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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시집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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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시집이 서점에 내놓인 건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가철한 처녀 시집에 '꿈꾸면서'란 이름을 붙였다. 권두의 서정시 이름을 시집의 이름으로 쓴 것이었다.
  꿈꾸면서, 꿈꾸면서,
  하루종일, 꿈꾸면서……
 그는 시의 한 절마다 이런 반복을 이용했다.
 그의 시집은 몇 권이나 서점에 진열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다. 아무도?――아니 꼭 '아무도'라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시집은 12권 가량 칸다의 고서점에도 진열되었다. 하지만 권말에 "정가 1엔"이라 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서점은 30전 내지는 25전의 돈을 받았다.
 1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시집은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긴자의 노점에 진열되었다. 이번에는 "균일가 30전"이었다. 행인은 이따금 겉표지를 넘겨 권두의 서정시를 읽었다.(그의 시집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팔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종이도 점점 낡아가고 가철도 느슨해졌다.
  꿈꾸면서, 꿈꾸면서,
  하루종일, 꿈꾸면서……
 3년이 지난 후, 기차는 연기를 남기며 구백팔십육 부의 "꿈꾸면서"를 홋카이도로 옮겼다.

 구백팔십육 부의 "꿈꾸면서"는 삿포로의 어떤 창고에서 먼지를 쌓아갔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그의 시집은 여자들의 손에 무수한 종이봉투로 변모했다. 종이봉투는 그의 서정시를 옆으로나 거꾸로 인쇄해내고 있었다.
  꿈꾸면서, 꿈꾸면서,
  하루종일, 꿈꾸면서……
 보름이 지난 후, 이러한 종이봉투는 사과밭에서 잎을 감싸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사과밭에서 자란 무수한 사과는 이제 그러한 종이 봉투 안에서――종이 봉투를 투과한 햇살 속에서 홀로 단맛을 더해가고 있다. 파랗게, 작은 냄새를 풍기며.
  꿈꾸면서, 꿈꾸면서,

  하루종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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