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매년 1, 2월쯤이 되면 위가 아프고 창자를 해치며 또 신경성 협심증에 걸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멍하니 난로불을 쬐고 있으면 미치광이가 되기 전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을 때마저 있다.
둘 내 신경쇠약이 가장 심했던 건 다이쇼 10년의 연말이었다. 그때는 잠에 들면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거 같아 뛰쳐 일어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또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마냥 노란빛의 단면이 눈앞에 나타나 "어라" 싶을 때도 많다. 11년 정월, 문득 나와 만나 "죽을상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터이다.
셋 "먹물 한 방울"이나 "병상 육 척", "뇌병을 앓다" 운운하는 건 신경쇠약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사오카 시키가 뇌병을 앓으면서 어떻게 하이쿠를 썼는지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실뭉치를 감 듯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하는 건 꼭 옛사람만의 한탄은 아니다.
넷 불면증 탓에 한달간 0.75의 아달린을 복용하면서 머리맡의 시키 전집 제5권을 읽으니 시를 짓는 시키 이외에 비평가 시키에도 감복할 때가 많다. "우타요미니 아타에루 쇼"의 논봉파죽은 말할 필요가 없다. 소설 희곡 등을 논하는 것 또한 현대의 우리에게 적절한 경우가 있다.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사투 하루오 또한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점이다.
다섯 시키 본인의 소설은 거의 봐줄만한 게 없다. 하지만 시키를 오래 살게 하고 더욱이 소설을 만들게 한 이토 사치오나 나가츠카 타카시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먹물 한 방울"이나 '병상 육 척" 중 몇몇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리라. 개중에서도 "병상 육 척" 중 소제등 이야기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여섯 사람 시키를 보아도 병을 얻으면서 어중간한 깨달음을 얻는 법 없이 기성을 지르거나 자살하려 하는 등, 당시의 세이킨파 시인보다도 우리 근대인에 가깝다. 그 가운데 나카에 쵸우민의 "일 년 반"을 평가하는 말은 오늘날 봐도 새로운 게 있다.
일곱 하지만 시키의 생활력에는 놀랄만 하다. 시키는 평생의 태반을 병상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하이쿠를 짓고 새로운 단가를 읊고, 더욱이 사생문의 한 길을 열었다. 심지어 그로 힘이 그치는 법 없이 여자 교육의 필요를 논하고 일본옷의 미척 가치를 논하고 내무성의 유유 취체령을 논했다. 도무지 환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물론 당시의 척추염 환자는 뇌병 취급이 아니었으리라.
여덟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왜 문어를 쓰느냐 묻는 사람이 있다. 내가 문어를 쓰는 건 비단 거들먹거리기 위함은 아니다. 단지 구어보다도 번거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아마 내가 받은 구식 교육의 결과이리라. 내가 십여 년간 구어문을 만들어 하루에 열 장을 넘기는 일은(한 장에 200자로) 겨우 두세 번 뿐이다. 하지만 문어문을 만들면 하루 스무 장도 어렵지 않다. "병중잡기"가 문어문인 것 또한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홉 내 몸은 본래 튼튼하지 않았지만 특히 요 서너 해는 한 층 더 빈약해졌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분명 허투루 담배를 태운 탓이리라. 내가 기숙사에 있을 적에 같은 방을 쓴 후지노 시게루 군이 간간이 나를 비웃으며 "너는 문과면서 담배맛도 모르는 거야?"하고 말하고는 했다. 이제는 담배맛을 너무 알아서 되려 금연하지 못 하게 되었다. 지금의 후지노 군이 보면 나의 장족의 발전에 조금의 경의를 드러내리라. 참고로 말하자면 후지노 시게루 군은 요절한 메이지의 하이진 후지노 코하쿠의 동생이다.
열 첫 번째 편지가 말하길 "사회주의를 버리는가, 아버지께 등을 돌리는가. 어떻게 할 건가?". 두 번째 편지가 말하길 "원고 좀 서둘러주시길 바랍니다.", 나아가 세 번째 편지가 말하길 "당신의 이름을 빌려 XXX씨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무명작가의 이름으로는 효과가 없어서 그러니 부디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편지를 쓴 사람은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 편지를 읽으면서 매일 위장약 "겐노샤우코"를 마시며 조용히 삶을 이어간다. 불면증이 낫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열하나 나는 어제 꿈에서 중고 도구점에 들어가 청자가 박힌 연상
을 보았다. 주인이 말하길 "이건 아즈치성에 있었던 겁니다." 내가 말하길 "뚜껑 뒤에 무어라 서양 문자가 적혀 있는데." 주인이 말하길 "이건 지키타민이란 글자입니다." 아즈치성의 이야기는 "아즈치의 봄"을 읽어보아라. 이건 되려 우스운 일로, 꿈속에서도 약 이름이 나오는 건 조금의 덧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열둘 내 일과 중 하나는 산책이다. 후지키가와의 언덕을 배회하면 맹송은 노랗게, 매화는 하얗게 봄바람에 흔들린다. 어쩌다 길가의 큰 돌에 파리 한 마리가 돌 때가 있는데, 우리 집 정원서 파리를 보는 건 매년 5월 초순이니 멍하니 이 파리를 지켜볼 때가 많다. 5월이 되면 내 병든 몸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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