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대지진 잡기
하나
다이쇼 십이 년 팔 월, 나는 일유정과 가마쿠라에 가서 히로나야 별장의 손님이 되었다. 우리방 처마 끝에는 덩굴시렁이 이어져 있었다. 또 덩굴시렁 잎 사이로 힐끔힐끔 보라색 꽃이 보였다. 팔 월의 등나무 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뿐일까. 화장실 창문으로 뒤뜰을 보면 수없이 겹친 황매화 나무도 꽃을 달고 있다
황매화 나무 향하는 햇살 담은 당목 지팡이 일유정
(주, 일유정은 당목 지팡이를 짚고 있다.)
또 신기한 건 작은 정원 연못에 붓꽃과 연꽃이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이 피어 있었단 점이다.
잎이 갈라진 연꽃잎과 활짝 핀 붓꽃이구나 일유정
등나무, 황매화, 붓꽃이 모이니 이게 참 예사 일이 아니다. "자연"서 발광할 기미가 보이는 건 의심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그 후로 누굴 볼 때마다 "천재지변이 일어날 거 같네"하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쿠메 마사오는 히죽히죽 웃으며 "키쿠치 칸이 약해졌는걸"하고 크게 나를 놀리곤 했다.
우리가 도쿄로 돌아온 건 팔 월 이십오 일이었다. 대지진은 그로부터 팔 일째에 일어났다.
"그때는 도리상 반대했지만 네 예언은 맞았으니까."
쿠메도 지금은 내 예언에 크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백해도 될 테지――실은 나도 내 예언을 별로 믿지 않았어.
둘
"하마쵸가시의 배 안에 있습니다. 사쿠라가와 산코."
이는 요시와라의 불탄 흔적에 붙어 있던 수많은 공고 중 하나이다. "배 안에 있다"는 건 진지하게 쓴 불평일지 모른다. 하지만 애처롭게도 풍류가 있다. 나는 이 한 줄 속에서 가을바람 부는 배를 집으로 삼은 호우칸의 모습을 떠올렸다. 에도 작가가 그린 요시와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지만 오늘날이라도 이런 종이에 소탈한 매력을 드러낸 호우칸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셋
대지진이 겨우 진정된 후, 옥외로 대피한 사람들은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진 듯하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담배나 배를 나누고 서로 아이를 지켜주는 경치는 와타나베쵸, 타바타, 신메이쵸――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타바타의 포플러 클럽 잔디로 대피한 사람들은 배경서 포플러가 살랑거리는 탓인지 피크닉하러 모였나 싶을 정도로 정말 즐겁게 서로를 터놓고 있었다.
이는 클라이스트가 '지진' 속에서 쓴 현상이다. 아니 클라이스트는 그 위에 지진 후의 흥분이 잦아들자 다시 한 번 평생의 은혜와 원한이 서서히 깨어나는 무서움마저 그렸다. 그럼 포플러 클럽 잔디로 대피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옆의 폐병 환자를 쫓아내려 꾀하거나 혹은 또 맞은편 부인의 사생활을 수군거리며 걸을지 모른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평소에 없을 친근함을 솟구치는 건 어찌 되었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이 기억만은 영원히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넷
나도 이번에는 남김없이 타죽은 시체를 수없이 보았다. 그 수없이 많은 시체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아사쿠사 경내 상점가의 수용소에 있었던 환자로 보이는 시체이다. 이 시체도 불에 탄 얼굴은 눈코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유카타를 입은 몸이나 마른 손발에서는 조금도 탄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잊을 수 없는 건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다. 타죽은 시체는 다들 말하는 것처럼 대개 손발이 쪼그라들어 있다. 하지만 이 시체는 어떻게 된 것인지 타고 남은 메린스 이불 위에 제대로 다리를 뻗고 있었다. 손 또한 각오를 굳힌 것처럼 유카타 가슴 위에서 깍지 끼고 있었다. 이건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시체가 아니다. 조용히 숙명을 맞이한 시체이다. 만약 얼굴만 타지 않았다면 분명 파랗게 질린 입술에 미소에 가까운 걸 드리우고 있었으리라.
