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여행을 하고 있어서 오늘(14일) 봤습니다
보통 작가가 어떤 배우 또는 극단에게 자기 작품의 상연을 허가하고 때로는 의뢰합니다만 그럴 경우 그 배우의 무대를 논하는 건 예의상 자제해야 할 일이며 하물며 이를 공표하는 건 제 취향상 굉장히 불쾌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 상황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재는 어떤 의미로 신극의 계몽 시대입니다. 연극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연구자, 더욱이 일반 관객마저도 장래의 연극에 새로 일어날 운동에 자각적으로 눈을 돌려야만 하니 저는 거리낌 없이 이번 사와다 씨의 무대를 보고 온 감상을 해보지요. 이 감상은 결코 일개 극평가의 입장에서 하는 게 아님을 단언해둡니다. 바꿔 말하자면 자신의 작품을 타인이 연출할 경우, 작가로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그 연출자의 입장이며 그것만 또렷이 하면 저절로 작가의 기분도 또렷해지는 셈입니다.
이번 신고쿠게키에서 제 작품인 '옥상정원'을 상연하고 싶단 바람을 전달 받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먼저 자신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저는 새로운 연극이 여러 의미에서 종래의 연극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새로운 걸 덧붙이는 걸 이상으로 오래된 걸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배우 연기에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런 배우로 이뤄지는 새로운 연극은 언제 시작되냐는 하는 문제에 항상 불안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연극의 첫 걸음은 배우 연기의 기초 교육에 있다 믿으며 제 연극을 둔 실제적 노력도 필시 그 방향으로 돌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하니 미숙하긴 하나 제 작품을 기성 극단의 손에 맡기는 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런 고통을 가진 채로 상연을 허가한 건 무엇보다 단 하나를 기대했기 때문으로, 그 하나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말이지만 신극이란 게 그리 지루한 게 아니란 걸, 더욱이 신극 중에는 일본 기성 극단이 이제까지 가지지 않았던 걸 무대 위에 올린다는 점을 이제까지 신극에 친근하지 않았던 관객에게 알릴 기회를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목적을 다 하기 위해선 소위 신극 극단으론 어떤 소중한 걸 놓치고 맙니다. 이 소중한 것이란 배우가 배우로서 관객의 마음을 잡는 상연상의 비결을 말하지요.
저는 오늘 신고쿠게키의 무대를 보고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극단이 움직이는 관객의 취미에 안타까울 정도로 신경질적인 눈을 빛내고 있냐는 점이며 이 눈빛은 확실히 관객에게 동정심을 일으킬 테죠. 하지만 이 동정심이야말로 이윽고 관객을 예술과 절연하게 한다는 걱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작가가 연습에 입회하지 못할 경우에 얼마나 작품이 무대 위에서 변경되는지는 이제와서 처음 느낀 일도 아니나 그 변형이 연출자의 예술적 의식에 따르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를 만드느냐, 였습니다. 작품의 정신을 포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런 건 지금 제가 힘을 주어 말해도 도리가 없을지 몰라도 시종 작품의 정신을 착각한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연출가의 노력은 적어도 작가에게 굉장한 호감을 줄 건 분명하지요. 이런 점에서 신고쿠게키는 살짝 작가의 존재를 잊는 듯하여 아쉽습니다. 이는 만약 사와다 씨 본인으로부터 직접 의견을 구한다면 딱 잘라 말하는 걸 피하고 싶은 문제라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건 여기서 말하는 걸 피하더라도 한 번 그 작품을 활자로 읽으신 분은 사와다 씨가 작가가 고심한 대사에 둔감하다곤 못할지언정 얼마나 무심했는지는 알 수 있을 테지요.
셋째로 그 연극을 보고 재밌다는 사람은 물론 있을 테지요. 그리고 그건 확실히 사와다 씨를 비롯한 연기자의 천부적 매력 내지는 오늘까지 쌓아 온 실력 덕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연극을 보고 재미 없다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고쿠게키의 장래에 가장 의존해야 할 사람들이 있음을 주의해줬으면 합니다. 소위 연극통에겐 통하지 않지만 일반 관객에겐 통한다는 건 소수의 온네트 옴, 모리엘의 소위 '훌륭한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가 환영할 경우에는 더욱 눈을 넓게 가져 이 온네트 옴을 포함한 대중 전체에게 호소할 매력을 이 극단에게 바라는 건 저 하나만이 아니라 믿습니다.(1월 14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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