입원하거나 거처를 바꾸곤 했다. 이야기를 하면 더욱 몸이 안 좋아진다. 되도록 사람을 피하고 만나도 듣기만 하는데 이것도 꽤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동안 여러 방면의 사람과 알게 되었다. 어디나 매한가지겠지만 사람이 오면 반드시 전쟁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현상을 두고 여러 관찰이나 평판을 내린다. 의외로 서로 남이 모르는 걸 알고 있구나 하고 놀랐다. 하지만 내가 가장 기이하게 여긴 건 우리는 그 '모른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고 이래저래 판단한단 것이다. '모든 걸 아는 사람' 입장에선 그러한 판단을 황당하다는 건 참으로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걸 '알고 있기에' 그 판.. 2022. 9. 15.
이번 출품에 관해 - 키시다 쿠니오 오카다 테이코 씨의 '클래스회'는 읽어보고 꽤나 재밌다 생각했다. 여자만 오르는 무대란 구조는 어찌 되었든 여자가 아니고선 쓰지 못하는 심리와 정경의 뉘앙스가 훌륭히 나를 사로잡았다. 여배우들의 '연습곡'으로서도 상당히 쓸만하며 그럴싸하다. 여기에 남자만 오르는 무대 한 막을 나란히 걸 수 있다면 그것도 또 독특한 맛이 내지 않을까 하고 순간 흥행사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도쿠가와 무세이 군이라는 어려운 상대를 위해 연습 편의를 봐주어 적은 머릿수의 한 막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문득 머리를 스친 게 타츠노 씨의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이게 우연히 남자뿐이라서 살짝 간질간질하던 참이었다. 또 하나는 코야마 유시 군의 '어족'이었는데 이는 같은 작가의 대표작 '세토우치해의 아이들'의 '여동생'.. 2022. 9. 14.
사변 기념일 - 키시다 쿠니오 사변은 이 년 내내 이어졌다. 아직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차례로 새로운 사태가 발생한다. 예상한 바이긴 하나 국민은 그때마다 얼굴색을 바꾸지 않는다. 어떻게든 잘 풀리고 있다 생각한다.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는 풍조가 있다. 일본 국민은 그런 훈육을 받아왔다. 오늘까지는 그걸 관철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론 끝없이 경고가 울리고 있다. 국민은 좀 더 긴장해야만 한다. 시국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만 한다. 정부는 선전에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어떻게 해야 국민이 진정으로 '전장에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론 불가능한 것만큼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도 없다. 전후의 국민 대다수가 연기 아래에서 목숨을 바친 동포의 위대한 업적에 감격하면서도 .. 2022. 9. 13.
연습장에서 - 키시다 쿠니오 문학좌 3월 공연은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로 정해져 내가 연출을 맡게 되었다. 진자이 키요시 씨의 번역이 완성되는 걸 기다려 연습에 들어간다. 병상에서 막 일어난 나로선 매일 오다와라서 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연습장 옆에 숙소를 잡는다. 마음을 크게 먹어 신인들을 기용했기에 어떤 결과가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이 '연극'은 일본에서도 자주 상연되었다. 오래된 사례는 별개로 쳐도 츠키지 소극장 이후로 두세 명의 연출가가 제각기의 방식으로 '밑바닥에서' 일본판을 만들어냈다. 나도 그중 하나를 보았는데 도무지 30년 전에 파리에서 본 모스크바 예술좌의 '밑바닥에서'가 눈앞에서 어른거려 떠날 줄 몰랐다. 이 완벽하다 해도 좋을 러시아 근대극 무대는 나의 새로운 목표임에 분명하다. 나 홀로 그렇게 마음..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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