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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앵무――대지진 메모 하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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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제목처럼 메모에 지나지 않는다. 메모를 메모로 발표하는 건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모 그대로 발표하는 것에 마냥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다이쇼 12년 9월 14일 기록.

 혼죠 요코아미쵸에 사는 잇츄부시 스승. 이름은 카네 다이후. 나이는 63살. 17살 손녀와 둘이서 살았다.
 집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화재가 있었다. 손녀와 함께 료고쿠로 뛰었다. 챙긴 물건은 앵무새 새장뿐. 앵무 이름은 고로. 등은 회색, 배는 복숭아색. 기술은 현관종 우는소리와 "그러"(그렇구나를 줄인 말)란 말을 흉내 내는 것뿐.

 료고쿠에서 닌교쵸로 빠지는 동안 어느 틈엔가 손녀와 떨어지고 말았다. 걱정은 되었지만 찾을 새도 없었다. 길거리의 인파, 산처럼 쌓인 짐. 카나리아 새장을 든 여자를 본다. 카페 여사장으로 보이는 복장. "우리와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죠"라고 말했다. 그만한 여유는 있었던 것이리라.
 요로이바시에 이른다. 마을 한 쪽은 불타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이 타는 건가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또 무엇인가 떨어진다 싶었더니 전신을 감싸던 납관이 불에 녹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쯤부터 한 층 많아진 사람에게 떠밀려 앵무새 새장도 뭉개졌지 싶다. 앵무는 시종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루노우치에 나오니 히비야 상공에 연기가 오르는 걸 보았다. 경시청이나 제국 극장도 불타 사라졌다. 겨우 쿠스노키 동상 옆에 이른다. 잔디 위에 앉지만 손녀가 줄곧 마음에 걸렸다. 큰 소리로 손녀의 이름을 외치며 피난민 사이를 뒤진다. 일몰. 끝내 소나무 그림자에 눕는다. 옆에는 주식일 하는 사람 몇 명인가가 있었다. 하늘은 화재의 연기 탓에 어디를 보아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앵무가 대뜸 "그러"하고 말했다.
 다음날도 마루노우치 일대부터 히비노야까지 손녀를 찾아다녔다. "닌교쵸나 료고쿠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한다. 오후부터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도리 없이 히비야 연못의 물을 마셨다. 손녀는 끝내 찾지 못 했다. 밤에는 다시 마루노우치 잔디 위에 누웠다. 앵무 새장을 베개로 쓰며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히비야 연못에서 집오리를 잡아먹는 피난민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늘은 화재 탓에 밝았다.
 셋쨋날에는 손녀를 단념하고 신주쿠에 사는 조카를 찾았다. 사쿠라다에서 한조몬까지 이동하니 신주쿠 또한 불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야나카의 단나데라를 의지하려 했다. 주림과 갈증이 지독해졌다. "고로를 죽이는 건 싫었지만 죽으면 먹으려 했습니다."하고 말한다. 쿠단우에에 가던 도중, 말단 공무원 같은 사람에게 겨우 현미 한 줌 가량을 받아 그대로 씹어 먹었다. 또 잘 생각해 보니 앵무새 새장을 든 채로 단나데라의 신세를 질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곧장 앵무에게 남은 현미를 먹이고 쿠단우에의 벽 위에서 놓아준다. 일몰 후, 야나카의 단나데라에 이른다. 스님이 친절히 말하기를 며칠이라도 머물란다.
 다섯째 날 아침, 내 집에 왔다. 아직도 손녀의 행방은 알지 못 한다고 한다. 정정하신 스승님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췌했다.
 추기. 신주쿠 조카집은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손녀는 그곳에 피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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