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O군의 초가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무릎을 안은 채로 서양화를 그리는 O군과 이야기하였다. 붉은 셔츠를 입은 O군은 다다미 위에 배를 대고 누워 끊임없이 골든배트를 피우고 있었다. 또 O군의 옆에는 묘하게 뒤숭숭한 의족 하나가 하얀 양말을 신은 발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늦더위가 남은 거 같네." O군은 대답하기 전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툇마루 너머의 시온을 보았다. 몇 송이의 시온은 어느 틈엔가 얇은 꽃을 피운 채로 꼼짝도 않고 햇살을 받고 있었다. "어, 이게 벌써 피었네………뭐라고 하더라. 부채 그림 속에 있는 꽃이었는데." × 바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기가 맑은 날의 저녁이었다. 나는 역시 O군과 함께 넓은 모래길을 산책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아가씨 한 사람이 나무 울타리를 따라 걸어왔다. 하얀 옷에 붉은 오비를 묶.. 2021. 5. 24. 병상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병상에서 한가해진 걸 틈타 아무개 잡지의 소설을 열 편 가량 읽었다. 타키이 군의 "게테모노"는 타키이 군의 다른 작품 중에서도 한 층 빼어난 완성도를 지녔다.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풍경에게도, 소박하면서 우아함을 깨트리지 않는다. 수수떡 같은 맛이 있다. 이러한 선명한 수완은 아마 9월 소설 중 제일이지 않을까. 둘. 사토미 군의 "모깃불" 또한 10월 소설 중 백미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살짝 힘이 빠진 것이 아쉽긴 하나, 다른 건 인정적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여전히 교묘함에 마주하고 있다. 셋. 여행 중 앓는 일이 드물지 않다.(이번에도 카루이자와에서 감기에 걸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건 마침 중국으로 건너기 전, 시모노세키의 여관에 쓰러졌을 때이다. 그때도 단순한 감기였지만.. 2021. 5. 23. 병중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매년 1, 2월쯤이 되면 위가 아프고 창자를 해치며 또 신경성 협심증에 걸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멍하니 난로불을 쬐고 있으면 미치광이가 되기 전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을 때마저 있다. 둘 내 신경쇠약이 가장 심했던 건 다이쇼 10년의 연말이었다. 그때는 잠에 들면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거 같아 뛰쳐 일어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또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마냥 노란빛의 단면이 눈앞에 나타나 "어라" 싶을 때도 많다. 11년 정월, 문득 나와 만나 "죽을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터이다. 셋 "먹물 한 방울"이나 "병상 육 척", "뇌병을 앓다" 운운하는 건 신경쇠약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사오카 시키가 뇌병을 앓으면서 어떻.. 2021. 5. 22. 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거친 발이 입구에 걸려 있어 작업장에서도 길거리가 잘 보였다. 키요미즈로 이어지는 길거리선 아까부터 인파가 끊이지를 않았다. 금고를 짊어 맨 스님이 지난다. 츠보쇼조쿠 차림을 한 여자가 지난다. 그 뒤에선 보기 드물게 황소가 끄는 우차가 지났다. 다들 듬성듬성 뚫린 창포발을 좌우서 다가오는가 하면 멀어지고 만다. 그런 가운데 달라지지 않는 건 오후의 햇살이 봄을 그을리는 좁은 골목의 모래색뿐이었다. 작업장 안에서 그런 길거리를 묵묵히 바라보던 한 젊은 사무라이는, 문득 떠올랐다는 양 주인의 토기장이에게 말했다. "여전히 관음상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로군." "그런 모양입니다." 일에 집중하던 탓일까. 토기장이는 조금 성가시다는 양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눈이 작고 코가 위를 향한 어딘가 경박스러.. 2021. 5. 20. 조개껍질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고양이 그들은 시골에 사는 동안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기로 했다. 고양이는 꼬리가 긴 검은 고양이였다. 그들은 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여 겨우 쥐의 재난만은 피할 수 있으리라고 기뻐했다. 반년이 지난 후 그들은 도쿄로 이사 가게 되었다. 물론 고양이도 함께 갔다. 하지만 도쿄로 이사한 후로 고양이는 어느 틈엔가 쥐를 잡지 않게 되었다. "왜 이러지? 고기나 생선을 줘서 그런가?", "요전 번에 R씨가 그러던데요. 고양이는 소금맛을 익히면 점점 쥐를 잡지 않게 된데요."――그런 대화를 나눈 그들은 시험 삼아 고양이를 굶주리게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쥐를 잡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쥐는 매일 밤마다 천장 위쪽을 뛰다녔다. 그들은――특히 아내는 고양이의 거만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 2021. 5. 19. 아사쿠사 공원 ――어떤 시나리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아사쿠사 니오몬 안에 걸린 불이 들어오지 않은 대제등. 제등은 서서히 위로 올라 난잡한 상점가를 드러나게 한다. 하지만 대제등 아랫부분만은 남는다. 문 앞에 나는 무수한 비둘기. 2 카미나리몬에서 세로로 본 상점가. 정면에선 저 멀리 니오몬이 보인다. 나무는 모두 시들어 있다. 3 상점가 한 쪽. 외투를 입은 남자 하나. 열두어 살 먹은 소년과 함께 어슬렁어슬렁 상점가를 걷는다.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놓고 이따금 장난감 가게 앞에 멈춘다. 아버지는 물론 소년을 혼낸다. 하지만 이따금 아버지 스스로도 소년이 있는 걸 잊고 모자 가게를 바라본다. 4 그런 아버지의 상반신. 아버지는 촌뜨기 같다. 정돈되지 않은 긴 수염을 가진 남자. 소년은 귀엽다기 보다도 되려 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뒤에는.. 2021. 5. 18.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60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