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주충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19.
728x90
반응형
SMALL

      하나

 근년 들어 찾아보기 힘든 더위였다. 어디를 보아도 진흙으로 굳힌 집들의 지붕 기와가 납처럼 둔하게 햇살을 반사하는 게 그 밑에 걸린 제비집마저, 심지어는 그 안에 담긴 병아리나 알마저 그대로 삶아 죽이는 거 아닐까 싶다. 하물며 밭이란 밭은 마도 기장도, 다들 땅을 향해 축 고개를 숙인 채 축 늘어져 있다. 그 밭 위에서 보이는 하늘도 한동안의 온기 탓인지 땅에서 가까운 대기는 맑으면서도 침침하게 탁하였고, 그 곳곳에 싸라기눈을 달구어 지진 듯한 구름이 띄엄띄엄 떠올라 있다.――"주충"의 이야기는 이런 더위에 일부러 뜨거운 보리타작마당에 나와 있는 세 남자로 시작된다.
 이상하게도 그중 한 명은 전라로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더군다나 어떻게 된 것인지 얇은 줄로 손과 발을 둘둘 둘러싸고 있다. 정작 당사자는 그런 걸로 괴로워하는 기미도 없다. 키가 작고 혈색이 좋은, 한없이 둔중한 느낌을 주는 돼지처럼 뚱뚱한 남자였다. 마침 적당한 옹기 하나가 그 남자의 머리맡에 놓여 있고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른 한 사람은 노란 법의를 입고 귀에 작은 청동 장식을 찬, 얼핏 기이하고 옛된 수도승이다. 피부색이 검은 데다가 머리나 수염이 곱슬곱슬한 것이, 파미르 서쪽에서 온 사람인 듯했다. 이 사람은 아까부터 끈기 좋게 붉은 먼지떨이를 휘둘러 전라 남자에게 다가오려는 등에나 파리를 쫓아내고 있었는데, 역시 조금 지쳤는지 이제는 옹기 옆으로 와 칠면조 같은 자세를 취하며 아쉽다는 양 주저앉아 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두 사람과 거리를 두고서 보리타작마당의 구석에 자리한 초가 건물 아래에 서있다. 이 남자는 턱 끝에 쥐 꼬리 같은 수염을 간신히 기른 채, 뒤꿈치가 가려지는 조포 적삼에, 매듭을 늘어트린 다갈색 오비를 차고 있었다. 하얀 새의 깃털로 만든 백우선 부채를 이따금 거창하게 쓰는 모습을 보면 아마 유생임이 분명하렸다.

 세 사람은 마치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더군다나 제대로 움직이는 법도 없다. 무언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단한 관심을 가진 채로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해는 정오쯤 되리라. 개도 낮잠을 자는지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보리타작마당을 둘러싼 마나 기장도 푸른 잎에 빛을 받으며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또 그 끝에 보이는 하늘도 뜨거운 아지랑이를 한가득 펼친 것이, 구름 꼭대기마저도 이 더위에 거친 숨을 몰아내쉬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진다. 둘러보니 숨을 내쉬고 있는 건 이 세 남자 말고는 없었다. 또 그 세 사람은 관제묘에 안치된 진흙 인형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물론 일본의 이야기는 아니다――중국 장산이란 곳에 위치한 유씨의 보리타작마당에서, 어느 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둘

