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쿠덴
치쿠덴은 좋은 사람이다. 롤랑의 평가 같은 걸 배우면 좋은 화가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다. 세상이 알아줬으면 하는 화가가 있다면 타이가의 다음 가는 사람이지 싶다. 친구이자 동지의 산요의 재능은 치쿠덴보다 크게 못하다. 산요가 나가자키서 놀 때 화류계서 놀았다는 의심을 풀기 위해 "家有縞衣待吾返집에선 아내가 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데 孤衾如水已三年홀로 이불 덮은 지 삼 년이로구나"하는 시를 지은 건 살짝 미간이 찌푸러지지만 치쿠덴이 마찬가지로 나가사키서 "不上酒閣주객에 오르지 않고 不買歌鬟償노래와 여자를 사지 않으니 周文画주문의 그림은 筆頭水기필의 물이요 墨余山각필의 산이구나"하는 말을 하는 건 아마 진실을 말한 것이리라. 치쿠덴은 시와 글, 그림 모두 탁월하였으나 와카만은 교묘하지 못 했다. 화도에서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서른한 문자 위에서는 도무지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외에 향이나 차에도 정통하지 못하였다는데 그 길은 알지 못하니 무어라 하기 어렵다. 재밌는 건 치쿠덴이 버섯 그림을 그렸을 때 굳은 표정을 지은 남자에게 "내 고심을 보게나"하고 물에 젖은 표고를 거창하게 한껏 보여주니 그 남자가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치쿠덴이 각의격정한 건 물론이요 속세인을 감탄시킨 건 이 이야기로도 알 수 있으리라. 대가의 고심담이 전해지는 것중엔 사람 나쁜 명인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희롱하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경우도 적지 않다. 산요가 바로 그렇다. 치쿠덴이라면 그런 장난이나 거짓은 없을 거 같다. 역시나 치쿠덴은 좋은 사람이다. "타노무라 치쿠덴"이란 글을 보니 전보다 그 사람이 좋아졌다. 이 글은 저자 오오시마 시로 씨, 출판사는 분고노쿠니에 구매한 곳은 서점 쵸분도였다.(7월 20일)
괴상한 소문
오사카의 어떤 공장에 출입하는 도시락집 소녀가 있다. 직공 중 한 명이 그 소녀의 뺨을 핥아 발광하였다고 한다.
미국 어딘가의 해안가이다. 해수욕의 준비를 하던 여자가 옷을 도둑맞아 하루 가까이 탈의실에서 나오지 못 했다. 그후 도둑은 붙잡혔으니 죄목은 여자의 수치심을 이용한 불법 감금죄라고 한다.
전철 안에서 노부인에게 발을 밟힌 남자가 앙갚음으로 노부인의 발을 밟자 그 노부인이 곧장 연설을 시작하며 왈, "여러분, 저는 그저 실수로 발을 밟았을 뿐인데 이 사람은 일부러 제 발을 밟았습니다, 운운" 밟은 남자는 기어코 입을 다물고 사과하였다. 이 노부인은 야지마 카지코의 추종자라고 한다.
세상에는 거짓말 같은 진실이 의외로 많다. 모두 오아나 류이치에게 들었다.(7월 23일)
바쇼
또 사루미노를 읽었다. 바쇼와 쿄라이, 본쵸의 렌쿠 중에는 파란노성한 게 많다. 그중 이런 것들은 무어라 말로 다 못할 기분이 든다.
초암에 잠시 두니 두들겨져서 쇼
바쇼가 '초암에 잠시 두니 두들겨져서'라고 붙이는 게 토쿠산의 봉이 하늘서 빛나는 거 같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어디서 이런 구를 가져고 오는 건지 무섭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날카로움 앞에선 범쵸라 해도 고개를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범쵸라 하니 아래와 같은 것도 있다.
물은 줄줄 흐르고 난꽃은 살랑이는구나 쵸
이는 범쵸가 붙이는 게 아직도 새롭다. 하지만 이 바쇼의 구는 어지간한 천재가 머리를 백 번 굴려본들 따라 잡지 못할 게 분명하다.
