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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2

모리 선생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말의 어느 저녁, 나는 친구인 두 비평가와 소위 코시벤 가도의 전라로 벗겨진 가로수용 버들 아래를 칸다바시 방향으로 걸었다. 우리 좌우에는 과거에 시마자키 토손이 "좀 더 고개를 들고 걸으라"고 한탄한 하급 관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 떠올라 있는 황혼 빛 속에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간다. 저도 모르게 옮겨 온 같은 우울감을 떨쳐내려 해도 미처 떨쳐내지 못한 걸 테지 우리는 외투 어깨를 마주한 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오오테마치의 정류장을 지날 때가지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 비평가가 붉은 기둥 아래서 추위에 떨며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불쑥 몸을 떨더니 "모리 선생님이 떠오르네"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리 선생님이라니?" "내 중학교 선생님. 너한테는 아직 .. 2021. 11. 29.
사이고 타카모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는 나보다 두세 해 전에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혼마 씨의 이야기다. 혼마 씨가 흥미로운 유신사 논문 두어 개의 저자라는 건 알고 있는 사람도 많으리라. 나는 작년 겨울 카마쿠라로 이사하기 대략 일주일 전에 혼마 씨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내용은 아직도 내 머리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쓰는 걸로 새소설 편집자에게 줄 내 기고를 완성시키려 한다. 물론 이는 "혼마 씨의 사이고 타카모리"라 해서 친구나 지인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도 어떤 사회에는 의외로 알려져 있을지 모른다. 혼마 씨는 이 이야기를 할 때에 "진위 판단은 각자 자유롭게 하세요"하고 말했다. 혼마 씨마저 주장하지 않으니 나는 물론 주장할 필요.. 2021. 11. 26.
유혹――어떤 시나리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천주교도의 낡은 달력 중 한 장, 그 위에 보이는 건 이런 문자이다―― 탄생하신지 천육백삼십사 년. 세바스치안세바스찬 기록하다. 이 월. 작은 달. 이 월 육 일. 산타 마리야처녀 마리아가 수태하신 날. 이 월 칠 일. 도미이고domingo, 주일. 삼 월. 큰 달. 오 일. 도미이고, 후란시스코Francesco. 십이 일. …………… 2 일본 남부의 어떤 산길. 커다란 녹나무 가지 너머로 동굴 하나가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꾼 둘이 산길 아래로 온다. 나무꾼 하나는 동굴을 가리키며 다른 한 명에게 무어라 말한다. 두 사람은 십 자를 긋고는 동굴을 향해 크게 예배한다. 3 이 커다란 녹나무 가지. 꼬리가 긴 원숭이 한 마리가 가지 위에 앉은 채로 가만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 위에는 .. 2021. 11. 23.
다이쇼 12년 9월 1일 대지진에 관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대지진 잡기 하나 다이쇼 십이 년 팔 월, 나는 일유정과 가마쿠라에 가서 히로나야 별장의 손님이 되었다. 우리방 처마 끝에는 덩굴시렁이 이어져 있었다. 또 덩굴시렁 잎 사이로 힐끔힐끔 보라색 꽃이 보였다. 팔 월의 등나무 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뿐일까. 화장실 창문으로 뒤뜰을 보면 수없이 겹친 황매화 나무도 꽃을 달고 있다 황매화 나무 향하는 햇살 담은 당목 지팡이 일유정 (주, 일유정은 당목 지팡이를 짚고 있다.) 또 신기한 건 작은 정원 연못에 붓꽃과 연꽃이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이 피어 있었단 점이다. 잎이 갈라진 연꽃잎과 활짝 핀 붓꽃이구나 일유정 등나무, 황매화, 붓꽃이 모이니 이게 참 예사 일이 아니다. "자연"서 발광할 기미가 보이는 건 의심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그 후로 누굴 .. 2021. 11. 22.
콘바루카이의 '스미다가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어느 이른 봄 밤, 후지미쵸의 호소가와코 무대에 콘바루카이의 노를 보러 갔다. 좀 더 정확히는 되려 사쿠라마 킨타로 씨의 '스미다가와'를 보러 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무대를 찾은 건 "하나가타미"인지가 끝난 후 "스미다가와"가 시작되기 전의 일이다. 나는 어떠한 시바이를 보아도 관람석을 가득 매운 손님보다 재밌는 시바이를 만난 적이 없다. 물론 내 친구가 쓴 멋진 시바이는 예외이다. 그런 시바이를 볼 때는 대개 관객 따위는 잊고 만다. 왜냐면 옆에서 자신의 시바이를 보는 작가는 관객보다 재밌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찌 되었든 시바이의 관객은 시바이보다도 항상 재밌기 마련이다. 노도 이 예외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절 노의 관객 중에는 아가씨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또 .. 2021. 11. 18.
잡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치쿠덴 치쿠덴은 좋은 사람이다. 롤랑의 평가 같은 걸 배우면 좋은 화가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다. 세상이 알아줬으면 하는 화가가 있다면 타이가의 다음 가는 사람이지 싶다. 친구이자 동지의 산요의 재능은 치쿠덴보다 크게 못하다. 산요가 나가자키서 놀 때 화류계서 놀았다는 의심을 풀기 위해 "家有縞衣待吾返집에선 아내가 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데 孤衾如水已三年홀로 이불 덮은 지 삼 년이로구나"하는 시를 지은 건 살짝 미간이 찌푸러지지만 치쿠덴이 마찬가지로 나가사키서 "不上酒閣주객에 오르지 않고 不買歌鬟償노래와 여자를 사지 않으니 周文画주문의 그림은 筆頭水기필의 물이요 墨余山각필의 산이구나"하는 말을 하는 건 아마 진실을 말한 것이리라. 치쿠덴은 시와 글, 그림 모두 탁월하였으나 와카만은 교묘하지 못 했다. 화.. 202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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