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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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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발이 입구에 걸려 있어 작업장에서도 길거리가 잘 보였다. 키요미즈로 이어지는 길거리선 아까부터 인파가 끊이지를 않았다. 금고를 짊어 맨 스님이 지난다. 츠보쇼조쿠 차림을 한 여자가 지난다. 그 뒤에선 보기 드물게 황소가 끄는 우차가 지났다. 다들 듬성듬성 뚫린 창포발을 좌우서 다가오는가 하면 멀어지고 만다. 그런 가운데 달라지지 않는 건 오후의 햇살이 봄을 그을리는 좁은 골목의 모래색뿐이었다.
 작업장 안에서 그런 길거리를 묵묵히 바라보던 한 젊은 사무라이는, 문득 떠올랐다는 양 주인의 토기장이에게 말했다.
 "여전히 관음상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로군."
 "그런 모양입니다."
 일에 집중하던 탓일까. 토기장이는 조금 성가시다는 양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눈이 작고 코가 위를 향한 어딘가 경박스러운 면이 있는 노인이었기에, 얼굴에서나 분위기서 나쁜 뜻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고 있는 건 삼베 카타비라이리라. 거기에 시들한 모모미에보시를 쓰고 있는 게, 요즘 평판이 높은 토바 소죠의 에마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는 것만 같다.
 "나도 꾸준히 기도 좀 해볼까. 영 재물운이 좋지 않아 곤란한 참이거든."
 "농담도 잘 하십니다."
 "아니, 그걸로 운을 받을 수 있다면 나라도 믿지 않겠나? 매일 같이 기도를 하든, 묵으면서 기도를 하든 그걸로 운을 받을 수 있으면 저렴한 거니 말야. 요컨대 나는 부처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거지."
 젊은 사무라이는 나이에 걸맞은 건방진 소리를 하며 아랫입술을 핥고는 작업장 안을 두리번거렸다――대나무밭을 뒤로하여 세운 초가집이니 내부는 코를 찧을 정도로 좁다. 하지만 발 바깥의 길거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이곳은 항아리도 술단지도 적갈색 토기 피부에 나른한 봄바람을 받으며 백 년 전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집 용마루에는 제비마저 둥지를 틀지 않는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답하지 않기에 젊은 사무라이가 말을 이었다.
 "영감도 그만큼 살았으면 많이 보고 들었을 거 아닌가. 어때. 관음께선 정말로 운을 내려주시나?"
 "내려주시지요. 옛날에는 곧잘 그런 일도 있었다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떤 일인가."
 "어떤 일이라, 한 마디로는 어렵지요――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셔도 재미는 없으실 겁니다."
 "그렇지도 않지. 이래 봬도 조금은 신앙을 가진 남자인걸. 운만 받을 수 있다면 내일이라도――"
 "신앙이 아니라 장사속이겠지요."
 할아버지는 눈초리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주무르고 있던 흙이 항아리 형태를 갖추어 겨우 마음이 편해진 듯하다.
 "사무라이님처럼 젊은 분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드려도 좀처럼 알지 못 하지요."
 "그야 모르지. 모르니 영감한테 묻는 거 아닌가."
 "아니요, 부처께 받느냐 받지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받게 되는 운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지요."
 "받아 보면 알 일 아닌가. 좋은 운인지 나쁜 운인지."
 "사무라이님께서 그걸 아실까 해서요."
 "운이 좋네 나쁘네 하는 거보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해가 기울어졌으리라. 아까부터 길거리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길어져 있다. 머리에 바구니를 얹은 두 여자 장사꾼이 긴 그림자를 끌며 발 옆을 지나간다. 집에 가져다 주려는 걸까. 한 사람은 손에 벚꽃 가지를 들고 있었다.
 "지금 서쪽 시장에서 적마 가게를 연 여자도 그렇지요."
 "그러니까. 나는 아까부터 영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있잖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젊은 사무라이는 손톱으로 턱수염을 뽑으며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조개껍질처럼 하얗게 빛나는 건 아마 방금 전 떨어진 벚꽃잎이리라.
 "말 안 해줄 건가, 영감?"
 이윽고 젊은 사무라이는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정 그러시면 하나 이야기해드리지요. 또 여느 때처럼 옛날이야기입니다만."
 이렇게 운을 뗀 토기장이 할아버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의 길이를 알지 못 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이야기하지 못 할 거 같은 느긋한 말투였다.
 "이래저래 3, 40년쯤 되었을까. 그 여자가 아직 소녀였을 때, 이 키요미즈의 관음님께 기도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부디 평생을 안정되고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요. 그때가 마침 그 여자가 하나뿐인 어머니와 사별한 후였으니까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마저 힘든 처지였으니 이런 기도를 올리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죽은 어머니는 본래 하쿠슈샤의 무녀였습죠. 한때는 제법 유행을 했는데 여우를 부린다는 소문이 돈 이후로는 사람이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또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있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격이 시원스럽고 덩치가 컸으니까요. 생긴 게 그래서야 여우는 고사하고 남자라도……"
 "어머니 이야기는 됐어. 딸 이야기가 듣고 싶은걸."
 "인사치레인 거죠――그 어머니가 죽어 이제는 계집 혼자 남았으니까요. 아무리 벌어도 생활이 될 리가 없지요. 또 그렇게 용모가 좋고 명석한 소녀가 묵으면서 기도를 올리는데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 아닙니까. 주의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좋은 여자였나?"
 "아무렴요. 제 보잘 것 없는 눈엔 기품도 외모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일이 없어 보였지요."
 "옛날 사람이란 게 아쉽군."
 젊은 사무라이는 색이 바란 남색 수건 자락을 잡아당기며 그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코로 웃으며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뒤에 자리한 대나무밭에선 꾀꼬리가 연신 울고 있다.
 "그 여자는 삼칠일 동안 기도를 올려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문득 꿈을 꿉니다. 같은 법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 중에 허리가 굽은 중이 하나 있었는데, 그 녀석이 다라니 같은 걸 끈질기게 외고 있었다지요. 아마 그게 마음에 걸렸을 겁니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그 목소리만은 어재서인지 귀에 들어옵니다. 마루 밑에서 지렁이라도 우는 듯이――그러자 그 목소리가 어느 틈엔가 사람 말로 바뀌어 '돌아가는 길에 그대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있을 거다. 그 남자 말을 들어라'하고 말했다지 뭡니까."
 "놀라서 눈을 떠보니 스님은 여전히 다라니를 외고 있었죠.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별생각 없이 먼 곳을 보니 야등의 희미한 조명 속에서 관음님의 존안이 보였지요. 매일 기도하며 본 단엄미묘한 얼굴이었는데 그걸 보자 신기하게도 다시 귓가에 '그 남자의 말을 들으라'하고 누군가가 말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그게 관음님의 말씀이라고 믿게 되었지요."
 "흐음."
 "자, 이제 밤이 지나 절을 내려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남자 하나가 껴안습니다. 마침 봄이 따스한 밤이었는데 어두운 통에 상대 남자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입고 있는 옷은 더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떨쳐내는 박자에 손이 상대의 턱수염에 닿았지요. 많고 많은 시간 중에 하필 마지막 밤에 딱 맞아떨어진 거지요." 
 "그런 데다가 상대는 이름을 물어도 답하지를 않습니다. 어디냐고 물어도 답하지 않지요. 제 말을 듣기만 하라면서 내리막길을 북쪽으로 또 북쪽으로 껴안은 채로 질질 끌고 갑니다. 울고 소리쳐도 사람이 없을 시간이니 도리가 있나요."
 "하하, 그래서?"
 "그렇게 기어코 야카사데라의 탑 안까지 끌려와 그날 밤은 거기서 보냈지요――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나이 먹은 제가 말해 드릴 필요도 없겠지요."
 할아버지는 다시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길거리의 그림자는 더더욱 길어졌다. 불지도 않고 밀어내는 바람 탓이리라. 여기저기 퍼져 있던 벚꽃잎이 어느새인가 거리 앞에 모여 지금은 배수돌 틈새에서 하얀색을 내뿜고 있다."
 "농담도 잘 하는군."
 젊은 사무라이는 떠올랐다는 양 턱수염을 뽑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게 다인가?"
 "그게 다이면 일부러 말해드릴 리가 있나요." 할아버지는 역시나 항아리를 만지며 "밤이 지나자 그 남자가 이렇게 된 것도 전생에서 이어진 연인일 테니 아예 부부가 되자고 말했다지요."
 "오호라."
 "꿈에서 들은 이야기가 없었다면 또 모를까, 소녀는 관음님의 뜻대로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요. 기어코 고개를 끄덕인 겁니다. 그렇게 형태뿐인 혼례를 마치고는 일단 당분간 쓰면 된다면서 탑 안쪽에서 직물 열 필과 비단 열 필을 꺼내주었지요――이런 행동만은 아무리 사무라이님이라도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무라이는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으로 답하지 않았다. 꾀꼬리도 더는 울지 않았다.
 "이윽고 남자는 저녁에 돌아온다며 소녀 혼자 두고 황급히 어디론가 나갔습니다. 그 후의 쓸쓸함은 전보다 더 했지요. 아무리 영특한 사람이라도 이래서야 견디기 힘들 겁니다. 해서 기분이라도 풀 생각에 별 의미 없이 탑 안쪽을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옥구슬이니 사금이니, 직물이나 비단이 보잘 것 없어 보일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 피갑에 담겨 한가득 놓여 있지 뭡니까. 아무리 굳센 소녀라도 그 광경에는 그만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내용물은 물론이지만 이만한 재물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강도 아니면 소매치기지요――그렇게 생각하니 이제까지는 단지 쓸쓸했던 게 불쑥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한 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셈이지요. 운 나쁘게 방면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릅니다."