고작해야 열일곱 자의 사활이지만 바쇼의 자유자재함은 무서울 정도다. 일본인인 탓인지 서양 시인 시에선 이만큼 대단하다 느낀 적이 없다. 일단 "오호라"하고 감탄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럼 바쇼의 대단함도 아무리 설명해본들 서양인은 알지 못할까 의문 중의 의문이다.(7월 11일)
잠자리
잠자리가 나무 가지에 앉는 걸 본다. 날개 네 장은 평평하게 누워 있지 않다. 앞의 두 장이 삼십 도 정도 올라가 있다. 바람이 불자 그 날개로 자세를 고친다. 나뭇가지는 흔들리나 잠자리는 떠나지 않는다. 그대로 유유히 움직인다. 또 잘 보니 바람이 강해지고 약해짐에 따라 앞날개의 각도가 꽤나 이래저래 달라진다. 색이 옅은 붉은 잠자리. 나뭇가지는 마른가지. 본 건 언덕 위(8월 18일 아오네 온천에서)
아이
어릴 때를 다룬 소설은 여럿 있다. 하지만 아이가 느낀 그대로 쓴 건 적다. 대부분은 어른이 어릴 적을 회상하며 쓰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는 James Joyce가 신기축에 나왔다 해야 하리라.
조이스의 A Portrait of the Aritist as a Young Man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정말로 아이가 느낀 것처럼 썼다 해도 좋다. 혹은 조금은 느낀 대로 쓴 느낌이 있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기 드문 작품인 건 확실하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은 달리 찾아 볼 수 없으리라. 읽어보길 잘 했다 싶었다.(8월 20일_
십천만당일록
십천만당일록 1월 25일 기록에 코요가 제자와 함께 지란부를 쓰려 했다는 내용이 있다. 후요는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희망했고 슌요는 "사십까지 사는걸" 희망했고 코요는 "유럽 대륙에 대리석을 세워 구를 적는 것"을 바랐다. 더욱이 또 순요는 서적으로 서유기를 꼽았고 후요는 "글자 사전"을 꼽았으며 코요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꼽았다. 코요의 취향을 제자와 비교하면 굉장히 서양에 편중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꼼 속에 되려 코요의 큰 기량이 엿보이는 거 아닐까 싶다.
또 23일의 기록에 "오늘밤(八) 夜 대신에 八를 심고 여명에 이른다. 끝내 탈고하지 못했다. 추운밤의 석탄만 같다."고 되어 있다. 어쩐지 기뻐졌다. (八)은 금색 야차의 (八) (8월 21일)
옆방
"언니, 이거 뭐야?"
"태엽젠마이."
"태엽으로 커피도 만들어?"
"너는 바보구나. 좀 조용히 있어. 그러면 나까지 겸연쩍어지잖아. 그건 현미겐마이 커피야."
언니는 열네다섯 살, 동생은 열두 살. 이 두 자매는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러 간다. 비가 내리는 날은 서로의 얼굴을 그린다. 아버지는 품격 있는 오십 세 남성. 이 사람도 그림 취향이 있는 듯하다.(8월 22일 세이곤 온천에서)
젊음
모쿠베이는 언제나 쿠로하부타에 차림을 하고 있다. 이는 사치와 닮아서 되려 덕이라고 어떤 사람은 말했다. 또 그 사람이 말하길 우리 젊은이는 모쿠베이의 좋은 취향은 잘 알고 있으나 쿠로하부타에만 고집하기 전에 좀 더 다양한 걸 봐보고 싶다고 한다. 이 말은 소설상에도 그대로 들어맞을 듯하다. 어떠한 작품이 고마운가, 그런 건 희미하게 나마 알고 있으나 무작정 한 길로 달려가기 전에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손을 뻗어 보고 싶은 생각도 적지 않다. 이는 안일하다기 보다는 젊음을 즐기고 싶단 마음이라 봐야 하리라. 이 마음에 안주하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닐지 모른다. 말하자면 예술상의 탕아라 해야 할까.(8월 23일)
치정
남녀의 치정을 온전히 묘사하려면 역시 다른 사람의 침실까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나라에서 금지된 일이다. 때문에 소설가는 가장 멀리 돌아가는 붓을 놀려 겨우 십 중 팔이나 아홉을 그리게 된다. 금병매가 고금무쌍의 치정 소설로 통하는 건 무엇보다 이 점에서 거침없이 붓을 휘두른 결과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라가 조금만 성가시게 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깊이 있는 소설이 태어나리라.
