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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주충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근년 들어 찾아보기 힘든 더위였다. 어디를 보아도 진흙으로 굳힌 집들의 지붕 기와가 납처럼 둔하게 햇살을 반사하는 게 그 밑에 걸린 제비집마저, 심지어는 그 안에 담긴 병아리나 알마저 그대로 삶아 죽이는 거 아닐까 싶다. 하물며 밭이란 밭은 마도 기장도, 다들 땅을 향해 축 고개를 숙인 채 축 늘어져 있다. 그 밭 위에서 보이는 하늘도 한동안의 온기 탓인지 땅에서 가까운 대기는 맑으면서도 침침하게 탁하였고, 그 곳곳에 싸라기눈을 달구어 지진 듯한 구름이 띄엄띄엄 떠올라 있다.――"주충"의 이야기는 이런 더위에 일부러 뜨거운 보리타작마당에 나와 있는 세 남자로 시작된다. 이상하게도 그중 한 명은 전라로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더군다나 어떻게 된 것인지 얇은 줄로 손과 발을 둘둘 둘러싸고 있다. 정.. 2021. 4. 19.
'키쿠치 칸 전집' 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스탠달과 메리메를 비교할 경우 스탠달은 메리메보다도 위대하지만 메리메보다 예술가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건 메리메보다도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담을 재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선 키쿠치 칸 또한 문단의 후배들과 비교할 경우 꼭 탁월한 예술가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 중에서 그림적 효과를 담아야 할 묘사는 이따금 파탄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향이 존재하는 한, 섬세한 효과를 즐기는 향락가에겐 어떠한 그의 걸작이라도 충분한 만족은 주지 못 하리라. 쇼와 골스워즈를 비교할 경우 쇼는 골스워즈보다도 위대하지만 골스워즈보다도 예술가가 아니라 한다. 그 대부분은 순수한 예술적 감명 이외에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 같은 사상을 토로.. 2021. 4. 18.
앵무――대지진 메모 하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건 제목처럼 메모에 지나지 않는다. 메모를 메모로 발표하는 건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모 그대로 발표하는 것에 마냥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다이쇼 12년 9월 14일 기록. 혼죠 요코아미쵸에 사는 잇츄부시 스승. 이름은 카네 다이후. 나이는 63살. 17살 손녀와 둘이서 살았다. 집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화재가 있었다. 손녀와 함께 료고쿠로 뛰었다. 챙긴 물건은 앵무새 새장뿐. 앵무 이름은 고로. 등은 회색, 배는 복숭아색. 기술은 현관종 우는소리와 "그러"(그렇구나를 줄인 말)란 말을 흉내 내는 것뿐. 료고쿠에서 닌교쵸로 빠지는 동안 어느 틈엔가 손녀와 떨어지고 말았다. 걱정은 되었지만 찾을 새도 없었다. 길거리의 인파, 산처럼.. 2021. 4. 17.
시집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의 시집이 서점에 내놓인 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가철한 처녀 시집에 '꿈꾸면서'란 이름을 붙였다. 권두의 서정시 이름을 시집의 이름으로 쓴 것이었다. 꿈꾸면서, 꿈꾸면서, 하루종일, 꿈꾸면서…… 그는 시의 한 절마다 이런 반복을 이용했다. 그의 시집은 몇 권이나 서점에 진열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다. 아무도?――아니 꼭 '아무도'라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시집은 12권 가량 칸다의 고서점에도 진열되었다. 하지만 권말에 "정가 1엔"이라 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서점은 30전 내지는 25전의 돈을 받았다. 1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시집은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긴자의 노점에 진열되었다. 이번에는 "균일가 30전"이었다. 행인은 이따금 겉표지를 넘겨 권두의 서정시를 읽었다.(그의 시.. 2021. 4. 15.
부장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명사와 집 나츠메 선생님의 집이 팔린다고 들었다. 그런 커다란 집은 보존하는 게 쉽지 않다. 서재는 그리 크지 않으니 집에서 떼어내 보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상당한 사람인 만큼 작은 집이나 혹은 외각에서 사는 편이 나중에 보존할 때에 형편이 좋다. 모자를 뒤쫓는다 길을 걷고 있으면 불쑥 바람이 불어 모자가 날아간다. 내 주위 모든 걸 의식하며 모자를 쫓는다. 그러니 좀처럼 모자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모자가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모자만 생각하며 그 뒤를 쫓는다. 자전거에 부딪힌다. 자동차에 치인다. 짐마차의 수레꾼한테 한 소리를 듣는다――그러는 동안 모자는 바람 방향을 따라 갈려간다. 그런 사람은 의외로 보자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인생은 결국 뜻대.. 2021. 4. 14.
나의 하이쿠 공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초등학교 시절――4학년 때 처음으로 열일곱 자를 늘어놓았다. "낙옆 불태워 나무의 신 바라본 밤이로구나". 이즈미 쿄카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낭만주의를 배우기 마련이다. 중학교 시절――"닷사이쇼오쿠하이와"나 "시키 수필" 따위를 읽었다. 시는 거의 짓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동급생 중에 쿠메 마사오가 있었다. 삼정이란 호를 가진 슈자야파의 시인이었다. 삼정 및 그 동료의 일은 시를 대하는 키타하라 하쿠슈 씨 같아서, 인상주의 수법을 사용한 하이카이라면 재밌게 읽었다. 이 시대에도 직접 짓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이전 시대와 거의 동일하다. 교사 시절――해군 기관 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타카하마 선생님과 같은 가마쿠라에 살다 보니 문득 시를 짓고 싶어졌다. 열 구 가량을 첨삭을 부탁하니, .. 2021.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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