 전라로 뜨거운 여름 하늘 아래에 누워 있는 건 이 보리타작 마장의 주인으로, 성은 유요 이름은 대성이라 한다. 장산에서는 굴지의 소봉가 중 한 명이다. 이 남자의 도락은 술을 마시는 것 하나로, 아침부터 술잔을 놓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홀로 술을 따를 때마다 옹기를 가득 채웠다"니, 평범하지 않은 주량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부곽의 밭 삼백 묘, 반은 기장이었다"니 술에만 쩔어 기둥뿌리 뽑을 우려는 없었다.
 그런 사람이 왜 전라로 이 뜨거운 여름 하늘 밑에 누워 있는가. 그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그날, 유가 같은 술친구인 손 선생과 함께(이 사람이 백우선을 든 유생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방에서 죽부인에 기대어 바둑을 두고 있자니, Y자 머리를 한 시종이 와 "지금 보당사에서 지낸다는 스님께서 찾아와 주인을 꼭 뵈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하고 물었다.
 "뭐 보당사?" 그렇게 말한 유는 작은 눈을 눈부시다는 양 껌뻑였다. 이윽고 더위를 머금은 뚱뚱한 몸을 일으키며 "그럼 안내하거라."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손 선생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아마 그분이 실 겁니다."하고 덧붙였다.
 보당사의 스님이란 서역에서 온 승려이다. 그런 사람이 의료는 물론이요 방술도 해준다니 주위에선 평판이 좋다. 이를테면 장삼의 흑내장이 호전되었다던가, 이사의 병환이 그 자리서 낳았다던가 하여 거의 기적에 가까운 소문이 횡행했다――두 사람 또한 그 소문을 모르지 않았다. 이 외국 승려는 무슨 일로 유를 찾았을까. 물론 유는 부른 기억이 없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유는 손님을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다. 하지만 또 다른 손님이 있을 때에 새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은 기꺼이 만나준다. 손님 앞에서 다른 손님이 있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아이 같은 허영심을 지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승려는 요즘 들어 어딜 가나 좋은 이야기만 듣는다. 결코 만나서 부끄러워할 법한 손님은 아니다――유가 만나려 한 동기는 대강 그런 식이었다.

 "무슨 일일까요."
 "구걸이겠지요. 시주라도 달라고 할 겁니다."
 둘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이윽고 키가 크고 광채 나는 눈을 가진 이형의 수도승이 Y 머리를 한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노란 법의를 입고 그 어깨에 길게 뻗은 곱슬머리를 번거롭게 늘여놓고 있다. 그런 사람이 붉은 먼지떨이를 든 채 태연히 방 중앙에 섰다. 인사도 없었을뿐더러 입도 열지 않았다.
 유는 한동안 주저하였지만 곧 불안해져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승려가 말했다. "당신이지요, 술을 좋아한다는 게?"
 "그렇습니다." 유는 너무 갑작스러운 물음이기에 애매하게 대답하며 도움을 청하듯 손 선생을 보았다. 손 선생은 태연히 홀로 바둑판에 돌을 두고 있다. 어울릴 기미가 전혀 없었다.
 "당신은 희귀한 병에 걸려 계십니다. 아십니까?" 승려는 못을 박듯이 그렇게 말했다. 유는 병이란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죽부인을 쓰다듬으며,
 "병――인가요?"
 "그렇지요."
 "아니, 어릴 적부터……" 유가 무어라 말하려 하니 승려는 말을 가로막고는,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죠."
 "……" 유는 상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실제로 이 남자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법이 없었다.
 "그게 병의 증거입니다." 승려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배 안에 주충이 있습니다. 그걸 제거하지 않으면 이 병은 낫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병을 고쳐드리러 왔습니다."
 "나을 수 있을까요?" 유는 저도 모르게 매가리 없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나을 수 있으니 왔지요."
 그러자 이제까지 조용히 문답을 듣던 손 선생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약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니, 약 따위는 쓰지 않습니다." 승려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손 선생은 본래 도교와 불교 두 종교를 거의 이유 없이 경멸했다. 도사나 승려와 어쩌다 자리를 같이 해도 입을 연 적은 거의 없다. 이번에 불쑥 입을 열 생각이 든 것은 전적으로 주충이란 말에 관심이 끌렸기 때문으로, 술을 좋아하는 선생은 그 말에 자기 배 안에도 주충이 있지 않을까 조금 불안해진 것이다. 하지만 승려의 마지못한 답을 듣자 문득 자기가 바보 같아졌다. 선생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원래 하던 것처럼 묵묵히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오만한 승려와 만나서 무언가를 하려는 주인 유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는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럼 침이라도 쓰는 걸까요."
 "무얼, 훨씬 간단한 일입니다."
 "그럼 굿일까요."
 "아뇨, 굿도 아닙니다."
 그런 대화가 반복된 끝에, 승려는 간단히 치료법을 설명했다――그 말에 따르면 단지 전라가 되어 햇살 아래에 나와 있으면 된다고 한다. 유에게는 그게 굉장히 간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만한 일로 낫는다면 치료해서 나쁠 게 없다. 그런 데다가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승려의 치료를 받는다는 점에 조금의 호기심도 느꼈다.
 기어코 유도 나서서 고개를 숙이며 "그럼 치료해주시겠습니까."하고 말하게 되었다――유가 전라로 더운 여름의 보리타작마당에 누워 있는 데에는 그런 연유가 있었다.
 승려는 움직이면 안 된다며 유의 몸을 줄로 둘둘 말았다. 그리고 아이 시종 하나에게 술이 들어간 옹기병 하나를 유의 머리맡에 놓게 했다. 같이 자리해 있던 좋은 친구 손 선생이 이 이상한 치료에 입회하게 된 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주충이란 게 무엇일까. 그게 배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리맡의 술병은 무슨 의미일까. 그런 걸 아는 건 승려 이외엔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여름 하늘 아래서 전라로 누워 있는 유는 굉장히 어리석게 보일 수 있으나, 평범한 사람이 학교 교육을 받는 것도 사실 이와 거의 같은 일이다.