금병매만한 소설이 과연 서양에 존재할까. 피에르 루이의 Aphrodite도 금병매에 비하면 아이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후자는 서문에 적은 것처럼 쾌락주의란 간판도 있으니 한데 묶는 건 문제가 있으리라.(8월 23일)
대나무
뒷산의 대나무밭을 멀리서 보면 어두운 삼나무나 편백나무 앞에 녹색이 수북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새 깃털만 같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고요한 대숲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국인은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대나무의 웃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바람 부는 날에도 보았는데 도무지 웃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또 안개가 짙은 저녁에 나와보니 모두 희미한 검은색으로 보이는 게 평범한 남가 같아서 지루했다. 그보다 대나무밭 안에서 한 곳 대나무 껍질이 벗겨진 게 햇살을 받아 빛나자 그곳에 달팽이가 기는 듯한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이 있다.(8월 25일 세이곤 온천에서)
귀족
귀족 혹은 귀족주의자가 한껏 자아도취하지 않는 건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변소에 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나라서도 선조는 신과 같은 얼굴을 할지 모른다. 도쿠가와 시대의 다이묘는 참근교대로 오르는 길에 여숙에서 묵게 되면 대변은 반드시 모래를 담은 통에 담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도 이 약점을 알고 있던 것 같다. 이걸 좀 더 품위 있게 말하자면 니체가 "왜 사람을 신으로 여기지 않는가 운운"하는 경구와 같은 게 되어버리라.(8월 26일)
세이게츠
신슈 이나의 하이진 중에 세이게츠라는 거지가 있다. 척박한 정서가 료칸에 밀리지 않는다. 시모지마 쿠코쿠 씨가 근래 그 구를 수집하고 있다. "나팔꽃 얹고 급할 것 없는 쟁반 남은 손님은", "소곤소곤히 무어라 요리하는 호타 불이랴", "초가을 정서 고스란히 느끼는 된장과 간장", "소중히 기른 말 꼬리를 찌르는 가을 바람아.", "떨군 밤송이 받쳐주는 길 위의 구멍이구나" (처음으로 이나에 와서) "꽈리의 색깔 느슨해져 버리는 밭의 밧줄아." 등 구도 텐보 전후 사람치고는 생각보다 좋다. 사세구는 "학 울음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안개 속일까"라고 한다. 아쉽게도 자세히는 알려진 게 없고 단지 개를 싫어했다고 한다.(9월 10일)
백일홍
내가 알기로는 잎이 노랗게 물드는 건 벚꽃보다 느리다 한다. 회화나무가 그 뒤를 따른다. 대신 잎이 떨어지는 건 백일홍이 제일이라고 한다. 벚나무나 회화나무 가지에는 아직 띄엄띄엄 잔잎이 남아 있어도 백일홍은 헐벗고 있다. 오동, 파초, 버들처럼 시나 구에서 떨어지는 게 노래되는 건 생각 외로 다들 늦게 떨어지곤 한다. 백일홍이란 나무는 봄이 신록의 색을 두를 쯤에도 간단히 붉은 싹을 피우지 않는다. 나가츠카 타타시 씨의 우타에 "봄에 찾은 비 요염하기 짝없는 정원에 솟은 오동나무랴"라는 게 있는데 오동이 싹 피는 건 백일홍보다 빠르다. 아침잠을 좋아하면서 밤잠도 좋아하는 건 백일홍 이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이따금 이 나무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인간을 보는 것처럼 화가 날 때가 있다.(9월 13일)
대작
카메오 군이 번역한 에커만의 괴테 어록 중에 젊고 기운 넘치는 대작을 이루는 건 고생은 많고 공적은 적다는 일단락이 있다. 생각해 보기에 괴테 본인이 파우스트를 쓸 적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 보면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의 대성에 몰두한 걸 생각하면 혹은 유럽의 90년대 예술을 모를지도 모른다. 물론 타인의 예술을 알지 못해도 톨스토이 같은 당당한 자신만의 예술을 지녔으면 별지장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안다 모른다로 이야기하자면 예술론을 쓴 톨스토이는 되려 애처로운 감상안의 소유자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물며 우리처럼 보잘 것 없는 중생은 적당한 야심에 선동되어 어울리지도 않는 대작에 임한 끝에 바라는 건 얻지 못하고 한심만 부르게 된다는 건 뻔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단 대작을 꾀할 기연이 오면 괴테의 충고도 잊은 것처럼 곧장 벌떡 일어서버릴 거 같다.(9월 26일)
물괴물
