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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84

일보전진 이보후퇴 - 다자이 오사무 일본만의 일이 아닌 듯하다. 또 문학만의 일도 아닌 듯하다. 작품의 재미보다도 작가의 태도가 먼저 화두에 오른다. 작가의 인간성을, 약함을 끌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작품을 작가에서 벗어나 서명 없는 하나의 생물로 독립시켜주지 않는다. 세 자매를 읽다가도 그 세 어린 여자의 그림자서 작게 웃고 있는 첸호프의 얼굴을 의식한다. 이런 관람 방식은 지성이자 날카로움이다. 안력으로 종이 뒤를 꿰뚫는 셈이니 힘든 일이다.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날카로움이니 창백함이니 얼마나 무른 총속적 개념인지 알아야만 한다. 불쌍한 건 작가이다. 실수로 웃을 수도 없게 되었다. 작품을 정신수양의 교과서로 다뤄서야 견딜 수가 없다. 추잡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2021. 12. 11.
무제 - 다자이 오사무 오오이 히로스케는 정말로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이걸 쓰면서도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19자 24행. 즉 사백오십육 자의 문장을 하나 쓰라는 것이다. 제멋대로기 짝이 없다. 나는 오오이 히로스케와 논 적도 없고 오늘까지 우리 둘 사이에 어떠한 은혜도 원한도 없었을 터인데 왜 이러한 난제를 내던지는가. 정말로 곤란하기 짝이 없다. 오오이 군, 나는 난폭한 남자야. 자네가 잘못 본 모양이지. 딱 맞춰 사백오십육 자의 문장을 쓰라니 그런 그럴싸한 남자가 못 되지. "도무지 쓸 수 없다"고 말하며 거절하니 "그건 곤란하죠. 제가 면목 없어지니까요"하고 말했다. "면목이 없다"가 아니라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도 묘하다. 그래서야 꼭 내가 오오이 히로스케의 면목을 없앤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2021. 12. 10.
촌뜨기 - 다자이 오사무 저는 아오모리현 키타츠가루군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콘칸 이치하고는 같은 고향 출신입니다. 그도 꽤나 촌뜨기인데 저는 그가 태어난 곳보다 열 리는 더 산속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좀 더 지독한 촌뜨기인 셈입니다. 2021. 12. 9.
봄 - 다자이 오사무 벌써 서른일곱이 되었습니다. 요전 번에 어떤 선배가 잘도 살아 있다고 뼈에 사무친 듯이 말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서른일곱까지 산 게 거짓말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전쟁 덕에 겨우 살아남을 힘을 얻은 듯합니다. 벌써 아이가 둘입니다. 위는 여자아이로 올해로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남자아이인데 작년 8월에 태어나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적기가 공격이라도 할 때면 아내가 아래 아이를 등에 메고 제가 위 아이를 안고서 방공호에 뛰어 듭니다. 저번에 적기가 강하하여 바로 근처에 폭탄을 터트리는 통에 방공호에 들어갈 새도 없이 가족이 둘로 갈라져 옷장으로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쨍그랑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위에 애가 어머 유리가 깨졌어하고 공포도 무엇도 없는 감각으로 무심히 소란을.. 2021. 12. 7.
어떤 충고 -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일상생활이 고스란히 작품에도 드러나는 거지요. 속이려 해도 쉽지 않아요. 생활 이상의 작품은 쓰지 못하는 거죠. 느슨히 생활하면서 좋은 작품을 쓰는 건 불가능하죠. '문인' 중 한 사람이 된 게 그렇게 기쁜가요. 감투를 뒤집어쓰고 '요즘 청년은 조사 사용이 엉망이란 말이죠'하고 떠들어대니 구역질이 나올 거 같군요. '선생' 소리 듣는 게 그렇게 기쁜가요. 길거리 점술사도 선생님 소리는 듣지요. 세상이 명사 대접을 해주며 영화 시사회니 스모 경기에 초대받는 게 그렇게 그렇게 기쁜가요. 소설을 쓰지 않아도 명사 소리 듣는 법이야 얼마든지 있을 테죠. 특히 돈은 또 어떻습니까. 벌 방법이 어디 한두 개인가요. 입신출세라도 한 모양입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적의 비장한 각오는 어디 갔나요. 참 쫌스럽.. 2021. 12. 6.
'만년'에 관해 - 다자이 오사무 "만년"은 제 첫 번째 소설집입니다. 이게 제 유일한 유작이 되리란 생각에 제목도 "만년"이라 지었습니다. 재밌는 소설도 두세 개 가량 있으니 한가하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제 소설을 읽어 본들 당신의 생활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습니다. 조금도 대단해지지도 않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별로 권할 수 없습니다. "추억" 같은 건 읽으면 재밌지 않을까요. 분명 대폭소할 겁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로마네스크" 같은 것도 우스꽝스럽고 엉망진창이지만 이건 조금 난잡하여 별로 권할 수 없습니다. 다음엔 단지 이유도 없이 재밌는 장편 소설을 써보겠습니다. 요즘 소설은 모두 재미없잖아요? 상냥하고, 슬프고, 우습고, 숭고하고 달리 뭐가 필요할까요. 애당초 재미없는 소설이란 못 쓴 소설입니다. ..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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