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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부장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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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와 집

 나츠메 선생님의 집이 팔린다고 들었다. 그런 커다란 집은 보존하는 게 쉽지 않다.
 서재는 그리 크지 않으니 집에서 떼어내 보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상당한 사람인 만큼 작은 집이나 혹은 외각에서 사는 편이 나중에 보존할 때에 형편이 좋다.

    모자를 뒤쫓는다

 길을 걷고 있으면 불쑥 바람이 불어 모자가 날아간다. 내 주위 모든 걸 의식하며 모자를 쫓는다. 그러니 좀처럼 모자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모자가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모자만 생각하며 그 뒤를 쫓는다. 자전거에 부딪힌다. 자동차에 치인다. 짐마차의 수레꾼한테 한 소리를 듣는다――그러는 동안 모자는 바람 방향을 따라 갈려간다. 그런 사람은 의외로 보자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인생은 결국 뜻대로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지간한 정치적, 혹은 실업적 천재가 아니라면 쉽사리 모자를 손에 넣을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상한 것 하나

 가난한 월급쟁이의 아내, 뒷골목에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통속 소설 속 백작 부인의 생활에 가슴을 뛰고 환희하며 읽는 걸 보면 비참해진다. 이상하기도 하다.

    "KEAN"과 "탄식의 삐에로"

 최근 수입된 유명 영화라는 "KEAN과 "탄식의 삐에로"의 내용을 들었다.
 내용으로는 KEAN 쪽이 소설 같기도 하며 재미있지 싶다. 의외로 대부분의 남자는 KEAN 같은 위치가 되기 쉽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여자는 KEAN의 상대인 백작 부인 같은 경우에 놓이기 쉽기 마련이다.
 반대로 탄식의 삐에로 부부 같은 경우엔, 대다수의 사람은 평생에 한 번도 되기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호랑이에게 물리는 일은 내 평생 중 한 번이라도 있을까 싶다. 그게 만약 젊은 호랑이 내지는 개라면 또 모를까.


    영화

 영화를 옆에서 보면 정말로 비참해진다. 어떤 미인이라도 눌린 것처럼 보이니까.

    또

 영화는 아무리 보아도 곧장 그 내용을 잊어버리고 만다. 끝내는 제목도 전부 잊어버린다. 보기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책이라면 아무리 재미없어도 그렇게 잊는 법이 없는데 정말로 신기하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말을 해준다면 이렇게 잊을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말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러일전쟁의 전장에서 부상해 위생대에 수용되지 못 하고 하룻밤 쓰러져 있던 자는 만주 개에게서 성기부터 먹혔다고 한다. 그 다음으론 배를 먹힌다. 이런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변망와해"에서

 야스이 속켄의 "변망와해"는 재미있는 책이다. 이런 걸 보면 일본인은 굉장히 리얼리스틱한 종족이란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의 여러 일을 보아도 일본에서는 혁명 같은 것도 의외로 별 어려움 없이 이뤄져, 외국에서 볼 법한 유혈혁명의 비참함을 보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사형이 집행될 때에 교수대에 홀로 걸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다수는 안기듯이 하여 교수대에 오른다.
 미국에서는 이미 몇 주가 사형을 폐지하였다. 일본에서도 멀지 않아 사형은 사라지리라.
 덮어 놓고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건 민폐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사람 입장에선 평생을 감금 당한다――그것만으로 충분하니 구태여 사형 따위를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또

 죄인으로서는 외출의 자유를 속박 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일이다.
 수감 중에 그 사람의 일까지 빼앗는 것도 그렇다.
 가령 내가 모종의 일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에는 펜과 종이와 책은 줬으면 한다. 내가 밧줄에 묶어 보는 정도로는 시작되지 않을 이야기일테지만.

    또

 학교에 있었을 적, 수업이 끝나 2층에서 내려왔다. 밖에선 어느 샌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 신발을 신기 위해 신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있어야 할 신발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나는 실내용 조리를 신고 있었다. 밖에서는 지독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말로 곤란해졌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 것이 아닌 깨끗한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걸 가지고 싶었다. 가져가고 싶었다.
 결국 당시엔 그 신발을 가져가지 않았지만, 그 경우엔 그 신발을 가져갔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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