갓파의 고증은 야니기타 쿠니오 씨의 산섬민담집에 전부 담겨 있다. 유신 이전 다이콘가시의 강에도 역시 갓파가 살았다. 칸제진미치의 표구사가 그 강에 장자를 씻으러 가자 대뜸 뒤에서 안겨서 무작정 간지러움을 태운다. 표구사가 거리서 넘어졌더니 갓파 한 마리가 등을 벗어나 강으로 뛰어들었다고 어릴 적에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다. 그후 만넨바시 밑의 바닥서 오오히고히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지인이 밤낚시를 갔더니 아즈마바시의 조금 윗부분서 커다란 중국자라가 배에 오르려 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그 중국자라의 목이 두터운 게 철로 된 병과 같았다고 한다. 도쿄 강에도 그런 물괴물이 많다. 시골에 가면 더욱 그럴 테니 아직도 갓파가 갈대 안에서 스모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다 일유정이 만드는 카하타로 독작도를 보았기에 떠오른 걸 기록하였다.(9월 30일)
기량
텐류지의 가산이 어느 눈이 그친 아침 맑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제는 그렇게 눈을 내리던 하늘이 오늘은 이렇게나 해를 드리운다. 사람도 이런 마음가짐 없이는 큰일은 못 하겠군"하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 밤 그걸 읽으니 이건 못 당하겠지 싶었다. 고작해야 백 장 이내의 단편을 쓰는데 슬픔과 기쁨에 모조리 뒤얽히는 건 나 스스로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요전 번에 목욕하러 들어가면서 목욕하는 건 쉬운데 목욕하는 일을 쓰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게 신비했다. 또 동시에 불쾌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중생으로 태어난 이상은 역시 참으며 고생할 수밖에 없지 싶다.(10월 3일)
오류
Ars longa, vita brevis를 번역하여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속세가 이 구를 쓰는 건 인간은 죽어도 기술은 빛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건 일본인 혹은 일본의 문사한테만 맞는 용법이다. 히포크라테스의 그 격언에는 그런 의미는 담겨 있지 않다. 지금의 서양인이 이 구를 쓰는 것도 역시 그런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건 인생은 짧기에 괴로움과 노력을 거듭해도 간단히 한 예술의 극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걸 설명하는 건 중학 교사의 역할일지 모른다. 하지만 근래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양 구는 비평가들마저 이 차이를 알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래서야 문단에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의미로 스고 싶다면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손과정에게도 사람은 죽어도 기술은 드러난다는 명문이 남아 있다. 겸사겸사 적자면 앞으로의 비평가는 "람다와 레오팔디의 이매지널리 콤바세션" 같은 엉망진창의 기염을 토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야 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현학가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가. 무작정 남을 가르치려 드느니 일단 스스로 배우고 오라.(10월 5일)
불후
사람 목숨에 한계가 있더라도 생명을 허투루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되도록 오래 살려고 하는 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것이다. 예술상의 작품도 언젠가는 죽게 될 게 분명하다. 그림은 오백 년, 글은 팔백 년이란 왕세정이 과거에 한 말이다. 하지만 되도록 오래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게 또 우리의 뜻일지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술의 불후를 믿지 않더라도 후세에 작품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건 크게 모순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 어떠한 작품이 낡지 않는가. 