나는 이 시체에서 애처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건 분명 지진 전에 죽은 사람이 타버린 걸 거예요"하고 말했다. 확실히 듣고 보니 의외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는 아내 탓에 소설적 감상이 파괴된 거 밉기만 할 따름이다.
다섯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하지만 내 소견으로 키쿠치 칸은 이 자격이 부족하다.
계엄령이 내려진 후 나는 담배를 문 채로 키쿠치와 잡담을 나누었다. 물론 잡담이라 해도 지진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대화재의 원인이 ○○○○○○○○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키쿠치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건 거짓말이야"하고 일갈했다. 나는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럼 거짓말인가 보지"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동안 다시 한 번 듣자 하니 ○○○○는 사회주의자의 끄나풀인 듯하다고 말했다. 키쿠치는 이번에도 눈썹을 들어 올리며 "거짓말이야, 그런 건"하고 혼을 냈다. 나는 또 "그래? 그것도 거짓말이야?"하고 자기 뜻(?)을 철회했다.
다시 내 소견에 따르면 선량한 시민이란 사회주의자와 ○○○○의 음모의 존재를 믿는 자이다. 만약 맏기지 않는 경우엔 적어도 믿고 있는 듯이 얼굴을 꾸며야만 한다. 하지만 야만적인 키쿠치 칸은 믿지도 않을 뿐더러 믿는 흉내도 내지 않는다. 이는 완전히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버리는 행위이다. 선량한 시민인 동시에 용맹한 자경단원의 일원인 나는 키쿠치를 위해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선량한 시민이 되는 일은――어찌 됐든 마음고생을 요구한다.
여섯
나는 마루노우치의 잔해를 지났다. 이곳을 지나는 건 두 번째이다. 전에 왔을 때는 바바사키의 수로서 몇 명인가 헤엄치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나는 본 적 있는 수로 너머를 보았다. 울타리 너머에는 악연 위에 돌담이 넘어진 곳이 있다. 무너진 흙은 칠이라도 된 것처럼 붉었다. 무너지지 않은 둑에서는 푸른 잔디 위에서 여전히 소나무가 똬리를 틀 듯이 뻗어 있다. 그곳에선 오늘도 서너 명, 전라의 사람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술을 깨기 위해 헤엄치는 건 아닐 테지. 하지만 행인인 내 눈에는 요전 번도 마치 서양인이 그린 물놀이 유화처럼만 보였다.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요전 번에는 수로벽에 오줌을 놓는 토공이 있었다. 오늘은 그런 게 보이지 않는 만큼 한층 더 평화로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런 경치를 보면서 역시나 걸어갔다. 그러자 대뜸 수로 위에서 생각지도 못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는 "그리운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이었다. 노래하는 건 물 위에 고개만 내민 소년이었다.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내 안에서도 저 소년에게 목소리를 맞추고 싶단 마음을 느꼈다. 소년은 무심히 노래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노래는 순식간에 어느 틈엔가 나를 붙들고 있던 부정의 정신을 타파했다.
예술은 생활의 과잉이라고 한다. 확실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 싶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을 만드는 건 항상 생활의 과잉이다. 우리는 인간이란 존엄 때문에 생활의 과잉을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교묘하게 그 과잉을 커다란 꽃다발로 이루어야만 한다. 생활에 과잉을 두는 건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나는 마루노우치의 잔해를 지났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맹화 속에서도 타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둘 대진일록
팔 월 이십오 일.
