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작품을 쓸 때에는 수많은 경로를 거쳐 만들어질 경우와 곧장 첫 계획 대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테면 당초엔 흙으로 된 병을 쓰려 했는데, 어느 틈엔가 철로 된 병이 완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또, 당초부터 흙으로 된 병을 쓰려하여 그대로 흙으로 된 병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흙병마저도 덩굴을 감으려 했는데 대나무가 꽂혀 있는 경우도 있다. 내 작품을 꺼내 보자면 '라쇼몬'은 전자이며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가레노쇼', '기독교인의 죽음'은 후자에 속한다.
'가레노쇼'란 소설은 바쇼의 임종에 입회한 제자들, 키카쿠, 쿄라이, 죠소 등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글을 쓸 적에는 '하나야 일기'라는 바쇼의 임종을 다룬 책이나 시코, 키카쿠가 쓴 임종기 같은 걸 참고하여 바쇼가 죽기 보름 전부터 죽을 때까지를 쓸 생각이었다. 물론 글을 쓰는 당시에는 나 또한 스승의 죽음에 임하는 제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통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심정을 바쇼의 제자에 입혀 적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두 장 적는 사이에 미나미 케이온 씨가 마침 비슷한 소설(?)을 쓰고 있는 걸 보고는 그 계획대로 쓸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때문에 이번에는 바쇼의 시신을 배에 실어 후시미에 올려 보내는 도중에 장면을 잡아 제자들의 심정을 적으려 했다. 당시(다이쇼 7년 1 9월)의 '신소설'에 실릴 예정이었는데, 당초 계획이 변경되어 마감이 다가와도 도무지 맞출 수 없었다. 원고지만 낭비하는 가운데 마감날이 다가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시 '신소설'의 편집자는 지금은 '인간'의 편집을 맡고 있는 노무라 치스케 군으로, 글을 쓰지 못 하는 나를 동정해주어 원고가 없으면 굉장히 곤란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기분 좋게 다음달 호로 미뤄주었다. 그렇게 바로 다음 마감을 위해 적기 시작했는데, 마침 내 지인이 부손이 그린 '바쇼 열반도'――불화였다――를 손에 넣었다. 그건 전에 봐둔 가와고에 키아니절에 놓인 '바쇼 열반도'보다 크기도 컸고 그림도 재밌었다. 그걸 보자 내 계획이 다시 달라졌다. 따라서 이번에는 그 '바쇼 열반도'에서 힌트를 얻어 바쇼의 병상을 제자둘이 둘러싸는 내용을 그려 겨우 당초의 목적을 이루었다.
그런 식으로 들어 맞은 건 굉장히 드문 일로, 대부분은 펜을 들기 전부터 생각한 바를 따라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 일반적이란 건 주로 짧은 걸 쓸 경우로, 긴 내용을 쓸 적에는 작중의 인간이나 사건이 예정과 다른 전개로 발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왜 세상에 악이나 슬픔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신 또한 내 소설처럼 이 세계를 만져가는 통에 세계 스스로가 멋대로 발전하여 생각처럼 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야 물론 농담이지만 그렇게 인물이든 사건이든 예정과 달리 발전한 경우, 달라진 덕에 작품이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일축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르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가 있기 마련이라 말을 쓰려다 말파리가 되는 법은 없다. 기껏해야 소나 양이 되는 정도이다. 단지 조금 큰 맥락을 벗어난 지점은 스다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올라 꽤나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테면 '기독교인의 죽음'이란 소설은 과거의 그리스 교도인 여자가 남자가 되어 이런저런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런 괴루움을 견뎌낸 후에 죽는데, 죽고 나서야 여자였던 걸 알아차렸단 내용이다. 그 소설의 마무리에는 화재가 벌어진다. 그 화재는 당초 쓸 생각이 없었기에 주인공이 병에 걸려 천천히 죽어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쓰는 사이 불이난 경치가 떠올라 그렇게 쓰게 되었다. 불을 붙여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의문이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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