글이나 그림은 알지 못해도 문예상의 작품은 간결한 문체가 오래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문체가 즉 작품이란 논리가 아니라면 문체만 간결하면 그 작품이 항상 새롭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체가 작품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주는 한, 현란하여 눈을 뺏는 문체가 의외로 낡아지는 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티에는 오늘날 읽을 게 못 된다. 하지만 메리메 여전히 새롭다. 이를 우리의 문학서 보자면 오가이 선생님의 단편과 같아서 동시에 발표된 '냉소', '소용돌이' 같은 작품에 비하면 지금도 청신의 기로 풍부하여 어제 교정을 마쳤다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졸라는 과거에 문체를 배우며 볼테르의 간단함을 배우려 하지 않고 루소의 화려함을 배운 걸 한탄하며 자신의 소설이 일찍 낡게 되리란 걸 예언한 바 있으니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해야 하리라. 하지만 앞서도 쓴 것처럼 문체는 작품의 전부가 아니다. 문제를 초월한 곳에서 작품의 영속성을 추구하면 역시 그 깊이로 귀착되리라. "모든 사물이 오랫동안 기능하길 바라는 자는 (중략) 절실할 필요가 있다."(개주학화편)이란 문예상으로도 확론이지 싶다.(10월 6일)
풍속
내가 생각하기에 풍속이란 실로 전대에는 유용했던 진리를 고집하는 특색이다. 물론 한 시대 전, 두 시대 전 혹은 세 시대 전처럼 진리가 얼마나 오래되었냐에 따라 여러 풍속이 존재하리라. 그럼 한 시대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가. 이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서 몇 년이라 딱 자르긴 어렵다. 먼저 일본이라면 한 시대는 약 십 년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보통 풍속이 학문 예술에 해를 끼치는 정도는 그 고집하는 진리의 낡음과 역비례한다. 이를테면 무사도 주의자 같은 게 오늘날 아이의 장난 정도로도 시대의 진보에 해를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 법칙의 좋은 사례이리라. 때문에 현재의 문단에도 인도주의의 졸개들은 자연주의의 졸개보다 더 성가신 게 당연하다.(10월 7일)
목서
우시고메의 어떤 거리를 걸었더니 누구 저택인지는 몰라도 쿠로베이가 이어진 곳에 나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법한 굉장히 오래된 쿠로베이였다. 울타리 안에는 파초나 소나무가 서로 기대듯이 한껏 울창해져 있었다. 그런 곳을 홀로 걷고 있자니 차가운 목서 냄새가 느껴졌다. 어쩐지 그 냄새가 파초나 소나무에도 스며 들어 있는 듯했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똑바로 걸어오는 여자 하나가 있었다. 이윽고 옆에 오는 걸 보았더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엇갈린 후에 생각해 보았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풍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북적이는 거리로 나오자 뚝뚝 비가 내렸다. 그때 불쑥 방금 전 여자와 이전에 만난 곳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불쑥 자신이 비루해졌다. 사오 일 후 셋사이와 이야기하고 있자니 바닥에 구멍을 뚫은 도자기 화로에 길일에 목서를 심었더니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또 우시고메서 만난 여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비루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10월 10일)
Butler의 설
새뮤얼 버틀러의 설이 말한다. "몰리에르 무지한 노파에게 자작 대본을 들려준 게 꼭 노파의 비평이 올바랐단 건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낭독하는 사이에 직접 대본의 결점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들어 줄 사람으로는 무지한 노파만큼 좋은 것도 없으리라." 정말로 일리 있는 설이다. 백거이가 노파에게 자작 시를 읽어줬다는 것도 비슷한 심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버틀러의 설을 재밌어하는 건 단지 일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설은 버틀러처럼 창작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설파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세상의 학자나 비평가에게도 몰리에르의 희극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버틀러의 설을 토해낼 수 없다.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선 자신 안에서 몰리에르를 느껴야만 한다. 그게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로댕의 수기가 위대한 것도 이런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천 리 바깥서 고인의 얼굴을 보려 하면 일단 스스로 괴로워해야 한다.(10월 19일)