       셋

 덥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옥처럼 되는가 싶었더니 축축 미적지근한 온기를 남기며 눈동자 쪽으로 흐른다. 아쉽게도 팔이 묶인 탓에 손으로 닦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목을 움직여 땀의 진로를 바꾸려 했지만, 그 순간 지독한 현기증이 덮쳐 유감스럽게도 이 계획 또한 물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땀은 사양 않고 눈꺼풀을 적시고는 코 옆에서 입 주변까지 돌며 턱 밑까지 흘렀다. 꺼림칙하기 짝이 없다
 그전까지는 눈을 뜨고 하얗게 탄 하늘이나 잎을 흔드는 마밭 따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땀이 계속 흐르게 된 후로는 그마저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유는 처음으로 땀이 눈에 들어가면 스며 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도축장 양 같은 얼굴로 가만히 눈을 감으며 햇살을 받았다. 그러고 있자니 이번에는 얼굴이고 몸이고 위로 드러난 부분의 피부가 서서히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피부 전면에 갖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힘이 작용하고 있지만 피부는 조금의 탄력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곳곳이 쩌릿쩌릿 따가웠다――그런 식으로 설명하면 될 듯한 고통이었다. 이건 땀 흘리는 정도의 괴로움이 아니다. 유는 승려의 치료를 받는 게 조금 꺼림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훗날 돌이켜 보면 이마저도 아직 괴롭지 않은 정도였다――곧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조맹덕인가 누구였던가. 길 앞에 매화나무가 있다고 말해 군사의 갈증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겨우엔 아무리 매실의 새콤달콤함을 머리에 떠올려 보아도 목의 갈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턱을 움직이거나 목을 깨물어 보기도 했지만 입안은 줄곧 열을 품고 있다. 그나마도 머리맡의 병이 없었다면 어느 정도 견디기 쉬웠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병 입구에선 술 냄새가 풀풀 풍겨와 끊임없이 유의 코를 자극하였다. 심지어 서서히 술 냄새가 강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유는 하다못해 병이라도 보려고 눈을 떴다. 눈을 위로 치켜떠 보자 병 입구와 태양빛에 부풀어 오른 몸뚱어리의 절반가량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건 그게 전부였지만 동시에 유의 상상에는 그 병의 어두운 내부에 황금색 같은 술이 한가득 담겨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말라서 갈라진 입술을 건조한 혀로 핥아 보았지만 침이 올라올 기미는 도무지 없었다. 이제는 땀마저 말라서 전처럼 흐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지독한 현기증이 두세 번 연이어 느껴졌다. 두통은 아까부터 끊이지를 않았다. 유는 속으로 승려를 원망했다. 또 왜 자신 같은 사람이 저런 인간의 언변에 놀아나 이런 바보 같은 괴로움을 당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는 사이 목은 더더욱 말라 갔다. 가슴은 묘하게 갑갑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유는 기어코 마음을 먹고 머리맡의 승려에게 치료 중지를 청할 생각으로 신음하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유는 뭔지 모를 덩어리가 조금씩 가슴에서 목으로 기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건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는가 하면, 혹은 도마뱀처럼 작게 꼼지락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어떤 부드러운 게 움찔움찔 식도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게 목젖 아래를 억지로 빠져나간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미꾸라지 같은 것이 미끄덩하고 기세 좋게 어두운 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박자에 병 쪽에서 퐁당하고 무언가가 술 안으로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승려가 대뜸 낮추고 있던 몸을 일으켜 유의 몸을 구속하던 줄을 풀기 시작했다. 주충이 나왔으니 안심해도 좋단다.
 "나왔나요?" 유는 신음하듯 그렇게 말하고는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신기한 나머지 목이 마른 것도 잊은 채 전라인 채로 병 쪽으로 기어갔다. 그걸 본 손 선생도 백의선으로 햇살을 막으며 황급히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셋이 나란히 병안을 들여다보니 살색이 갈색에 가까운 자그마한 도롱뇽 같은 것이 술 안을 헤엄치고 있다. 길이는 3촌 정도 될까. 입은 물론이요 눈도 있다. 아무래도 헤엄치며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유는 그걸 보자 대뜸 가슴이 쑤셔왔다……

