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졸업한 해의 여름, 쿠메 마사오와 함께 가즈사 이치노미야의 해안가에 놀러 갔다. 놀러 간다고 해도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쓴 건 매한가지였지만, 뭐 바다에 들어가고 산책을 하는 게 하루의 대부분이었다.
어느 저녁. 우리는 이치노미야의 거리를 산책하여 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게 됐을 적에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이르기 위해서는 통보리사초나 방풍 등이 자란 모래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마침 그 모래산 위에 올랐을 때, 쿠메가 무어라 외치더니 모래산을 달려 내려갔다. 나는 왜 저러나 싶었지만 어찌 되었든 무언가 달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겠지 싶어 역시나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인기척 없는 모래산 위에 홀로 남겨지는 게 꺼림칙했단 사실도 등을 떠밀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쿠메는 중학생 때 야구 선수까지 한 남자이다. 나는 아직 제대로도 달리지 못 한 새에 금방 쿠메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십 분쯤 지난 후.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당시 우리가 빌린 숙소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라 해봐야 고작 두 첩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눈에 들어오는 방 안에서는 쿠메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신발이 벗겨져 있는 걸 보면 돌아온 건 분명했다. 나는 큰소리로,
"야, 쿠메."
하고 불러보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왜."
하는 답이 들렸다. 하지만 어디선지는 역시 감도 잡히지 않았다.
"쿠메."
나는 다시 한 번 불렀다.
"왜 부르냐니까."
쿠메도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이번에는 쿠메가 어디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나는 엔가와를 넘어 화장실 앞에 가서,
"왜 그렇게 뛰었는데."
하고 물었다. 내 목소리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쿠메 또한 화가 났다는 양 이렇게 대답했다.
"안 뛰면 늦을 거 아냐."
그 이후로 7, 8년이란 세월이 강처럼 흘렀다. 나는 어느 틈엔가 이마가 벗겨지는 걸 한탄하고 있다. 쿠메 또한 이제는 당시처럼 달릴 용기가 없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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