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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245

'연극미의 본질' 후기 - 키시다 쿠니오 연극에 관한 평론, 감상을 모아 서적으로 내는 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처음엔 '우리의 극장'이란 제목으로 다음은 '현대연극론'이란 제목으로 냈다. 이번에는 '연극미의 본질'로 하기로 했다. '우리의 극장'에 포함된 글은 대부분 '현대 연극론' 안에도 들어갔으나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젊은 연극 연구자, 연극 애호가들이 필히 읽어줬으면 하는 글을 택하고 그 외에 직접 연극을 논하진 않았으나 내 연극론을 받쳐준 한두 '말'에 관한 노트를 덧붙여 이 한 편을 편집했다. '나의 연극론' 같은 소리를 하면 꽤나 계보가 확실하며 특색 있는 이론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로선 일본의 새로운 연극 토양을 위해 당시에 가장 필요하다 느껴진 말에 힘을 주어 늘어 놓은 것뿐으로 스스로를 한 명의 연극학자라 자칭할 생각은 없다. .. 2022. 7. 20.
가면좌의 선언 - 키시다 쿠니오 가면좌를 창설함에 동좌 창립 동인 제군이 우리에게 제시해 준 선언 내용은 꽤나 주목하기 마땅하다. 나는 지금 각 항목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보이는 건 아니다. 하물며 그 추상적인 문자 나열에 그만큼 놀란 것도 아니다. 단지 가장 호의적인 해석에 따르면 그 일좌 동인 제군은 '연극이란 걸 재밌게 보여주자' 생각하는 듯하다. 이건 확실히 의미가 있는 기획이다. 밝은 경향의 선곡을 고른다는 건 일부러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그보다 희곡의 총명한 해석에 따라 '불필요한 어둠'을 일소하는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정기공연과 수시 시연은 좋은 일이나 먼저 상당한 배우를 만들어줬으면 하다. 기존 극단이 거의 돌아보지 않았던 점에 제군이 힘을 붓느냐 붓지 않느냐는 제군이 '이제까지의 것' 이상의 걸 만들 수 있느냐 없.. 2022. 7. 20.
'문화훈장' 제정에 관해 - 키시다 쿠니오 문화훈장 제정이 공표된 건 개인적으로선 이런저런 문제를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국민으로선 정말로 축하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전부터 민간, 특히 문단 저널리즘상에서 이런 제도의 논의가 오가 나도 살짝 의견을 제시한 바 있는데, 정말로 실현된 걸 보니 역시 국가도 이런 영역까지 왔구나 하는 감개를 느끼게 되었다. 형식은 잘 알지 못하나 정부의 일이라느니 관료의 발상이라는 하는 해석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하야시 수상의 발표를 읽어 보면 굉장히 이치에 잘 맞고 이런 제도가 이제까지 일본에 없었던 게 되려 신기할 정도이다. 단지 국민이 이런 종류의 훈장이 현 정부의 손에서 얼마나 올바르고 공평하며 또 진보적인 의의를 갖게 되리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으리라. 먼저 정치가 내지 공무원들이 '문화'란.. 2022. 7. 18.
단역 - 키시다 쿠니오 단역마저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는 듬직하기 짝이 없다. 혹은 단역밖에 맡지 못하는 배우여도 좋다. 그는 주역으로 선택 받는 행운에 만나지 못하고 그 평생을 끝내더라도 그 평생을 통해 어엿한 '필요한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니까. 단역 밖에 맡지 못한단 이유로 그 배우를 경멸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연극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술의 길에서 하나의 단역을 연기하는데 만족하리라. 예술가의 분쟁은 말하자면 '역할 쟁탈전'이다. 스스로를 '주료'에 세우고 싶단 심리의 추함 표현이다. 괴테, 입센, 도스토옙스키 등이 연기한 역할을 제군 도한 연기해보고 싶지 않은가. 제군 또한 발자크를 체호프를 바나드 쇼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거면 된다. 우리는 제군이 알지 못하고 이름마저 없는 .. 2022. 7. 17.
'우리의 극장' 머리말 - 키시다 쿠니오 이 한 권은 내가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약 2년 동안 여러 기회로 발표한 단편적 평론 또는 감상들 중 연극에 관한 문장을 한 편으로 모은 것이다. '연극 일반 강의'라 제목 붙은 첫 글은 키쿠치 칸 씨가 주최하는 문예 강좌를 위해 특히 '연극론'이란 제목으로 집필한 것으로, 이는 엄밀한 의미론 연구 발표가 아니다. 따라서 학계를 향해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야심은 조금도 없다. 단지 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연극의 본질에 관해 자신이 도달한 해결을 향해 새로운 시대의 연극 애호자를 이끌려 노력했다. '현대 프랑스 극작가'는 마찬가지로 문예 강좌에 게재된 것으로 이것만으론 미적지근하나 필자는 어떤 목적으로 이 문장을 심었다. 그 목적이란 요컨대 우연찮게 프랑스 현대 작가의 작품을 접했을 때, 그 .. 2022. 7. 16.
현대 대중극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 나카무라 마사츠네에게 답한다 - 키시다 쿠니오 새로운 '신파新派'――현대대중극――가 왜 일어나지 않는가.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런 파도가 현재의 일본에 결여되어 있음을 극단 사람들이 문제로 삼지 않고 대중도 그런 연극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의 신극은 얼핏 그런 방향을 취했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신극 당사자는 항상 서양의 "비대중극"――바꿔 말하자면 '전위파'의 운동을 쫓았기에 일반 관객의 관극욕을 직접 자극하지 못하였고 또 그런 걸 자극할 만한 '무대적 매력'을 등한시하며 심지어는 그런 걸 무언가 불순한 거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단지 일부 사람들은 그 정도로 청교도적이지 않고 말하자면 관객 본위의 연극에 뜻을 두었습니다만 그때는 이미 소위 '신극적'인 색채서 벗어나 이상하리만치 '구극적이면서 신파적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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