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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봄날의 밤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나는 콘크리트 건물이 줄지은 마루노우치 뒷골목을 걸었다. 그러자 무언가 냄새가 느껴졌다. 무엇일까?――아니, 야채샐러드의 냄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스팔트 거리에는 쓰레기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둘 U――"자네는 밤이 무섭지 않나?" 나――"딱히 무섭다 느낀 적은 없는데." U――"나는 무서워. 어쩐지 커다란 지우개라도 씹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이 또한――이 U의 말 또한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셋 나는 중국 소녀 하나가 전차에 올라타는 걸 바라보았다. 계절을 파괴하는 전등불 아래라 하여도, 분명히 봄날의 밤이었다. 소녀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전차에 발을 걸치려 했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소녀의 귀뿌리에 때가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는 .. 2021. 2. 24.
교정 후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앞으로도 이번 달과 같은 소재를 써서 창작할 생각이다. 그걸 단순한 역사 소설 중 하나로 두는 건 내키지 않는다. 물론 지금 게 대단하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곧 좀 더 괜찮아지리라.(신사조 창간호) ○주충은 요재지이에서 소재를 따왔다. 본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신사조 4호) ○주충은 "しゅちゅう(주충)"라 읽는 것이지 "さかむし(술벌레)"라 읽는 게 아니다. 거슬리기에 덧붙인다.(신사조 6호) ○나는 신소설 9월호에 '참마죽'이란 소설을 썼다. ○아직 빈 공간이 있어 좀 더 적겠다. 마츠오카의 편지에 따르면 신사조는 니이가타현에 성실한 독자를 제법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창작에 뜻을 둔 청년도 많다고 한다. 단지 신사조만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도 그런 사람이 많아지기.. 2021. 2. 24.
피아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가을날, 나는 어떤 사람을 찾기 위해 요코하마의 산길을 걸었다. 주변은 지진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다면 슬레이트 지붕이나 벽돌벽의 잔해 속에 명아주가 자라고 있단 점뿐이었다. 실제로 어떤 집의 잔해에는 뚜껑 열린 피아노마저 반쯤 벽에 떠밀린 채 맨질히 건반을 적시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크고 작은 악보 또한 살짝 색이 물든 명아주 속에서 복숭아색, 물색, 옅은 노란색 등의 서양 문자가 적힌 표지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내가 찾은 사람과 복잡한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나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그 사람의 집을 뒤로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는 약속을 잡고 나서야 가능했다.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 2021. 2. 24.
검정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엔에 쿠와테이의 산수화를 사와 서재의 토코노마에 걸어두었더니 놀러 온 남자가 그 앞에 서서 "위작 아닌가."하고 경멸했다. 타키타 쵸인 군도 위아래로 훑고는 "이건 아니죠."하고 한 소리 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본래 수상한 그림을 찾아내는 걸 무명의 천재에게 경의를 다 하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쿠와테이라 걸어둔 게 아냐. 그림의 완성도가 좋아서 걸어둔 거지."하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산수화를 위작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지기 싫어서 하는 소리라 맹단했다. 그뿐 아니라 몇몇은 "그래, 무명 천재는 싸게 먹혀서 좋지."하고 말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이래서야 아무리 나라도 3엔의 쿠와테이를 위해 조금은 변호를 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감정가란 양반들은 흔히 돋보기를 들이밀며 우리 아마.. 2021. 2. 24.
겨울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겨울밤의 기억 중 하나. 평소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12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12시에는 반드시 잠들기로 하고 있다. 오늘 밤도 먼저 책을 덮고, 내일 앉자마자 바로 일할 수 있도록 책상 위를 정리한다. 정리라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원고지와 필요한 서적을 하나로 뭉쳐두는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각로의 불을 정리한다. 항아리병에 주전자의 물을 붓고 그 안에 불을 하나씩 넣는다. 불은 점점 검어진다. 잿소리도 점점 울린다. 수중기도 모락모락 올라온다. 어쩐지 즐거워진다. 무언가 덧없는 느낌도 든다. 잠자리는 작은방에 깔아두었다. 작은 방도 서재도 2층에 있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 소변을 본다. 오늘 밤도 조용히 2층에서 내려간다. 가족들의 눈에 들지 않도록 되도록 조용히 2층을 .. 2021. 2. 23.
미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대학을 졸업한 해의 여름, 쿠메 마사오와 함께 가즈사 이치노미야의 해안가에 놀러 갔다. 놀러 간다고 해도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쓴 건 매한가지였지만, 뭐 바다에 들어가고 산책을 하는 게 하루의 대부분이었다. 어느 저녁. 우리는 이치노미야의 거리를 산책하여 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게 됐을 적에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이르기 위해서는 통보리사초나 방풍 등이 자란 모래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마침 그 모래산 위에 올랐을 때, 쿠메가 무어라 외치더니 모래산을 달려 내려갔다. 나는 왜 저러나 싶었지만 어찌 되었든 무언가 달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겠지 싶어 역시나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인기척 없는 모래산 위에 홀로 남겨지는 게 꺼림칙했단 사실도 등을 떠밀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쿠메는 중학생 때 야구..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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