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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245

노가미 군의 첫 번째 희곡 - 키시다 쿠니오 '꿈을 먹는 여자'는 노가미 아키라 군의 첫 희곡으로 나는 작가 본인에게 낭독을 받아 제1막에 이미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곳곳에 산만한 부분은 있으나 어찌 됐든 마지막까지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건 드문 일이다. 나는 불평하는 법 없이 구제점을 주었다. 그 사실이 작가에게 좋은 일이길 바란다. 문학좌가 중의일결, 이를 상연목록에 올린 것도 내가 거들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 작품의 힘이란 걸 믿는다. 더더욱 재밌어 질 듯한 연극이다. 어디가 재미있는가. 무엇보다 작가가 연극을 사랑하며 어느 정도 연극이란 걸 알고 있어 무대의 매력으로 만들어질 여러 조건을 잘 음미하여 결코 비루하고 속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오늘날 대중의 관심에 호소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물론이요 대다수의 작가가 .. 2022. 11. 1.
'홍당무'를 보고 - 키시다 쿠니오 영화 '홍당무'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건 감독 뒤뷔베가 단순히 르나르의 소설 및 희곡에서 그 주제를 따온 것만 아니라 르나르식의 '문장적 표현'을 영화의 리듬으로 구성해보려 꾀했다는 점에 있다. "이미지의 사냥꾼"인 원작자는 어떤 의미에서 카메라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을지도 모르나 슬프게도 암시와 간략이란 점에서 영화는 문학에 한 걸음을 양보해야만 한다. 단 르나르의 작품 자체에서 자연과 생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일본 독자에겐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점이며 뒤뷔베의 영화적 표현으로 프랑스 농촌을 둘러싼 빛과 어둠이 우리의 마음에 또렷이 다가온다. 배우도 적합하다 해야 하리라. 주인공 '홍당무'를 연기하는 리난 소년은 지나치게 미소년이란 느낌이란 게 결점일까. 어머니 폰츠네 부인은 우화적 인물로서 가.. 2022. 10. 31.
'남방화필기행' 서장 - 키시다 쿠니오 아카시 테츠조 군은 날카로운 감각의 화가이며 '살아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진 자연과학자이고 심지어 인간의 원시적 모습을 가장 사랑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그 성정과 육체의 특수한 편향 탓인지 소위 '남방'의 흙과 하늘에 끌렸고 이따금 표연함과 주머니 하나를 어깨에 짊어진 채 바다를 건너 붉은 길의 태양을 받아 홀로 환희의 소리를 질렀다. 방랑 예술가라 부르기엔 너무나 건강한 그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기괴한 환상이 아닌 신선한 감동이다. 소위 '남방진출'에 뜻을 둔 이들의 얼핏 장엄한 마음가짐보다도 나는 그의 피부와 혈액이 이야기하는 '남국의 냄새'를 더할 나위 없이 높게 산다. 기록의 평가 여부는 꼭 '알린다'에만 있지 않으며 되려 '느끼게 한다'의 깊이로 정해진다. 소식통의 소개가 왕왕 마음에.. 2022. 10. 30.
'홍당무' 역자의 말 - 키시다 쿠니오 (느끼는 바 있어 이 글을 특별히 넣는다) 이 번역은 온전히 자신의 오락으로 했다 해도 좋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끝내는 고속으로, 이래저래 오 년이 걸렸다. 소사쿠겟칸, 분게이슌주, 사쿠힌, 신카카테키분게이, 시, 겐지츠, 신세이넨, 카이조 등 여러 잡지서 조금씩 발표했다. 가장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이 소설을 작가 본인이 각색해 같은 제목의 희곡으로 만들었다. 이를 존경하는 친구 야마다 타마키가 7,8년 전 '적발'이란 제목으로 번역해 이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오늘날 르나르의 'Poil de Carotte'는 '적발'이란 번역명으로 통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적발'이란 제목도 물론 좋다고 보지만 본래 번역하기 어려운 제목이니 야마다의 '적발'은 야마다의 전매로 두는 게 좋겠지 싶어.. 2022. 10. 29.
신선 창작 총서 간행에 관해 - 키시다 쿠니오 우리나라의 신극운동 역사 중에 요 2, 3년 만큼 연극의 본질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그것이 차근차근 실천된 시기는 또 없지 싶다. 충분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또 여러 조건을 필요로 하나 적어도 새로운 제네레이션의 희곡 창작상에 가져온 현저한 질적 향상은 정말로 획기적인 현상이었다고 봐야만 하리라. 그러하니 일반 관객서 희곡계 부진의 목소리를 듣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며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아마 이러한 현상이 특수한 전문 잡지 내지는 연구 극단의 얌전한 업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단 사정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의 신극은 오늘까지 모든 걸 꾀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희곡 작가는 서양극의 형식적 모방에 만족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가부키신파의 전통적 전통에 마.. 2022. 10. 28.
신고쿠게키의 '옥상정원'을 보고 - 키시다 쿠니오 연말부터 여행을 하고 있어서 오늘(14일) 봤습니다 보통 작가가 어떤 배우 또는 극단에게 자기 작품의 상연을 허가하고 때로는 의뢰합니다만 그럴 경우 그 배우의 무대를 논하는 건 예의상 자제해야 할 일이며 하물며 이를 공표하는 건 제 취향상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재는 어떤 의미로 신극의 계몽 시대입니다. 연극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연구자, 더욱이 일반 관객마저도 장래의 연극에 새로 일어날 운동에 자각적으로 눈을 돌려야만 하니 저는 거리낌 없이 이번 사와다 씨의 무대를 보고 온 감상을 해보지요. 이 감상은 결코 일개 극평가의 입장에서 하는 게 아님을 단언해둡니다. 바꿔 말하자면 자신의 작품을 타인이 연출할 경우, 작가로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그 연출자의 입장이며..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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