일유정과 카마쿠라에서 돌아오다. 쿠메, 다나카, 스가, 나루세, 무카와 등이 정차장으로 나와 마중을 해줬다. 한 시쯤에 신바시에 도착했다. 곧장 일유정과 택시를 타고 세이로카 병원에 입원중인 엔도 코겐소를 병문안했다. 코겐소는 병이 거의 나아서 유화 도구 따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카자마 나오에와 우연히 만났다. 세이로카 병원은 병실 성비나 간호사 복장 등 청초하여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 한 시간 후, 다시 택시를 타고 일유정을 보내고 세 시쯤에 겨우 타바타에 돌아왔다.
팔 월 이십구 일.
날이 아주 좋다. 다시 카마쿠라에 놀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저녁부터 오한을 느꼈다. 체온을 제보니 38.6도였다. 시모지마 선생님께 내진을 청했다. 유행성 독감이란다. 어머니, 큰어머니, 아내, 아이들 모두 조금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한다.
팔 월 삼십일 일.
병이 좀 나아졌다. 누워서 "시부에 츄사이"를 읽었다. 과거에 소설 "참마죽"을 쓸 적에 "거의 전부"란 말을 써서 쿠메가 웃음을 터트린 일이 있었다. 지금 "츄사이"를 읽으니 오가이 선생님 또한 "거의 전부"란 말을 썼다. 웃음이 나왔다.
구 월 일 일.
오후쯤 거실서 빵과 우유를 먹고 차를 마시려던 차에 대지진이 찾아왔다. 어머니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갔다. 아내는 2층서 자고 있는 타카시를 구하러 갔고 큰어머니는 계단 옆에 서서 아내와 타카시를 계속 불러 끝내 아내와 큰어머니와 타카시를 안고 밖으로 나오니 이번엔 또 아버지와 히로시가 없는 걸 알았다. 여종을 다시 집안으로 들여보내자 황급히 히로시를 안고 나왔다. 아버지 또한 정원을 둘러 나왔다. 그 사이에 집이 크게 움직이고 걷는 것조차 마음 같지 않았다. 지붕이 떨어지기를 십여 분. 대지진이 조용해지자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다. 흙냄새에 목이 매였다. 아버지와 집 내외를 살피니 피해는 지붕 기와가 떨어진 것과 석등롱이 쓰러진 거뿐이었다.
엔게츠도, 우리를 보러 왔다.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조금 놀란 건 분명했다. 병을 힘으로 삼아 엔게츠도와 주변 이웃들을 보러 갔다. 도중에 신메이쵸의 좁은 언덕 길을 오르니 쓰러진 집도 몇 채인가 보였다. 또 츠키미바시 옆에 서서 저 먼 도쿄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진흙색을 두른 채 연기가 네 방향서 올라오는 게 보인다. 집에 돌아와 전등불이 안 들어오고 식량이 부족해질 걸 염려해 초와 쌀, 채소, 통조림 등을 사 모으고 다녔다.
밤에 또 엔게츠도의 츠키미바시의 옆에 이르니 도쿄의 화재가 더욱 맹렬한 게 커다란 용광로라도 보는 것만 같았다. 타바타, 닛포리, 와타나베 등의 사람들이 길 위에 의자를 두고 다다미를 깔아 밖에서 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흔들림이 다시 올 거라 말하고 가족들 모두 한 방에서 잤다. 전등, 가스도 쓰지 못했고 이따금 2층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색이 항상 불타는 것처럼 붉게 보였다.
이날, 시모지마 선생님의 부인께서 홀로 대지진 중의 약국으로 들어가 약제 선반이 쓰러지는 걸 받쳤다. 그 탓에 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용맹함이 나는 미칠 바가 못 된다. 부인은 시부에 츄사이 속 부인의 환생이 분명하리라.
구 월 이 일.
