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고전 번역928 기괴한 재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오렌이 혼죠 요코아미에 오게 된 건 메이지 28년 초겨울의 일이었다. 측실은 오쿠라바시의 강에 접한 극히 비좁은 집이었다. 단지 정원에서 강 쪽을 보면 이제는 료고쿠 정차장이 된 오쿠라다케 일대의 수풀이나 숲이 짧은 비가 곧잘 내리는 하늘을 뒤덮고 있었으니 거리 한가운데 답지 않은 한적한 풍경만은 한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런 만큼 남편이 없는 밤에는 적적함을 느끼는 일도 곧잘 있었다. "할멈, 저건 무슨 소리일까?" "이거요? 이건 해오라기 소리입니다." 오렌은 눈이 안 좋은 고용인 할머니와 램프 불을 지키면서 꺼림칙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남편 마키노는 곧잘 오렌을 찾아왔다. 낮에도 관청을 찾는 길에 육군 일등 주계 군복을 입은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해가 지고 나서도 .. 2023. 1. 15. 진상은 이러하다 - 사카구치 안고 '진상'이란 잡지에 내가 작년 '풍보'에 실은 문장이 일부 발췌 기재되었다. 이는 내 승낙을 받은 게 아닌 무단전재이다. 이를 내게 알리기 위해 일부러 찾아 준 친구는 저작권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히죽이며 말했다. "저작권법에 걸릴 거 같지?" "물론 그렇지." "근데 그렇지 않아." 그는 육법전서를 꺼내 저작권법 20조 2항을 가리켰다. "시사문제에 관핸 공가 연술은 저작자의 이름, 연술시의 장소를 명시하면 이를 신문 또는 잡지에 게재할 수 있다(생략)" 오호라. '진상'에 전재된 문장은 시사문제라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문장 말미에 '풍보 제2권 제1호에서'라고 시와 장소를 표시해두었다. 여기에 이르러 내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육법전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격론을 나눌 때에도 육법.. 2023. 1. 14. 예술, 땅에 떨어지다 - 사카구치 안고 근래엔 극도 영화도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든 저렴한 것뿐이다. 그러하니 문화는 밤거리의 어둠과 함께 메이지 시대로 되돌아 가고 말았다. 모기를 잡지 못하는 모기향. 효과 없는 약. 불이 붙지 않는 성냥. 하지만 이는 상인이나 할 일이다. 예술은 다르다. 예술가는 근성을 지녀서 권문부귀에도 굴하지 않고 예술 일변도의 양심으로 살기에 예술과 자신을 고취할 수 있었다. 예술은 모기향과 다르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 문화는 완전히 모기를 잡지 못하는 모기향이다. 아무리 볼품 없는 일이라도 받는다. 시대를 한참 지난 서생극이라도 손님으로 가득하다니 극도 영화도 메이지의 흙먼지로 가득하다. 예술인의 양심 따위 엿바꿔 먹고 신경도 쓰지 않는 문화의 파국이요 지옥이다. 이래서는 전쟁에서 승리해도 문화적으론 패배할 수밖에.. 2023. 1. 13. 원대한 마음가짐 - 사카구치 안고 불평, 희망. 있다면 다양하겠지만 자그마한 일로 구질구질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묵묵히 훌륭한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 사랑스러운 마음가짐마저 위협하는 악의에는(――아아, 소심하기에 남자 평생의 마음가짐마저 흔들리고 말다니!)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군요. 나는 일본 문학의 '잡지적' 경향이 싫습니다. 우리 소설을 약소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 경향 탓 아닐까요. 유럽의 단행본 경향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의 장단점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소설이 단행본을 바탕으로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작가의 마음가짐이 원대해지며 이어서 저널리스트의 마음가짐도 꽤나 원대해질 테고 나아가선 문예시평이란 괴물도 조금은 원대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믿고 있습니다... 2023. 1. 12. 단맛 매운맛 - 사카구치 안고 일본 문학의 확립이란 전쟁 반세기 이전부터 주된 화제였다. 근대 일본 문확의 혼란 및 헤맴은 수입 문학 위에 일본적인 걸 확립시키기 위한 악전고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건 정치나 경제가 그 영역에서 일본적 성격을 필요로 했단 문제보다도 훨씬 심각하여 작가는 그 점에 혈육을 바쳤다 할 수 있다. 근래엔 문학 이외의 장소에서 일본적 도의를 확립하는 게 빈번히 논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근대 일본 문학이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짐 중 하나로 일본적 모랄의 확립은 젊은 작가의 목숨 건 싸움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진 이후로 문학 영역에선 되려 이 문제에 대한 색채를 잃었고, 독립적인 입장을 잃어 남의 뒤를 따라가는 것밖에 배우지 못하게 됐다. 지도원리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단 건 이해하지만.. 2023. 1. 11. 육아 - 사카구치 안고 쉰 가까운 나이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당황스럽고 멈칫하기만 할뿐으로 육아에 관해서는 무능 그 자체이다. 지금도 아이를 안는 법 하나 모르지만 이따금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등 어머니가 해줄 법한 일을 하고 있으면 굉장히 기뻐하곤 한다. 딱히 혼을 주거나 주의를 주고 있진 않지만 아버지 하는 일을 흉내내며 자연스레 자라는 모양이다. 내가 해줄 일이라 하면 매일 무언가를 먹여 이따금 배를 아프게 하는 정도로 아내한테 혼쭐만 나지만 가슴이 있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애정 표현은 무언가 맛있어 보이는 걸 주는 정도 밖에 없다는 걸 어머니는 이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이의 독점욕이 왕성하나 결국 그쪽이 무능한 아버지로선 편할 따름이니 어머니의 독점욕에 의존하고 있다. 2023. 1. 10.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155 다음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