       넷

 승려의 치료 효과는 확실했다. 유대성은 그날부터 뚝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냄새를 맡는 것마저도 싫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유의 건강이 조금씩 나빠졌다. 올해로 주충을 토해낸 지 3년째가 된다. 이제는 왕년의 통통하던 그림자는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광택이 나쁜 피부가 기름기를 머금은 채로 험악한 얼굴뼈를 감싸고, 서리 낀 두 구레나룻이 관자놀이 위에 짧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일 년 중 몇 번이나 몸져 눕는지는 셀 수도 없게 되었다.
 또 쇠퇴한 건 비단 유의 건강만이 아니었다. 유의 재산 또한 점점 기울어져 삼백 평 가량 있던 밭도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유 스스로도 도리 없이 익숙하지 않은 손에 농기구를 들고 안쓰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왜 유는 주충을 토한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는가. 왜 집안이 기울었는가――주충을 토한 사실과 유의 몰락을 인과 관계에 늘어놓고 보는 이상, 이건 누구나 떠올리기 쉬운 의문이다. 실제로 이 의문은 장산에 사는 갖은 직업의 사람들의 입에서 반복되어 갖은 종류의 답이 내려졌다. 여기 열거한 세 답도 실은 그 안에서 가장 대표적인 걸 고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첫 번째 답. 주충은 유의 복이지 병이 아니었다. 어쩌다 어리석은 승려와 만나 하늘이 내려주신 복을 제 손으로 내친 꼴이다.
 두 번째 답. 주충은 유의 병이지 복이 아니었다. 한 번 마실 때마다 독을 비우는 게 도무지 일반적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약 주충을 빼지 않았다면 유는 반드시 머지않아 죽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선 가난과 병에 이른 것도 되려 유에게는 행복한 일이래 봐야 한다.
 세 번째 답. 주충은 유의 병도 복도 아니었다. 유는 옛날부터 술만 마셨다. 유의 평생에서 술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유는 즉 주충이요, 주충은 즉 유였다. 그러니 유가 주충을 내보낸 건 스스로를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요컨대 술을 마시지 않게 된 날부터 유는 유이자 유가 아니었다. 유 자신이 이미 사라졌으니 과거의 유가 지녔던 건강이나 재산 따위를 잃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리라.
 이러한 답 속에서 어떤 게 가장 정확한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중국 소설가의 Didacticism[각주:1]를 따라 이러한 도덕적 판단을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열거해 봤을 따름이다.

  1. 교훈주의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