도쿄 하늘은 아직도 연기에 덮여서 재가 이따금 정원 앞에 떨어지는 걸 보인다. 엔게츠도에 부탁해 우시고메, 시바 등의 친척의 안부를 묻는다. 도쿄가 전멸이란다. 또 요코하마나 쇼난 등의 지방도 전멸했단다. 카마쿠라에 머무른 지인과 친구를 떠올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초저녁 엔게츠도에 돌아온 보고를 들으니 우시고메는 무사하고 시바는 황무지로 변했단다. 누나의 집, 동생의 집이 함께 전소했단다. 그들의 생사도 확실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이날, 타바타를 거쳐 아스카야마로 향하는 피난민들이 계속되었다. 타바타 또한 불탈 걸 걱정해 아내는 자식들의 옷을 바구니에 담고 나는 소세키 선생님의 글 한 폭을 보자기로 감쌌다. 가구나 가재는 옮기기 힘드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욕이 끝이 없다지만 또 의외로 포기해야 하는 건 간단히 내려놓을 수 있다. 밤이 되어 열이 오르길 39도. 때때로 ○○○○○○○○가 있었다. 나는 머리가 무거워 설 수도 없었다. 엔게츠도, 나 대신 철야 경계를 맡아주었다. 와카자시를 차고 목도를 든 모습이 그야말로 진짜 ○○○○이다.
셋 대지진의 감상
지진 이야기를 쓰라는 잡지가 하나가 아니다. 뭘 어떻게 쓰든 주문을 받아 주기 어려우니 떠오르는 걸 두세 개 기록해둘 수밖에 없다. 부디 글이 부족한 걸 용서해주길.
이번 대지진을 천벌로 여기라는 건 시부사와 자작의 말이다. 스스로 돌아보면 다리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다리에 상처가 있는 건 천벌을 받았기 때문일까 혹은 다리에 상처가 있기에 천벌을 받았다 여기게 되는 걸까. 하지만 누구는 처자식을 죽이고 그는 집조차 불타지 않은 걸 보면 누군가는 또 소위 천벌이 불공평함에 놀랄 일이다. 불공평한 천벌을 믿는 건 천벌을 믿지 못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아니,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당대에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냉담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냉담하다. 대지진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맹화는 어진 이와 부랑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연의 눈에는 인간도 이와 별다를 바 없다는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는 진실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 속의 자연도 인간 속 인간에게 애처로움을 지니지 않았다. 대지진과 맹화는 도쿄 시민에게 히비야 공원의 연못서 노는 학과 집오리를 먹게 만들었다. 만약 그런 구원이 없었다면 도쿄 시민은 야수처럼 인육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히비야 공원의 연못서 노는 학과 집오리를 먹어 치운 비참한 환경은 무서울 지경이다. 하지만 학과 집오리를――아니 설령 인육을 먹었더라도 먹는 것 자체는 두려워할 게 아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냉담하다. 인간 속 자연 또한 인간 속 인간에게 애처로움을 품지는 않았다. 학과 집오리를 먹었기에 도쿄 시민이 동물이 되지 않은 건――나아가서는 인간을 맹금류와 다르게 한 건 필경 고집 센 센티멘털리즘뿐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냉담하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이란 사실을 경멸하진 않는다. 인간이란 존엄을 버리진 않는다. 인육을 먹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고 하자. 그대들 누구도 인육을 먹지는 않으리라. 인육을 먹어 배를 두드릴 일이 없다면 그대의 부모 처자식을 시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또 여력이 남는다면 풍경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모든 학문을 사랑하라.
누구라도 돌아보면 다리에 상처 하나쯤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두 다리 전체에 상처가 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대지진을 천벌이라 여기진 않는다. 하물며 천벌의 불공평에도 저주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단지 형제의 집이 불타고 몇몇 친구가 죽었기에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한탄하되 절망하지 않는다. 절망은 죽음과 암흑으로 향하는 문이다.
동포여. 얼굴 가죽을 두껍게 하라. '커닝'을 들킨 중학생처럼 천벌 따위 믿지 말아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시부사와 자작의 한 마디로 얼마든지 떠들 수 있는 내 재능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동포여, 냉담한 자연 앞에 아담 이후의 인간을 세워라. 부정적 정신의 노예가 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넷 도쿄인
도쿄서 태어나 도쿄서 자라고 도쿄서 살고 있는 나는 이제까지 애향심이란 것에 공감을 느낀 적이 없다. 또 공감을 느끼지 않는 사실에 의기양양해 한 것도 사실이다.