 "해서 도망칠 길이라도 찾을 생각으로 서둘러 입구 쪽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누구인지는 몰라도 피갑 뒤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사람은 없을 줄 알았으니 놀라도 보통 놀란 게 아니지요. 들여다 보니 인간인지 해삼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게 사금자루 속에 몸을 둥글게 만 채 앉아 있었습죠――눈이 멀고, 주름 투성이에, 허리가 굽고, 키가 작은 예순 가량의 비구니였습니다. 심지어 소녀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무릎으로 앞으로 나와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아양을 떠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지 뭡니까."
 "소녀야 그럴 겨를이 아니지만 도망치려는 게 들켜서야 큰일입니다. 마지못해 피갑의 위에 팔꿈치를 얹어 내키지 않는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이 할머니가 이제까지 남자의 가사를 돌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의 벌이 이야기가 나오니 묘하게 입을 열지 않았죠. 소녀는 그것부터 마음에 걸리는데 비구니는 조금 귀가 멀었는지 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울고 싶어질 정도로 기가 죽었지요――"
 "그런 일이 이래저래 점심까지 이어졌습니다. 키요미즈에 벚꽃이 피었네, 고죠에 다리가 생겼네 하는 이야기를 나는 사이, 나이 때문인지 이 할머니가 서서히 잠에 들지 뭡니까. 물론 소녀의 대답이 지리멸렬해진 탓도 있겠지요. 그렇게 소녀는 틈을 보아 살며시 입구까지 기어가 문을 살짝 열어 보았습니다. 마침 밖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요――"

