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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여체(女体)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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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아무개라는 중국인이 어느 여름밤, 너무 더운 나머지 잠에서 깨 턱을 괸 채로 누워 별 볼 일 없는 망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자 불쑥 이 한 마리가 침상의 테두리를 기고 있는 게 보였다. 방안을 밝히는 밝지 않은 빛 안에서, 이는 작은 등을 은가루처럼 빛내며 옆에 자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아내는 양을 향해 헐벗은 채로 누워 원만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양은 그 이가 걷는 걸 바라보며 이런 벌레의 세계는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두세 걸음이면 가는 장소도 이는 한 시간이나 들여 걸어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걸을 수 있는 곳은 고작해봐야 침상의 위일 뿐이다. 자신도 이로 태어나면 꽤나 지루하리라.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양의 의식이 천천히 몽롱해졌다. 물론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도 아니다. 단지 황홀한 심정의 밑바닥에 서서히 잠겨 가는 것이다. 이윽고 번쩍 눈이 떠져 정신이 돌아와 보니, 양은 어느샌가 그 이의 몸에 들어와 땀내나는 침상 위를 유유히 걷고 있었다. 양은 너무 생각지 못 한 일이라 그저 멍하니 서고 말았다. 하지만 양을 놀라게 한 건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양의 눈앞에 높은 산이 있었다. 산은 저 혼자 둥그스러움을 따스하게 품은 채, 눈이 닿지 않는 저 위에서 눈앞의 침상 위까지 커다란 종유석처럼 내려와 있었다. 침상 위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안에 열기를 품은 건가 싶을 정도로 붉은 석류 열매의 조형을 하고 있지만, 그곳을 제외하면 어느 곳을 보아도 하얀 장소 밖에 없었다. 또 그 하얀색은 굳은 기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매끈한 하얀색으로, 산중턱에 원만한 홈마저 마치 눈에 반사된 달빛만 같이 살짝 푸른 그림자를 두르고 있는 게 전부였다. 하물며 빛을 받는 부분은 녹아내리는 듯한 거북이 등껍질색의 광택을 둘러 어느 산맥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곡선을 저 멀리 하늘에까지 그리고 있다.
 양은 탄복하여 눈을 둥글게 뜨고는 이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산이 아내의 젖가슴 중 하나란 걸 알았을 때에 그는 대체 얼마나 놀랐을까. 양은 사랑도 증오도 내지는 성욕마저 잊고서 이 상아산 같은 커다란 젖가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탄한 나머지 침상의 땀내마저 잊은 건지 한사코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양은 이가 되어 비로소 아내의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여실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땅에서 이처럼 볼 수 있는 게 꼭 여체의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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