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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개구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지금 자는 곳 옆에는 오래된 연못이 있는데, 그곳엔 개구리가 잔뜩 있다. 연못 주위에는 갈대와 창포가 무성했다. 그런 갈대나 창포 너머에는 높은 버들 나무들이 기품 있게 바람과 싸웠다. 또 그 너머에는 조용한 여름 하늘이 펼쳐져, 항상 자잘한 유리 조각 같은 구름이 빛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실제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연못의 수면에 비쳤다. 개구리는 연못 안에서 하루도 질리지 않고 개굴굴, 고골골하고 울었다. 살짝 들어 보면 도무지 개굴굴, 고골골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한 의논을 나누는 중이다. 개구리가 말을 하는 게 꼭 이솝 시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개중에서도 갈댓잎 위에 자리한 개구리는 대학교수 같은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물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개구리가 헤엄.. 2021. 2. 24.
된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무로우 사이세이는 된 사람이다.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 무로우 사이세이만큼 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된 사람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한 집안을 이룬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혹은 다른 어떤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무로우는 거창하게 형용하면 자연만물 위에 무로우 성좌가 있다며 안하무인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엉덩이를 붙이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면 내 주위에도 태반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두려워 않는다. 내견도――내견이란 말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도 자신은 두려울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밑바닥에서는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공포의 유무를 이야기할 때면 .. 2021. 2. 24.
카르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혁명 전이었던가, 혁명 후였던가.――아니, 그건 혁명 전이 아니었다. 왜 혁명 전이 아니냐면, 내가 당시 주워 들은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푹 찌는 밤, 무대 감독 T군은 제국 극장의 발코니에 앉아 탄산수 컵을 한 손에 든 채 시인 단첸코와 대화를 나누었다. 황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맹목 시인 단체코 말이다. "이것도 역시 시대 흐름일까요. 저 먼 러시아의 그랜드 오페라가 일본의 도쿄까지 오다니." "볼셰비키는 과격파니까요." 이 문답이 있었던 건 첫날부터 다섯 날이 지난 밤――카르멘이 무대에 오른 밤이었다. 나는 카르멘 역할을 맡은 이이나 불스카야에 빠져 있었다. 이이나는 눈이 크고 작은 코가 오똑한 육감적인 여성이었다. 나는 물론 카.. 2021. 2. 24.
가장 기분이 내킬 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겨울을 좋아하여 11월, 12월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건 12월에 보는 자연이나 도쿄의 모습이 좋다는 뜻이다. 자연이 좋다는 건 내가 교외에 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기 때문인데,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밤늦게 집에 돌아올 적이면 말로 다 못 할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낙옆 냄새나 안개 냄새, 갈라진 꽃향이나 과일이 썩은 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좋은 냄새가 난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나무 사이가 투명하게 비친다. 나뭇잎이 떨어진 후에 가지 사이가 낭랑히 빛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지빠귀도 찾아온다. 직박구리가 온다. 이따금 할미새가 올 대도 있다. 밭 구석의 이름 없는 강에는 겨울이 되면 항상 할미새가 찾아온다. 그 녀석이 이 정원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여름처럼 백로가 하늘.. 2021. 2. 24.
콘도 코이치로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콘도 군은 만화가로 유명했다. 지금은 정도를 밟는 일본 화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 아니다. 만화에는 발상이 해학적인 만화가 있다. 그림 자체가 해학적인 만화가 있다. 혹은 양쪽 모두를 겸비한 만화가 있다. 콘도 군의 만화의 대다수는 이 둘을 겸비한 만화가 아니라면 그림 자체가 해학적인 만화였다. 단지 차림새만 가다듬으면 한 장의 만화가 곧 한 폭의 산수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콘도 군의 그림은 예스럽지 않다. 낭과와 같은 물과 산의 그림에서도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나는 고집스러운 면모가 숨어 있다. 곳곳에 예술가로서의 탐욕이, 갖은 것에서 수분을 흡수하려는 바람이 노골적으로 느껴져 유쾌하다. 오늘날의 풍속은 어제의 풍속과 같지 않다. 어제의 풍속은 반항적인 한 편으로 냉담한 게 기본이었다.. 2021. 2. 24.
옷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런 꿈을 꿨다. 보아하니 음식점인 듯했다. 넓은 좌식 자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다들 제각기 양복이나 전통 옷을 입고 있다. 입고 있을 뿐일까. 서로 타인의 옷을 바라보며 멋대로 품평하고 있다 "자네 원피스는 구식이군. 자연 주의 시대의 유물 아닌가?" "그 직물은 걸작인걸. 말로 못 할 인간미가 느껴져." "뭔가 그 하오리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저 감색 서지의 정장을 보게나. 완연한 프티 브르주아니." "오, 자네가 만담가처럼 띠를 두르고 있다니 놀라운걸." "역시 자네가 오지마 명주옷을 입고 있으면 산사람 같군."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물이 올라 있다. 그러자 가장 말석에 묘하게 마른 남자가 있는 게 보였다. 그 남자는 고풍한 옷칠 문양이 된 생모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이 ..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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