 "여기서 그대로 도망치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문득 아침에 받은 직물이랑 비단이 떠오른 겁니다. 그걸 되찾으러 다시 살며시 피갑까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사금 자루에 발이 걸려서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무릎에 손을 얹고 맙니다. 그냥 끝났을 리도 없지요. 비구니 녀석이 놀라서 눈을 떠더니 한동안은 마냥 황당해 합니다. 하지만 곧 미치광이처럼 성을 내더니 소녀의 다리를 깨물었습니다. 그러고는 반쯤 우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빠른 목소리로 토해냅니다. 간신히 주워 들으니 만에 하나 소녀가 도망치면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답니다. 하지만 소녀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 그런 걸 들어줄 수는 없지요. 그렇게 기어코 여자끼리 서로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때립니다. 걷어찹니다. 사금 자루도 던집니다――지풍 위를 좀먹는 쥐도 떨어질 법한 소동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발광을 해서야 할머니의 힘이라도 무시할 수 없지요. 하지만 역시 나이 차이란 게 만만치는 않았던 걸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직물과 비단을 옆구리에 낀 채 숨을 헐떡이며 탑에서 몰래 빠져나옵니다. 그때 할머니는 더 이상 입도 뻥긋할 수 없었지요. 이건 나중에 들은 말인데 시체는 코에서 피가 살짝 흐른 채 머리로 사금을 뒤집어써서는 어두컴컴한 구석 쪽에 드러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소녀는 야사카데라를 나와 인파가 많은 거리를 피해 고죠쿄고쿠 근처의 지인을 찾았습니다. 이 지인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사람인데 직물을 한 필 준 덕이겠지요. 물을 끓이고 죽을 만드는 이래저래 형편을 봐주었습니다. 소녀도 그제야 한숨을 돌린 셈이지요."
 "나도 겨우 안심이 됐는걸."
 젊은 사무라이는 오비에 차고 있던 부채를 꺼내 발 바깥의 석양을 바라보며 휘휘 저었다. 양민 대여섯 가량이 소란스럽게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림자는 아직도 거리에 남아 있다……

