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키쿠치 칸

마스크 - 키쿠치 칸

by noh0058 2021. 3. 12.
728x90
반응형
SMALL

 겉모습 하나는 듬직한 덕에 남들은 굉장히 건강히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내장이란 내장은 평균보다 빈약하다. 그러한 사실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그마한 언덕을 올라도 숨을 헐떡거렸다. 계단을 올라도 숨을 헐떡거렸다. 신문기자를 할 적에도 관서 같은 커다란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 목적지까지 와도 숨이 막혀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었다.
 폐 쪽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려 숨을 들이 마셔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가슴이 답답해져 금세 숨을 내쉬어야 했다.
 심장과 폐가 약한 데다가 작년 언저리부터 위장을 다치고 말했다. 내장 중에선 강한 걸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주제에 겉모습만은 듬직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항상 건강해 보인다. 스스로는 내장이 약한 걸 정말 잘 알고 있어도, 남이 "건재하다"고 말하면 일종의 멋모르는 자신을 품고 만다. 기량이 나쁜 여자라도 주위가 거들면 스스로 "마냥 못 난 건 아닌가."하고 생각하듯이.
 사실은 약하지만 "건재하다"는 말을 듣는, 잘못된 건강상의 자신이라도 있었을 때는 차라리 기댈 곳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 말, 위장이 지독히 아파서 의사를 찾았을 때 그 의사는 조절 없는 환멸을 퍼부어버렸다.
 의사는 내 맥을 짚으며 "어라, 맥이 없네요. 이럴 리가 없는데."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 맥은 언제부터인가 도리 없이 빈약해져 있었다. 스스로 제법 오랜 시간을 들여 확인해도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의사는 내 손을 잡은 채로 1분 정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아, 없지는 않네요. 단지 보기 드물 정도로 약한걸요. 이제까지 다른 의사가 심장에 관해 무어라 말한 적은 없나요?"하고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없습니다. 다만 요 2, 3년 정도 의사를 찾은 적이 없군요." 나는 그렇게 답했다.
 의사는 말없이 청진기를 흉부 위에 얹었다. 마치 그곳에 숨겨진 내 생명의 비밀을 뒤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의사는 몇 번이나 청진기를 되짚었다. 그리고 심장 주위를 바깥부터 빈틈 없이 살폈다.
 "고동이 빠를 때에도 확인을 해야 확실하겠지만, 아무래도 심장 쪽의 병합이 불완전한 듯합니다."
 "병인 건가요?" 나는 그렇게 물었다.
 "병이지요. 즉 심장이 제 역할을 다 못 하는 셈이니 다른 일도 어려워지는 거고요. 수술도 힘들 거 같군요."
 "목숨은 건질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물었다.
 "이렇게 살아 계시니 조심히 쓰시면 괜찮습니다. 게다가 심장이 오른쪽으로 조금 커진 듯합니다. 체중 조절이 필요하실 듯합니다. 지방심이 되면 심부전으로 훅 가실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에선 좋은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장이 약한 건 미리 각오해두었지만 이렇게나 약할 줄은 몰랐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불이라도 나면 도망치셔야 하니까요. 요전 번에도 모토마치에 화재가 있었는데, 스이도바시서 심부전으로 죽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부르기에 가서 진찰해봤는데 말이죠. 굉장히 심장이 약한 주제에 집에서 열 블럭 가까이를 뛰었다네요. 선생님께서도 주의하시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가실지 모릅니다. 일단 괜히 시비 붙어서 흥분하시면 안 되고요. 열병도 금물입니다. 티푸스나 유행성 감염에 걸려서 40도 정도 열이 사나흘 계속되면 도울 수가 없어요."
 그 의사는 마음이 편해질만한 이야기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마음이 편해질만한 말을 해줬으면 했다. 내 심장의 위기가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줄지으니 나는 일종의 꺼림칙한 심정이 들었다.
 "에방법이나 양생법 같은 건 없을까요?" 내가 마지막 도주로를 찾으니,
 "없습니다. 단지 지방류는 피하시는 게 좋아요. 육류나 지방질이 강한 생선은 되도록 안 드셔야 합니다. 담백한 채소를 드셔야 해요."
 나는 "아이구" 싶었다. 먹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해도 좋은 내게, 그런 양생법은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진찰을 받은 후, 시시각각 생명의 안전을 위협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침 그쯤부터 유행성 감염이 맹렬한 기세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내가 유행성 감염에 걸리는 건 즉 죽음을 의미한다는 듯하다. 더군다나 그때 빈번에 신문에 오르던 감염에 관한 기사 속에서도,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승부라는 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나는 감염에 겁을 먹었다 해도 좋았다. 되도록 예방하고 싶었다. 최선의 노력을 들여 걸리지 않도록 했다. 남들이 겁쟁이라 비웃더라도 걸려서 죽는 것보다야 낫지 싶었다.
 나는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아내나 여종도 되도록 나가지 않도록 했다. 또 아침저녁으로 과산화수소로 양치를 했다. 도리 없이 바깥에 나가야 할 때에는 거즈를 잔뜩 담은 마스크를 찼다. 그리고 나가고 돌아올 때마다 꼼꼼히 양치를 했다.