오늘밤
오늘은 마음이 차분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뜨신 물로 녹인 브로틴을 홀짝이면 태평시대 백성의 기분이 든다. 이럴 때는 소설 따위를 쓰는 게 한심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런 걸 쓰느니 홋쿠 연습이라도 하는 게 어지간히 보양이 되지 않을까. 홋쿠보다 공부라도 하면 더욱 좋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도 이렇게 앉아 있는 심정이 고마운 걸 모르는 걸까 싶다. 나는 도서도 불서도 읽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허무의 유전자가 잠들어 있는 듯하다. 서양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가톨릭 신앙으로 귀착하듯이 나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은거라도 하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지금처럼 여자에게 반하거나 돈을 바라는 동안에는 도무지 그렇게 큰맘을 먹는 건 불가능할 거 같다. 물론 선인 중에는 축계옹 같은 축산가나 곽박 같은 엽색꾼도 있었다. 그런 선인은 바로 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기왕 될 바에야 속된 선인은 되고 싶지 않다. 서양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젊은 은거인은 더욱 사양이다. 그런 것보다는 소설가 쪽이 차라리 길에 가깝지 싶다. "尋仙未向碧山行선을 물으면서도 아직 푸른 산엔 가지 않았네 住在人間足道情인간으로 남아 머무는 곳도 또 길일까" 정도일까. 어쩐지 오늘 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혼잣말만 적어 버렸다.(10월 20일)
꿈
세간 소설에 나오는 꿈은 도무지 꿈같지가 않다. 대부분 작위가 고스란히 보인다. "죄와 벌" 속의 말이 나오는 꿈도 역시 이런 의미에서는 진짜 같지 않다. 꿈같은 이야기라는 말이 있는데 꿈을 꿈처럼 써내는 일은 적당한 현실 묘사보다도 되려 주도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왜냐면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시간도 공간도 인과 관계도 현실하고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도무지 형태로 갖출 수가 없다. 그러니 실제 본 꿈을 적기라도 하지 않는 한 꿈같은 꿈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소설 중 꿈을 도구로 쓸 경우는 그 도구의 목적을 다할 필요상 형편 좋은 꿈을 봐야지 실제로 본 꿈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꿈은 잘 봐줘도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나오는 꿈마저도 쓰기 힘든 판이다. 하지만 실제로 꾼 꿈에서 반대로 소설을 만들 경우엔 그 꿈이 꿈으로 적히지 않았을 때라도 꿈만 같은 기분이 들기에 왕왕 신비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명성 높은 자살 클럽 이야기도 스티븐슨이 그 발상을 얻은 건 누가 꾼 꿈 이야기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런 소설을 쓰려면 이따금 꿈을 기록해두는 게 좋다. 나는 그마저도 소홀히 하고 있으나 도데는 분명 꿈을 기록한 수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시가 나오야 씨의 "이즈쿠가와"라는 좋은 글이 있다.(10월 25일)
일본화의 사실写実
일본 화가가 사실을 고집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묘하다. 사실로 나아가면 어느 정도의 성공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성공을 얻어 본들 서양화 정도의 사실은 불가능하다. 빛이니 공기, 질량의 느낌을 내고 싶다면 왜 팔레트를 들지 않는가. 또 그런 느낌을 낸다는 건 인상파가 외광의 효과를 내려 한 것하고는 어지간히 정취가 다르다. 프랑스 사람은 한 발짝 앞으로 걷는다. 일본 화가가 사실에 고집하는 건 한 걸음 옆으로 걷는 것이다. 나는 하야미 교슈 씨의 무희 그림을 보면 참으로 일본화에 안타까워진다. 과거에 요시이쿠가 그린 사진화란 그와 궤가 같았으나 추구하는 바가 비속하단 점에서 되려 그만큼 싫지는 않다. 굉장히 실례인 건 알지만 아무래도 하야마 씨가 무언가의 그림을 그리는 동기는 의외로 발이 붕 떠 있는 구석이 많지 않을까 싶다.(11월 1일)
