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후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12.
728x90
반응형
SMALL

 나는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대중의 평판은 엇나가기 쉽기 마련이다. 현재의 대중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역사는 이미 펠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나 시민이나 문예부흥기(르네상스) 시기의 플로렌스 시민마저 이상의 대중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과거나 오늘의 대중마저 그렇다면 미래 대중의 평판도 알 법 하지 않을까. 그들이 백 년 후에 모래와 금을 구분할 수 있으랴. 아쉽게도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이상적인 대중을 얻는다 한들 과연 절대미란 게 예술 세계에 존재할까.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은 단지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이지, 결코 내일의 내가 가진 눈이 될 수 없다. 또 동시에 내 눈은 결국 일본인의 눈이며 서양인의 눈이 아님 또한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믿을 수 있으랴. 확실히 단테의 지옥불은 지금도 동방의 뜨내기들을 전율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불과 우리 사이에는 14세기의 이탈리아란 게 운무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하물며 나는 보잘 것 없는 문인이다. 후대의 평판이 잘못되지 않고 보편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글을 명산 위에 얹는 일은 나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내가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건 물을 것도 없이 확연하리라 믿는다.
 이따금 나는 몇 년 후, 혹은 오십 년 후, 더욱이 백 년 후, 내 존재마저 알지 못 하는 시대가 오는 걸 상상한다. 그때 내 작품집은 진한 먼지에 뒤덮여 칸다 언저리에 위치한 고서점 선반 구석에서 멍하니 독자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어느 도서관에서 단 한 권만 남은 채로 비참하게 좀 먹혀 문자마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연히 내 작품집을 찾아내 그 안의 짧은 한 편을, 혹은 그 한 편 속의 몇 행인가를 읽지는 않을까. 더욱이 형편 좋은 소리를 하자면 그 한 편이나 몇 행인가가, 내가 모르는 독자에게 비록 작을지언정 아름다운 꿈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나는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때문에 나는 이런 내 상상이 내 신념과 모순되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상상한다. 막연한 후대에 내 작품집을 손에 얹을 한 독자가 있으리란걸. 그리고 그 독자의 마음 앞에 몽롱할지언정 내 신기루가 떠오를 것을.
 나는 내 어리석음을 비웃을 현명한 사람들이 있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내 어리석음을 비웃는 점에 한해서는 구태여 남에게 밀린다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심지어 그 어리석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흔들림을 연민할 수밖에 없다. 혹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다른 여러 사람도 연민할 수밖에 없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