 "그럼 드디어 끝이 난 모양이로군."

 "그런데 말이죠." 할아버지는 거창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지인의 집에 있자니 여 봐라, 저 봐라하며 매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켕기는 게 있는 소녀지 않습니까. 또 가슴이 뛰었지요. 그 도둑놈이 복수하러 온 걸까. 아니면 검비위사가 쫓아 오기라도 한 걸까――그렇게 생각하니 죽도 맘 편히 먹을 수 있나요."

 "그렇지."

 "그러니 문 틈새로 가만히 밖을 훔쳐다 봅니다. 그러자 구경하는 남녀 사이로 방면 대여섯 명과 간독장 한 명이 소란스럽게 지나가더랍니다. 또 그런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밧줄에 묶인 남자 하나가 곳곳이 찢어진 수건을 두른 채 에보시도 두르지 않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둑을 붙잡아 집에 확인을 하러 가는 듯했지요."

 "심지어 이 도둑이 어젯밤 고죠 언덕에서 만난 그 남자지 뭡니까. 소녀는 그걸 보고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오려 했습니다. 이건 당사자가 제게 말해준 거지요――아무래도 그 남자한테 반했었나 봐, 왜인지는 몰라도. 하지만 밧줄로 붙잡힌 모습을 보자 불쑥 자신이 불쌍해져 그만 울어버렸어. 뭐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지요――"

 "누가 안 그러겠어."

 "관음님께 부탁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헌데 영감, 그 여자는 그 후로 어떻게든 해낸 거 아닌가?"

 "어떻게고 자시고 지금은 조금도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지요. 직물과 비단을 팔아 그걸 바탕 삼아서요. 관음님도 이것만은 단단히 지키신 셈입니다."

 "그럼 그 정도 꼴은 당해도 괜찮지 않은가."

 바깥 햇살은 어느 틈엔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나무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멀리서 작게 들린다. 길거리의 인기척도 거의 남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 도둑의 아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시겠다면 말릴 도리가 없지요."

 젊은 사무라이는 부채를 넣으며 일어섰다. 할아버지도 물로 진흙투성이 손을 씻고 있다ㄷ――두 사람 모두 져가는 봄의 햇살과 상대의 심정에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듯했다.

 "하여튼 그 여자는 행복하겠어."

 "농담이 과하십니다."

 "농담이라니? 영감도 그리 생각하지 않나?"

 "저 말입니까? 저는 그런 운이라면 사양하고 싶군요."

 "흐음, 그래? 나라면 바로 받아들일 텐데 말야."

 "그럼 관음님을 믿어 보시지요."

 "그래그래, 나도 내일부터는 묵으면서 기도라도 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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