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고전 번역928 속 징강당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 내게도 이따금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를 검정해달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안광으로는 도무지 분명히 검정할 수 없다. 단지 새빨간 위작만은 저절로 정체를 드러내준다. 나는 요즘 그런 가짜 중에서 결코 위작이라 생각할 수 없는 부채 하나를 만났다. 확실히 이 부채에 적힌 구는 소세키란 이름은 붙어 있어도 나츠메 선생님이 쓴 게 아니다. 하지만 또 구나 글씨체를 보면 나츠메 선생님의 위작을 만들기 위해 쓴 게 아닌 것도 확실하다. 이 소세키란 누구인가? 태백당 삼세 무라타 토린 또한 첫 호가 소세키였다. 하지만 내가 본 부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 위작 아닌 위작이라 불러야 할 부채의 필자를 정말이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참고삼아 말한다.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도 근.. 2021. 10. 10. 징강당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타이가의 그림 나는 요즘 타이가의 그림이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건 타이가기만 하면 돈을 아끼지 않는단 말은 아니다. 고작해야 오십 엔 정도의 한 폭을 구하고 싶을 뿐이다. 타이가는 대단한 화가이다. 과거에 타카쿠 아이가이는 무일푼의 곤경에서도 한 폭의 타이가만은 놓지 않았다. 그런 영령한의 붓을 통해 이루어진 그림은 몇백 엔이라도 비쌀 게 없다. 그런 걸 오십 엔으로 깎으려 드는 건 내게 돈이 얼마 없는 슬픔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가의 그림을 생각하면 설령 오백만 엔을 내든 나처럼 오십 엔을 내든 저렴한 건 매한가지일지 모른다. 예술품의 가치를 우표나 지폐로 환산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지독한 속물뿐이다. Samuel Butler가 쓴 글에 따르면 그는 항상 "질 좋고 잘 보관된 사십 실링 정도의.. 2021. 10. 9. 시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어느 봄의 늦은 오후입니다. 시로란 개는 땅에 코를 얹고서 조용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좁은 거리의 양옆에는 싹이 돋은 나무 울타리가 이어져 있고 그 울타리 사이서는 힐끔힐끔 벚꽃도 피어 있습니다. 시로는 울타리를 따라 불쑥 뒷골목으로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돌리다 마치 깜짝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불쑥 멈춰 섰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 뒷골목의 십 미터 언저리에는 시루시반텐을 입은 개장수 하나가 함정을 뒤에 숨은 채로 한 검은 개를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검은 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개장수가 던져 준 빵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로가 놀란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잘 모르는 개라면 또 모를까 지금 개장수가 노리는 개는 옆집이 기르는 쿠로였으니까요. 매일 아침 얼굴을.. 2021. 10. 8.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 어떤 정신적 풍경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혼죠 다이도지 신스케가 태어난 건 혼죠의 에코인 부근이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 것 중에 아름다운 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아름다운 집도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그의 집 주변은 아나구라다이쿠나 다가시야 같은 낡은 도구점만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한 집들과 접한 길은 매일 같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 길의 막다른길은 오타케구라의 커다란 도랑이 자리해 있었다. 남경마름이 떠다니는 도랑은 항상 악취를 내뿜었다. 그는 물론 그런 거리에 우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혼죠 이외의 거리는 더욱 불쾌하게 느껴졌다. 민가가 많은 야마노테를 시작으로 깔끔한 상점이 줄지은 에도에서 이어져 온 변두리도 어쩐지 그를 압박했다. 그는 혼고나 니혼바시보다 되려 쓸쓸한 혼죠를――에코인을, 코마도메바시.. 2021. 10. 7. 하나의 약속 - 다자이 오사무 난파되어 노도에 삼켜져 해안가에 내동댕이 쳐져 필사적으로 매달린 곳은 등대의 창가였다. 아, 살았구나. 도움을 청하려 창문 안을 보니 등대지기와 아내, 그 어린 딸이 다소곳하면서도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비참한 목소리 하나로 이 단락도 전부 깨지고 말 테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목으로 나오려던 "살려줘!"란 목소리가 아주 잠깐 당혹스러워 한다. 아주 잠깐이다. 곧 큼지막한 파도가 덮쳐 와 그 소심한 피난자를 삼켜 먼 바다까지 납치했다. 이제 살아날 도리는 없다. 이 조난자의 아름다운 행위를 대체 누가 보았을까. 아무도 보지 못 했다. 등대지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가단락의 식사를 계속했을 게 분명하다. 조난자는 노도에 삼켜져(혹은 눈보라 부는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2021. 10. 7. 오토미의 정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메이지 원년 5월 4일 오후였다. "관군은 내일 밤이 밝는 대로 토에이잔 쇼기타이를 공격한다. 우와노카이와이의 민가 사람들은 신속히 퇴거하라"――그런 통달이 내려온 오후였다. 시타야마치 니쵸메의 장신구점, 코가야세이베이가 떠난 흔적에는 주방 구석의 전복 껍데기 앞에 커다란 수컷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문을 닫은 집 안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사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단지 귀에 들어오는 건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는 빗소리뿐이었다. 비는 보이지 않는 지방 위에 이따금 급하게 내려서는 어느 틈엔가 다시 하늘로 멀어져 갔다. 고양이는 그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호박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궁이마저 구분이 가지 않는 주방에서도 이때만큼은 꺼림칙한 인광이 보였.. 2021. 10. 5. 이전 1 ··· 101 102 103 104 105 106 107 ··· 155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