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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나는 문득 옛 친구였던 그를 떠올렸다. 그의 이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숙부의 집을 나와 고향의 인쇄소 2층에 자리한 육첩방을 빌렸다. 아래층의 유전기가 돌아갈 때마다 작은 배의 선실처럼 덜덜 떨리는 2층이었다. 아직 제1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기숙사 저녁밥을 먹은 후 이따금 이 2층으로 놀러 갔다. 그러면 그는 유리 창문 아래서 남들보다 한 층 얇은 목을 굽히며 항상 트럼프로 운세를 점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는 놋쇠 등유 램프 하나가 둥근 그림자를 떨구고 있었다. 둘 그는 숙부의 집에서 나와 같은 혼죠의 제3중학교를 다녔다. 그가 숙부의 집에 있던 건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없었다 해도 어머니만은 죽은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보다도 이 어머니께――어딘가로 재.. 2021. 3. 14.
그, 두 번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그는 젊은 아일랜드 사람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되리라. 나는 단지 그의 친구였다. 그의 여동생은 아직도 나를 My brother's best friend라 적고는 한다. 나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전에도 그의 얼굴을 본 것만 같았다. 아니, 그의 얼굴만이 아니다. 방 벽난로에서 타는 불도, 불을 쬐는 마호가니 의자도, 벽난로 위에 놓인 플라톤 전집도 분명히 본 것만 같았다. 그런 감정은 또 그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점점 강해지기만 했다. 나는 그런 광경이 5, 6년 전에 꾼 꿈에서 본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는 시키시마를 입에 물며, 우리 사이의 화제인 아일랜드 작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I detest Bernard Shaw." 나는 .. 2021. 3. 13.
마스크 - 키쿠치 칸 겉모습 하나는 듬직한 덕에 남들은 굉장히 건강히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내장이란 내장은 평균보다 빈약하다. 그러한 사실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그마한 언덕을 올라도 숨을 헐떡거렸다. 계단을 올라도 숨을 헐떡거렸다. 신문기자를 할 적에도 관서 같은 커다란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 목적지까지 와도 숨이 막혀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었다. 폐 쪽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려 숨을 들이 마셔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가슴이 답답해져 금세 숨을 내쉬어야 했다. 심장과 폐가 약한 데다가 작년 언저리부터 위장을 다치고 말했다. 내장 중에선 강한 걸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주제에 겉모습만은 듬직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항상 건강해 보인다. 스스로는 내장이 약한 걸 정말 잘 알고 있어.. 2021. 3. 12.
여체(女体)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양 아무개라는 중국인이 어느 여름밤, 너무 더운 나머지 잠에서 깨 턱을 괸 채로 누워 별 볼 일 없는 망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자 불쑥 이 한 마리가 침상의 테두리를 기고 있는 게 보였다. 방안을 밝히는 밝지 않은 빛 안에서, 이는 작은 등을 은가루처럼 빛내며 옆에 자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아내는 양을 향해 헐벗은 채로 누워 원만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양은 그 이가 걷는 걸 바라보며 이런 벌레의 세계는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두세 걸음이면 가는 장소도 이는 한 시간이나 들여 걸어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곳은 고작해봐야 침상의 위일 뿐이다. 자신도 이로 태어나면 꽤나 지루하리라.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양의 의식이 천천히 몽롱해졌다. 물론 꿈은 .. 2021. 3. 11.
[리뷰] 중랑캠핑숲 사서 고생하는 거 또한 분명 캠핑의 매력이겠죠. 모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나서서 실천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서 하는 고생도 살아서 해야 하니까요. 저야 막 캠핑에 입문한 캠린이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비싼 겨울용 장비가 있을 리도 만무하니, 동계캠은 아예 생각을 접어뒀습니다. 12월 마지막에 가까운 곳으로 갔다가 동면을 취하자! 는 게 본래 목적이었습니다. 단지 어울리지도 않게 목적이니 계획이니 한 탓일까요. 이런 저런 사정이 얽혀 결국 12월 캠핑은 실패로 끝납니다. 덕분에 심정은 완정한 불완전 연소. 마침 유루캠 2기도 시작하니 보면서 달랠까 싶지만 되려 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만 합니다. 그나마 2월 중순부터 조금씩 날이 풀립니다. 낮에는 더워서 외투마저 내려놓고 다니는 와중에 말이라면 혹시.. 2021. 3. 10.
타키타 테츠타로 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키타 군은 항상 뚱뚱했다. 그뿐 아니라 항상 얼굴이 붉었다. 나츠메 선생님은 타키타 군을 킨타로라 불렀다. 하지만 그 얇은 눈은 되려 키쿠지도와 쏙 닮아 있었다. 나는 대학 재학 중에 타키타 군과 처음 만나 이래저래 십 년 가량 친밀하게 어울렸다. 타키타 군에게 복어회를 대접받았다가 호된 위경련을 겪은 적이 있다. 또 운페이를 논한 후, 난죽 한 폭을 받은 적도 있다. 갖은 편집자 중에서 나와 가장 친근하게 지낸 건 타키타 군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도 타키타 군과 찻집 한 번 간 적이 없었다. 타키타 군은 아마 나 따위는 대화할 상대가 못 된다 생각하는 것이리라. 타키타 군은 열성적인 편집자였다. 특히 작가를 선동해 소설이나 희곡을 쓰게 하는데 독특하고 묘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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