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밤. 아버지는 다섯 살 아이 를 품에 안고 같이 코타츠 안에 들어갔다.
아이 아빠, 이야기해줘!
아버지 무슨 이야기?
아이 뭐든지. ……아냐, 호랑이 이야기가 좋아.
아버지 호랑이? 호랑이 이야기는 어려운걸.
아이 싫어, 호랑이 이야기해줘.
아버지 호랑이 이야기라. ……그럼 호랑이 이야기를 해줄까. 옛날에 조선의 나팔수가 술에 취해서 산속에서 쿨쿨 잠에 들었단다. 그런데 얼굴이 젖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떠보니, 어느 틈엔가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꼬리 끝자락에 물을 묻히고 나팔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지.
아이 왜?
아버지 그야 나팔수가 취해 있으니까. 술 냄새가 풍기니까 먹으려 한 거지.
아이 그래서?
아버지 나팔수는 각오를 굳히고 있는 힘껏 호랑이 엉덩이를 향해 나팔을 내질렀단다. 호랑이는 아파서 움찔하고는 거리 쪽으로 도망쳤지.
아이 안 죽었어?
아버지 도망치다 마을까지 들어가서 엉덩이 상처 때문에 죽었다나? 그런데 엉덩이에 꽂힌 나팔은 호랑이가 죽을 때까지 울렸다는구나.
아이 (웃음) 나팔수는?
아버지 나팔수는 크게 칭찬받으며 호랑이 퇴치의 상을 받았다는구나……자, 이걸로 이야기 끝.
아이 싫어. 하나 더 해줘.
아버지 이번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아닌데.
아이 싫어, 이번에도 호랑이 이야기해줘.
아버지 그렇게 호랑이 이야기만 조르면 쓰나. 으음, 뭐 없었나? ……그럼 하나만 더 해주마. 이것도 조선 이야기인데, 사냥꾼이 어떤 산 깊은 곳으로 갔더니 마침 저 낮은 곳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걸어오지 뭐야.
아이 커다란 호랑이?
아버지 그럼, 커다란 호랑이지. 사냥꾼은 좋은 사냥감을 찾았다 싶어서 바로 총알을 장전했대.
아이 쐈어?
아버지 근데 쏘려던 순간에 호랑이가 갑자기 몸을 움츠리더니 반대편의 큰 바위에 뛰어 들었어. 그런데 아쉽게도 아슬아슬하게 바위에 닿지 않아 땅에 떨어졌지.
아이 그래서?
아버지 호랑이는 다시 한 번 원래 자리로 돌아와 또 바위에 뛰어 들었지.
아이 이번에는 잘 뛰었어?
아버지 이번에도 또 떨어졌지. 그러자 굉장히 부끄럽다는 양 긴 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대.
아이 그럼 사냥꾼은 호랑이를 안 쏜 거야?
아버지 그래, 그 모습이 너무 사람 같아서 미안해서 관뒀대.
아이 재미없는 이야기다. 호랑이 이야기 하나 더 해주라.
아버지 하나 더? 이번에는 고양이 이야기를 해줄게. 장화 신은 고양이.
아이 싫어. 호랑이 이야기 또 해줘.
아버지 어쩔 수 없네. ……그럼 옛날에 아기 호랑이를 셋 가진 큰 호랑이가 있었단다. 호랑이는 해가 지면 항상 세 아기 호랑이와 놀아주었지. 그리고 밤이 되면 세 아기 호랑이랑 같이 잤지. ……얘가, 자면 안 된다?
아이 (졸린 목소리로) 응.
아버지 그런데 어느 가을 날 저녁, 호랑이는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서 죽기 직전이 되어 돌아왔지. 세 아기 호랑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곧장 호랑이에게 매달렸어. 그러자 호랑이도 평소처럼 뛰고 달리며 놀아줬지. 그리고 밤에도 언제나처럼 동굴에 들어가 같이 잠에 들었어. 하지만 새벽이 되어 일어나 보니 호랑이는 어느 틈엔가 세 아기 호랑이 안에서 죽어 있었어. 아기 호랑이는 다들 놀라서……듣고 있니?
아이 (잠들어서 답이 없다)……
아버지 누구 없나? 이 녀석 잠들어 버렸네.
멀리서 "네, 지금 갑니다"하는 답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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