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고전 번역928

나의 산문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을밤 화로에 숯을 넣으려니 숯이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숯 그릇 밑바닥에는 숯 가루 안에 무언가의 나뭇잎이 건조하게 말라 있다. 어느 산에서 온 나뭇잎인가?――오늘 석간에 따르면 키소의 온타케엔 예년보다 훨씬 이른 첫눈도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붉게 칠해진 낡은 책상 위에는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집 한 권의 가철된 페이지를 펼치고 있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이는 이 시인의 한탄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늘 밤에도 홀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에 같은 쓸쓸함이 스며든다. "이제 좀 바깥으로 나오지." 이 청화자기잔은 십 년 전에 산 것이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그런 한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리라. 잔에는 이미 금이 가있다. 차도 차갑.. 2021. 10. 4.
매화에 대한 감상 - 이 저널리즘의 한 편을 근엄한 니시카와 에이지로 군에게 바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세상만사를 여실히 봐야만 한다. 적어도 만인의 안광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안광을 통해 봐야만 한다. 예로부터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 이런 독자적인 안광을 지녀 저절로 독자적인 표현을 이루었다. 고흐의 해바라기의 사진판이 오늘날에도 애완 받는 건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닐 터이다.(GOGH를 고흐라 발음하는 걸 나무라지는 않길 바란다. 나는 ANDERSEN을 아나아센이라 부르지 않고 안데르센이라 부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예술을 사명으로 삼는 자에겐 하늘의 햇살보다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눈을 가지는 게 꼭 쉬운 일은 아니다.(아니 절대적인 독자의 눈을 지니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특히 만인의 시에 이따금 들어가는 풍경을 볼 적에 독자적.. 2021. 10. 3.
속 야인생계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방귀 안드레예프에겐 백성이 코를 파는 묘사가 있다. 프랑스에겐 할머니가 소변을 보는 묘사가 있다. 하지만 방귀를 하는 묘사가 있는 소설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나오지 않았다는 건 서양 소설 중에 없다는 뜻이다. 일본 소설 중에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는 아오키 켄사쿠 씨의 아무개인가 하는 여공을 다룬 소설이다. 도망쳐 나온 두 여공이 마른 풀 안에서 야숙한다. 여명에 두 사람이 눈에 띈다. 한 사람이 뿡하고 방귀를 뀐다. 다른 한 사람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분명 그런 내용이었지 싶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여공이 방귀 뀌는 묘사가 굉장히 질 좋게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 단락을 읽었기에 오늘도 아오키 씨의 수완에 경의를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또 하나는 나카토가와 .. 2021. 10. 2.
야인생계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한가함 "낙운퇴리결모려 이공홍진적점소 막문야인생계사 창전류수침전서" 이는 한시를 만들 때에 이따금 참고한 이구령의 칠언절구이다. 지금은 어린 마음에 감탄할 정도로 명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흩은 구름 쌓인 곳에 초가집을 짓더라도 은급증서와 저금통장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이구령은 창문 앞의 흐르는 물이나 머리맡의 책과 함께 유유한 한가함을 만끽하고 있다. 그 점은 정말이지 부럽다. 나는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바쁘게 살고 있다. 어제도 두 시까지 원고를 써서 겨우 잠자리에 드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전보 탓에 일어나야 했다. 회사가 명하기를 나보고 선데이 마이니치에 실을 수필을 쓰란다. 수필이란 한가함의 산물이다. 적어도 약간이나마 한가함을 자랑하던 문예의.. 2021. 10. 1.
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느 봄의 어두운 아침이었다. 히로코는 교토의 주차장에서 토교행 급행 열차를 탔다. 결혼 후 2년 만에 어머니의 건강을 살피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외할아버지의 금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물론 그 외의 용무도 존재했다. 그녀는 마침 이번 기회에 동생 타츠코의 연애 문제도 해결하고 싶었다. 동생의 희망을 이뤄주든 이뤄주지 않든 어찌 되었든 해결은 해야겠지 싶었다. 히로코가 이 문제를 알게 된 건 4, 5일 전 받은 타츠코의 편지를 읽었을 때였다. 히로코는 한창때인 동생에게 연애 문제가 생긴 걸 별로 의외로 여기지 않았다. 예상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도 당연하다는 생각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 연애 상대로 아츠스케로 골랐다는 말만큼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코는 기차서 흔들리는 지금도 아.. 2021. 9. 30.
횻토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즈마바시의 난간에 사람이 여럿 모여 있다. 이따금 순사가 찾아와 잔소리를 하지만 곧장 원래대로 인파가 생기고 만다. 다들 다리 밑을 지나는 꽃구경 배를 보기 위해 서있는 것이었다. 배는 강 아래에서 한두 척씩 썰물의 강을 올라온다. 대부분은 전마선에 호모멘의 천장을 달고 그 주변에 홍백의 막을 걸치고 있다. 그리고 뱃머리에는 깃발이나 고풍스러운 노보리를 세워두고 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취한 듯했다. 막 사이서는 손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두른 사람들이 "한 잔, 두 잔"하고 잔을 들어 올리는 게 보인다. 고개를 저으면서 무어라 괴롭게 읊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게 다리 위 사람 입장에선 우습기 짝이 없다. 하야시나 악대를 태운 배가 다리 아래를 지나면 다리 위에선 "와아"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2021. 9. 29.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