이해
한때는 방탕하게 굴면 한 사람의 예술가인 줄 알았던 녀석들이 있었다. 요즘에는 도의와 종교를 논하면 바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다 안다는 듯이 구는 녀석이 있다. 다빈치는 어찌 되었든 바쇼도 위대함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생을 쌓아야 한다. 어쩌면 말세의 우리로선 죽어서 생각하지 못하게 된 뒤로도 아직 얻지 못할 바쇼의 위대함이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장 크리스포트 중에서 크리스토프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을 안다고 생각하는 속물을 그린 한 구절이 있다. 안다는 건 세간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예술의 길을 마음먹은 이상은 알고도 알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우로 추락하고 만다. 어쩌다 덴키토분게이에 기재된 바쇼론 중에 황당한 설을 발견하여 불평 삼아 정리해본다.(11월 4일)
솥뚜껑 받침
오늘 카토리 호츠마 씨를 찾았더니 차솥 뚜겅 받침을 세 개 보여주셨다. 철로 된 작은 삼발이 같은 것이다. 그런 게 셋 모두 형태가 다르다. 다르다고는 해본들 삼발이니 만큼 세 다리와 원의 조합이 조금씩 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셋 모두 확연히 다르다. 잘 보면 볼수록 차이가 더 심하다. 하나는 엄중한 느낌이 든다. 하나는 느낌을 잘 살린 세련된 물건이다. 마지막 하나는 봐줄 게 못 된다. 이만큼 간단한 물건에도 이만큼 완성도 차이가 있는 걸까 싶었더니 정말로 예술의 길이란 게 무섭지 싶었다. 칼질 한 번에 공손한 마음이 깃드는 게 불상을 깎을 때에만 국한된 일은 아닌 거 같았다. 명인의 작업에 비하면 우리가 남긴 물건 따위는 모조리 불에 태워도 아쉬울 게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끝을 알 수 없는 건 천하에 예술 하나이다.(11월 10일)
서양인
찻잔에 차를 담아 대접하면 차를 마시기 전에 그 찻잔을 본다. 이는 일본인에겐 일상다반사인 일이나 서양인은 자주 하지 않는 듯하다. "꽤나 좋은 커피잔이네요" 그런 말은 서양 소설서는 찾아보기 힘든 거 같다. 그만큼 일본인은 예술적인 걸지도 모른다. 혹은 그만큼 일본인의 예술이란 자잘한 부분에도 손이 가는 걸지 모른다. 리치 씨는 훌륭한 도공이나 그릇이나 찻잔 일을 보면 뒤편에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는 듯하다. 이것도 누군가가 주의만 준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해도 여기서 더할 나위 없는 서양인의 느낌을 볼 수 있는 것 같다.(11월 10일)
조밀과 순잡
조밀은 기질 차이에 따른 일이다. 조粗를 싫어하고 밀密을 기뻐하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면 된다. 하지만 조밀과 순잡은 자신하고는 또 다른 일이다. 순잡은 기질 차이가 아니다. 더욱이 인격의 깊은 곳에 뿌리내린 우리 인생의 중대사이다. 순純을 아끼고 잡雑을 추하게 여기는 건 호오를 초월한 비판의 사안으로 넘어가야 한다. 오늘 밤 키쿠치 칸이 쓴 "극락"을 읽어 보았는데 키쿠치의 소설은 세밀함은 부족하더라도 시종 잡되고 속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작중의 말이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말만 쓰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백치와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잘 만들어진 달리 찾아 볼 수 없는 소설이다. 그런 점에선 한두 대가 선생 쪽이 잡되고 속한 구린내를 풍기고 있지 싶다. 조밀은 앞서 적은 것처럼 기질 차이다. 그러니 감상상으로 말하자면 키쿠치의 소설을 좋고 싫어하는 건 누구든 멋대로 소명해도 좋다. 하지만 그 예술적 가치의 비판서 세밀하지 않기에 용납하기 어렵다는 건 취향에 편중되었단 비웃음을 벗어나기 힘들다. 또 동시에 창작상으로 말하자면 키쿠치의 소설은 키쿠치의 기질과 떼어내기 어렵다. 세밀치 못하다 해서 결코 무작정 글을 날린 결과인 건 아니다. 때문에 다른 작가 특히 세밀함을 기뻐하는 작가가 허투루 키쿠치의 소설 작법을 답습하면 잡되고 속한 병에 빠질 수 있다. 나는 기질상으론 꽤나 키쿠치와 거리가 있다. 그러니 조밀을 좋고 나쁨을 따지면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순잡을 논하면 우리는 결코 타인이 아니다.(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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