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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후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대중의 평판은 엇나가기 쉽기 마련이다. 현재의 대중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역사는 이미 펠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나 시민이나 문예부흥기(르네상스) 시기의 플로렌스 시민마저 이상의 대중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과거나 오늘의 대중마저 그렇다면 미래 대중의 평판도 알 법 하지 않을까. 그들이 백 년 후에 모래와 금을 구분할 수 있으랴. 아쉽게도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이상적인 대중을 얻는다 한들 과연 절대미란 게 예술 세계에 존재할까.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은 단지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이지, 결코 내일의 내가 가진 눈이 될 수 없다. 또 동시에 내 눈은 결국 일본인의 눈이며 서양인의 눈이 아님 또한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장소와 시간.. 2021. 4. 12.
속 서쪽의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1.04.02 -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서쪽의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다시 이 사람을 보라 그리스도는 '만인의 거울'이다. '만인의 거울'이란 말은 만인이 그리스도를 따라 하란 말이 아니다. 단 한 명의 그리스도 안에 만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를 그리다 잡지 마감에 쫓겨 펜을 내려놔야만 했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겼기에 다시 한 번 나의 그리스도를 덧그리고 싶다. 누구나 내 글에――특히 그리스도를 그린 것 따위에 관심을 느끼는 법은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네 복음서 속에서 또렷이 나를 부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끼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덧그리는 것 또한 나 스스로는 멈추게 할 수 없다. 2 그의 전기 작가 요한은 그리스도의 전기 작가 중에서 .. 2021. 4. 11.
쿠메 마사오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쿠메는 관능에 예민한 촌뜨기입니다. 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실생활 속에서도 촌뜨기스러운 면모는 잔뜩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관능만은 어지간한 도시 사람보다 훨씬 예민합니다. 거짓말 같다면 쿠메의 작품을 읽어 보십시오. 색채나 공기 같은 게 참으로 선명하고 참으로 청신하게 그려집니다. 이 점만을 떼어 이야기하면 현재 문단에서 쿠메와 맞먹을 사람은 몇 되지 않겠지요. 물론 촌뜨기 같은 부분에도 좋은 점은 있습니다. 아뇨, 되려 쿠메의 요새 같은 일면은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순박한 서정미 따위는 이 촌뜨기 기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확실히 할까요. 그건 쿠메가 촌뜨기라도 단순한 촌뜨기가 아니란 점입니다. 물론 이래서야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쿠메의 촌뜨기 기질 속에 도락가(댄디)의 기질이 많.. 2021. 4. 10.
내 주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책상 나는 학교를 나온 해 가을 "참마죽"이란 단편을 신소설에 발표했다. 원고료는 한 장에 40전이었다. 당시에도 그것만으로 입고 먹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다른 벌이를 찾아 같은 해 12월에 해군 기관 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나츠메 선생님이 작고하신 건 그해 12월 9일이었다. 나는 한 달에 60엔의 월급을 받으며 낮에는 영문일역을 가르치고 밤에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로부터 일 년 가량 지난 후, 내 월급은 백 엔이 되었고, 원고료 또한 한 장에 2엔 전후가 되었다. 나는 그런 두 수입이 있으면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 갈 수 있겠지 싶어, 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친구의 사촌과 결혼했다. 내 낡은 자단 책상은 그때 나츠메 선생님의 사모님께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책상은 가로로 세 척,.. 2021. 4. 9.
납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집 뒷마당 울타리 옆에 한 그루 납매가 있다. 올해도 츠쿠바산에서 불어오는 추위에 호박과 닮은 꽃을 피우지 못 했다. 이 나무는 본가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가에이 시대에 그려진 집 그림을 펼쳐보면 츠지야 사도노카미의 집 앞에 '아쿠타카와'라 써넣는 걸 볼 수 있다. 이 '아쿠타가와'가 우리 집이었던 셈이다. 우리 집도 도쿠가와 가문의 와해 이후로 얼마 안 되던 돈마저 잃고, 부흥은 이루지 못 했으며 아버지나 숙부 모두 길에 내몰려 집안 재산을 다 팔아 넘겼다 한다. 할아버지의 와카자시 하나 남지 못 했다. 지금은 단지 한 그루의 납매만이 열여섯 손자에게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눈속에서도 투명하게 비치는 납매 가지야 2021. 4. 8.
추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눈이 그친 어느 오전이었다. 야스키치는 물리 교관실의 의자에 앉아 스토브의 불을 바라보았다. 스토브의 불은 숨이라도 쉬듯이 노란색으로 불타며 검은 잿먼지를 가라앉게 했다. 실내에 감도는 추위와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야스키치는 문득 지구 밖의 우주적 한냉을 상상하면서, 붉게 탄 석탄에 무언가 동정에 가까운 걸 느꼈다.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스토브 앞에 선 미야모토란 이학사理学士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근시용 안경을 걸친 미야모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콧수염이 옅은 입가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호리카와, 자네는 여자도 물체라는 걸 알고 있나?"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동물이 아니야, 물체지――이건 나도 고심의 끝에 얼마 전에 발견한 진리야." "호리카와 씨, 미야모..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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