본래 애향심이란 지역 모임에 참가하거나 구번제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는 한 말하자면 쓸데 없는 물건이다. 도쿄를 사랑하는 것도 여기서 빗나가지 않는다. 무작정 도쿄도쿄하고 고맙다는 양 떠드는 건 아직 도쿄가 신기한 시골 사람에게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지진이 있었던 다음 날, 다이히코의 노구치 군과 만났을 때이다. 나는 사이더 한 병을 두고 노구치 군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병의 사이다를 두고. 그렇게 말하면 혹은 기분 좋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도쿄의 대화재의 연기는 타바타의 하늘마저 탁하게 만들었다. 노구치 군도 오늘은 겐로쿠소데의 하오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화재용 두건에 운룡 사시츠코 같은 차림이다. 나는 그때 이재민이 계속 도쿄를 떠나고 있단 이야기를 했다.
"그야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다 돌아가겠죠――"
노구치 군은 곧 이렇게 말했다.
"대신 도쿄 사람만은 남을 겁니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지는 걸 느꼈다. 그건 노구치 군의 복장 때문일까, 하늘을 탁하게 한 연기 때문일까, 혹은 또 나 자신도 대지진에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 건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순간 나도 무언가 애향심과 비슷한 용맹함을 느낀 건 사실이다. 역시 내 마음 밑바닥에는 내가 경멸하던 에도 사람의 감정이 남아 있었나 보다.
다섯 폐허 도쿄
카토 타케오 님. 도쿄를 기리는 문장을 쓰시라 한 말은 똑똑히 들었습니다. 또 받아 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쓰려 하니 바쁘기도 하며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이 편지로 양해를 바랄까 합니다.
오닌의 난인가를 만난 사람의 우타에 "그대 아는가. 도심이 들판으로 된 저녁 종다리가 오르는 걸 보고도 떨어지는 눈물을"하는 게 있습니다. 마루노우치의 잔해를 걸었을 때에는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즈키 쿄타 씨는 긴자를 지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합니다.(물론 센티멘탈한 감정 없이라 적혀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저는 "떨어지는 눈물은"하는 기분만 들었을 뿐이지 실제로 눈물을 흘리진 않았습니다. 그 외에 좋지 못한 말인 건 알아도 조금 보기 드문 광경이란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떨어지는 눈물은"하는 기분이 든 건 물론 이렇게 되기 전의 도쿄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게 도쿄를 아쉬워한 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되기 전의 도쿄에 별 애착을 지니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런 저를 에도 정취를 가진 사람이라 속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알지도 못하는 에도의 과거에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나 산문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제가 사랑하는 도쿄는 제가 직접 본 도쿄, 제가 직접 걸은 도쿄입니다. 버들이 심어진 긴자, 카페보다 시루코 가게가 더 많은, 좀 더 침착한――당신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테지요. 말하자면 밀짚모자를 쓰고서 얇은 하오리를 입던 도쿄 말입니다. 그런 도쿄는 이미 사라져 버렸으니 같은 도쿄라 해도 어딘과 들어맞지 않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런 게 이제는 황무지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급격한 변화 앞에 속된 도쿄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속된 도쿄를 안타까워하는 심리는――아니, 마루노우치의 잔해를 걸었을 때에는 아쉬워하지 않았을지라도 지금은 아쉬워할지 모릅니다. 도무지 그런 게 또렷하지 않습니다. 저는 속된 도쿄에 어느 틈엔가 추억의 아름다움을 더한 것만 같으니까요. 즉 가장 확실한 건 "떨어지는 눈물은"하는 감정이 들었단 것입니다. 제가 도쿄를 기리는 마음도 이 한 마디로 정리되겠지요. "떨어지는 눈물은"――이것만으로는 부족할까요?
