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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2

어느 날의 오이시 쿠라노스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닫힌 장자에 아름다운 햇살이 드리우고 거칠고 늙은 매화나무의 그림자가 짧은 빛을 오른쪽 끝부터 왼쪽 끝까지 그림처럼 선명하게 점령하고 있다. 전 아사노타쿠미노카미 가문의 신하이자 당시엔 호소카와 가문서 가로家老로 있던 오이시 쿠라노스케요시카츠는 그런 장자 뒤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은 채로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서적은 아마 호소카와 가문의 가신 중 한 명이 빌려 준 삼국지 중 한 권이리라. 방을 쓰는 아홉 명 중 카타오카 겐고에몬은 막 측간으로 향했다. 하야미 토자에몬은 아랫방에 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외에 요시다 츄자에몬, 하라 소에몬, 마세 큐다유, 오노데라 쥬나이, 호리베 야헤이, 하자마 키헤이의 여섯 명은 장자에 드리운 햇살도 잊은 것처럼 누군가는 책에 푹 빠져 있고 또 누군가는 편지를 .. 2021. 12. 16.
개화의 남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언젠가 우에노의 박물관에서 메이지 초기 문명에 관한 전시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흐린 오후, 나는 그 전시회 각방을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렇게 당시의 판화가 진열된 마지막 방에 들어갔을 때, 그 유리 선반 앞에 서서 낡은 동판화 몇 장을 바라보는 한 노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노신사는 키가 말쑥하게 크고 어딘가 풍류가 느껴지는 노인으로 매무새가 단정한 검은 양복에 품위 있는 보울러 햇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사오 일 전에 어떤 모임 자리서 소개받은 혼다 자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까워진지 얼마 안 된 나도 자작이 교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 탓에 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자 혼다 자작도 내 발소리가 귀.. 2021. 12. 12.
신들의 웃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봄 저녁, Padre Organtino는 홀로 긴 아비토habito(법의) 자락을 끌면서 남만절 정원을 걷고 있었다. 정원에는 소나무나 노송나무 사이서 장미니 감람이니 월계수 같은 서양 식물이 심어져 있었다. 특히 꽃피우기 시작한 장미는 나무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저녁노을 속에서 옅은 단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향기는 이 정원의 정숙함에 어쩐지 일본처럼 느껴지지 않는 신비한 매력을 곁들게 했다. 오르간티노는 쓸쓸하게 모래가 붉어진 좁은 길을 걸으며 멍하니 추억에 잠겨 있었다. 로마의 대본산, 리스보아Lisboa, 리스본의 항구, 라베이카rabeca, 하베카 소리, 천도복숭아의 맛, 노래 "주, 나의 아니마(영혼)의 거울"――그러한 추억은 어느 틈엔가 이 서양 샤먼의 마음에 회향의 슬픔을 옮겨다 주었.. 2021. 12. 8.
안두의 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코콘지츠모노가타리古今実物語 하나 오사카 화공 호쿠센의 저작 중에 코콘지츠모노가타리란 책이 있다. 전후 사 권, 작가가 직접 붓을 든 삽화가 섞여 있다. 딱히 희소한 책은 아니나 조금 독특한 정취가 있어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코콘지츠모노가타리는 기담 스물한 편을 수록한다. 기담은 괴담 같으나 사실은 조금도 괴담이라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유령 니가츠도의 우왕을 두려워하다"를 보라. "이마니시무라에 헤이에몬이란 돈 많은 백성이 있었는데 그 집의 시녀가 겉보기에 뛰어나고 마음도 착하니 주인인 헤이에몬이 이를 아꼈다. 그러나 헤이에몬의 아내는 질투가 많아서 이를 듣고 분노에 가슴을 태우며 시종을 몰래 부르더니 '그 여자를 죽여라, 잘 해내면 금은을 주마'하고 말했다. 남자도 당초엔 놀랐으나 본래 욕심이.. 2021. 12. 4.
바바오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석감당 콘 토코 군은 학문을 좋아하는 미소년이다. '분게이순슈' 2월호에 카츠라가와 츄료의 케이린만로쿠를 인용해 고류큐후부츠시시후의 저자 사토 소노스케의 부족한 학문을 비웃었다. 소려한 문장풍모가 바람에 살랑이는 아름다운 나무를 방불케 한다. 단지 의심스럽다. 콘 군 또한 석감당의 기원을 알고 있으랴. 콘 군은 카츠라가와 츄료와 마찬가지로 함께 세이겐슈키의 설을 믿는 자이다. 하지만 이시칸토에 관한 설은 세이겐슈키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안사고가 급취장(사유)의 주석에도 "衛有石碏鄭有石癸斉有石之紛如其後亦以命族石敢当"라고 되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이다. 서씨필정서 말한다. "二説大不相侔亦日用不察者也"하고. 그렇다면 그 기원을 모르는 게 비단 사토 소노스케 군만 있지는 않을 .. 2021. 12. 3.
의혹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제 와서는 십 년 가량 지난 일이다만 어느 해 봄, 나는 실천윤리학 강의를 의뢰 받아 이래저래 일주일 가량 기후켄 아래의 오오가키마치에 머물게 되었다. 본래 지방 유지란 사람의 두터운 민폐에 질색을 하던 나는 나를 초청해준 어떤 교육가 단체에 미리 편지를 보내 환대니 환영식이니 또 명소 안내니 갖은 강연에 부속되는 모든 쓸데없는 시간 때우기를 거절하고 싶다는 요지를 희망해두었다. 그 일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풍평이 이 지방에도 전해졌는지 내가 도착하자 그 단체의 회장인 오오가키마치장의 알선으로 모든 게 내 바람처럼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숙소도 평범한 여관을 피해 재산가 N 씨의 마을 안 별장이란 한적한 거처를 마련해주셨다. 내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건 그렇게 머물게 된 별장서 내가 우연히 접하게 ..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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