 그렇게 나는 만전을 다 했다. 하지만 손님이 오는 건 도리가 없었다. 감기가 막 나아서 아직도 기침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친구가 이야기하던 도중에 점점 열이 올라 돌려보냈다, 그 후에 40도까지 열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삼 일은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문에 매일 같이 실리는 사망자 증감에 따라 나는 일희일비했다. 매일 같이 늘어나 삼천삼백삼십칠인까지 오른 후, 그 숫자를 최고 기록이 되어 조금씩 줄기 시작했을 때에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자중은 했다. 2월 내내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친구는 물론이요 아내마저 겁먹은 나를 비웃었다. 나도 조금 신경쇠약 공포증에 걸려 있나 싶었다. 하지만 감염에 대한 공포는 어떻게 닦아낼 도리 없는 실감이었다.
 3월이 된 후로 추위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고 감염의 위협도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마스크를 놓지 않았다
 "병을 두려워 않고 전염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야만인의 용기지. 병을 두려워하며 위험을 피하는 족이 문명인의 용기 아니겠어? 다들 마스크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혼자 마스크를 쓰는 건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그건 겁이 많은 게 아니라 문명인의 용기라 생각해."
 나는 이런 말로 친구들에게 변명했다. 또 마음속으로도 어느 정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3월 말까지 나는 마스크를 버리지 않았다. 유행성 감염은 이제 도심을 벗어나 산간벽지로 갔다는 기사를 이따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마스크를 버리지 않았다. 이제 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승객들 사이에서 한 명 정도 검은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굉장히 듬직해졌다. 어떤 의미론 동지이자 지기이지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찾아낼 때마다 혼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일종의 부끄러움에서 구원받았다. 내가 진정한 의미로 위생가이자 생명을 극도로 애착하는 점에서 한 명의 문명인이라는 긍지마저 느꼈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마스크를 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4월에서 5월로 옮겨 갈 적이었다. 다시 유행성 감염이 돌아왔다는 기사가 두어 개 가량 볼 수 있었다. 나는 불쾌해졌다. 4월이 되고, 5월이 되어도 감염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게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마스크를 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낮에는 초여름의 태양이 한가득 따스하게 내려왔다. 어떤 구실이 있다 한들 마스크를 찰 도리는 되지 않았다. 신문 기사가 마음에 걸리면서도 시후의 힘이 내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5월 중순의 일이었다. 시카고 야구단이 찾아와 와세다에서 매일 같이 시합이 열렸다. 제국 대학과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야구가 보고 싶어졌다. 학창 시절에는 야구를 좋아했던 나도 그 1, 2년 동안 거의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은 쾌청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맑았다. 푸른 잎에 둘러싸인 메지로다이의 고지대가 상쾌하게 보였다. 나는 종점에서 전철에서 내려 뒷골목을 통해 운동장으로 향했다. 주변 지리는 꽤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마침 운동장 주위의 울타리를 따라 입장구로 서두르던 참이었다. 문득 내 옆을 앞서가는 스물셋이나 넷쯤 되는 청년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남자의 옆얼굴을 보았다. 남자는 생각지도 못 했던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어떤 불쾌한 격동(쇼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 남자에게 명확한 증오를 느꼈다. 그 남자가 어쩐지 미워졌다. 검게 튀어나온 검은 마스크에서 불쾌한…… 요괴적인 추함마저 느꼈다.
 그 남자가 불쾌했던 가장 큰 원인은 이렇게 좋은 날씨에 그 남자 탓에 감염의 위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렸다. 자신이 마스크를 찰 적에는 우연히 마스크를 찬 사람을 보고 그렇게 기뻐했으면서 자신이 차지 않게 되자 차고 있는 사람이 불쾌하게 보이는 자기중심적 생각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심정보다도 더욱이 이런 걸 느꼈다. 자신이 그 남자를 불쾌하게 느낀 건 강자에 대한 약자의 반감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마스크를 쓰는데 열심이었던 내가 시후에 따라 그걸 차는 게 참으로 부끄러워졌을 때에 용감하고 태연히 마스크를 쓰고 수천 명의 사람이 모인 곳에 다가가는 태도는 꽤나 철저한 강자의 태도이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내가 세간이나 시후 앞에서 미처 하지 못 한 일을 그 청년은 용감히 해내고 있지 싶었다. 그 남자를 불쾌하게 느낀 건 그 남자의 그런 용기에 압박 당한 거 아닐까 싶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