어쩐지 두서없는 글만 적었습니다만 부디 노여워마시고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 편지를 다 쓰면 저희 집에 충만한 탄내와 함께 현미 저녁밥을 먹을 예정입니다. 또 제등에 촛불을 넣고 야간 경비를 하러 나가야 하지요. 이상.
여섯 지진 재해가 문예에 미치는 영향
대지진 재해는 전쟁과 달리 인간이 낳은 게 아니다. 단지 대지가 움직인 결과 불이 번지고 사람이 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지진이 우리 작가에게 주는 영향은 그리 깊지 않으리라. 적어도 작가의 인생관을 뒤집어 놓는 일은 없으리라. 만약 무언가 영향이 있다면 이런 말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해가 컸던 만큼 이번 대지진은 우리 작가의 마음에도 큰 동요를 주었다. 우리는 극심한 사랑이나 증오, 연민, 불안을 경험했다. 이제까지 우리가 다뤄 온 인간의 심리는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이번에는 거기에 좀 더 선이 두터운 감정의 곡선이 새로 그려질지 모르겠다. 물론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는 데에는 대지진이나 화재를 사용하리라.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그럴 가능성은 있을 듯하다.
또 대지진 후의 도쿄는 어떻게 부흥하더라도 살풍경이기 작이 없으리라. 때문에 우리는 기존처럼 바깥에서 흥미를 찾기 어렵다. 그럼 우리 자신의 내부서 무어라 즐거운 걸 찾으리라. 적어도 그런 경향의 사람은 더욱 강해지리라. 즉 난세를 만난 중국 시인이 은거의 풍류를 즐기는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법하다. 이것도 예언은 불가능하나 가능성은 꽤 있지 싶다.
앞의 경향은 다수에게 호소하는 소설이 될 거 같고 뒤의 경향은 소수에게 호소하는 소설이 될 터이다. 즉 두 경향은 상반되고 있으나 어느 쪽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언하긴 어렵다.
일곱 고서 소실을 안타까워하다
이번 지진으로 고미술품과 고서가 사라진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헤이케이칸에 진열되어 있던 도기류는 대부분 파손되었다는데 그 외에도 손해가 많을 게 분명하다. 또 고미술품은 잠시 제쳐두고 고서를 생각하면 쿠로가와 가문의 장서도 불타고 야스다 가문의 장서도 불탔으며 대학 도서관의 장서도 불탄 건 돌이킬 수 없는 손해이리라. 상인 중에서도 무라코나 아사쿠라야나 요시키치가 불탔으니 그쪽의 재해도 만만치 않을 게 부명하다. 개인 장서는 어찌 되었든 대학 도서관의 장서가 불탄 건 어떻게 생각해도 대학의 실수이다. 도서관 위치를 화재의 원인이 되기 쉬운 의과대학 약품실과 가까이 둔 것도 좋게 봐줄 수 없다. 휴일에 도서관에 사람을 두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그 때문에 이번 같은 화재에도 어떤 책이 귀중한지 알지 못해 귀중한 책을 빼내지 못한 모양이다.) 서고 그 자체의 구조가 형편 없던 것도 곱게 볼 수가 없다. 더 들어가자면 대학이 고서를 높게 쌓기만 하지 고서 복각에 힘을 주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마냥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걸 아까워해 끝내 재로 만든 학자의 죄는 북을 울려서라도 꾸짖어 마땅하다. 오오노 샤치쿠가 평생의 고심 끝에 이룬 샤치쿠 문고가 불타 사라진 것만으로도 아쉽기 짝이 없다. "하츠쿠켄야나기"란 시로가 편찬한 하이쿠집은 카츠미네 신푸 씨의 문고와 함께 천하에 두 권 밖에 없었던 길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이제 한 권 남은 셈이다.
(다이쇼 12년 9월)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고 타카모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26 |
---|---|
유혹――어떤 시나리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23 |
콘바루카이의 '스미다가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18 |
잡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16 |
소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