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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928

상복을 입은 인형 - 키시다 쿠니오 신극 협회의 어느 연습날, 이자와 란쟈는 나를 방구석으로 불러 보자기 하나를 풀었다. 뭘 꺼내나 싶었더니 여느 때처럼 소녀처럼 웃으며――"이거 잘 만든 건 아닌데……" 같은 소리를 하면서 내 손에 인형 같은 걸 건넸다. 그건 서양풍 상복을 입은 여자 인형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티롤의 가을' 속 스텔라임에 분명했다. 정확히는 스텔라를 연기하는 그녀 본인임에 분명했다. 내 손에 인형을 건네면서 다른 사람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풍겼으나 그건 아무래도 좋았으리라. 그런 점에서도 '일본 소녀' 이자와 란쟈의 전통적인 교태가 담겨 있었다. 또 나도 아름다운 여배우에게 그런 선물을 받아 기쁘지 않을 리도 없다. 돌아갈 때엔 그 인형을 소중히 안고서 '티롤의 가을' 첫 상연 당일을 떠올렸.. 2022. 8. 29.
코야마 유시 군의 '세토 내해의 아이들' - 키시다 쿠니오 희곡가 코야마 군의 성장은 어느 단계부터 지극히 확연해져 '나부끼는 리본'부터 '12월', 그리고 이 '세토 내해의 아이들'에 이르는 최근의 세 작을 통해 훌륭히 비약하여 오늘날의 코야마 군이 완벽이라 해야 마땅한 표현에 도달해낸 건 예술 수업의 길에 있는 자로선 지극히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떠한 좋은 조건에 축복받았다 해도 회사에 근무하면서 이 대작에 착실히 임한 코야마 군의 의지는 오늘날 우리 희곡단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으리라. 또 동시에 그가 어떠한 이론의 풍조에도 고집하지 않고 그 '몸에 새겨진 문학'을 서서히 쌓아 올려 희곡에서 '시'와 '산문'이 교차하는 일점을 확실히 얻어낸 결과이리라. 코야마 군이 이따금 스스로 심취해 있는 듯한 음악적 환상은 서서히 현실의 육체로 바뀌어 가고 있으.. 2022. 8. 28.
츠키지좌의 '마마 선생' - 키시다 쿠니오 토모다 쿄스케 군과 그 아내가 나의 '마마 선생과 그 남편'을 하고 싶단 말을 꺼냈다. 배역은 열 명 중 아홉 명을 고른다는 갑갑한 방법이나 나는 그 자리서 이를 승낙했다. 토모다 쿄스케 군은 신극 배우로서 확실한 기량을 지니고 있으며 츠키지좌를 이끄는 방침도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본래 이 각본은 내 종전 작품과 조금 결이 달라서 연출 또한 여느 때처럼 안 된다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였다. 때문에 배역도 꽤나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니 의외로 재미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에서 '마마 선생'은 모든 것에 무게감을 잡는 농후한 여자이나 타무라 아키코 부인은 반대로 가련하며 산뜻한 여성으로 여기는 듯했다. 남편 사쿠로를 연기하는 토모다 군은 내가 그리는 인물.. 2022. 8. 27.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후기 - 키쿠치 칸 아쿠타가와가 죽어 이래저래 이 년 반 가량 지났다. 그의 사인은 그의 육체 및 정신을 덮친 신경쇠약이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을 테지만 남은 절반 가량은 그가 인생 및 예술에 너무나도 양심적이며 너무나도 신경과민이었던 탓으로 여겨진다. 그의 너무나 날카로운 신경은 실생활의 번거로움 때문에 더더욱 날카로워져 끝내 이가 빠진 얇은 검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의 뒤처리는 세밀하게 처리되었다 해도 좋았다. 그의 전집 출간도, 그의 유족 생활도 그의 신경을 건드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그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에게 진심으로 애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생전 이상으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고 있지 싶다. 이제 그는 홀로 등나무 의자에 앉아 어린 모밀잣밤나무 잎을 바라보.. 2022. 8. 26.
아쿠타가와를 애도한다 - 이즈미 쿄카 그 문장과 그 질로 이름 높은 산과 바다를 영롱하고 밝게 비추었던 그대여. 혼탁하게 아지랑이핀 더운 여름을 등진 채 홀로 냉담히 갔는가. 이렇게 거성은 홀연히 하늘 위에 떠올랐다. 그 빛은 한림에 드리워 영원히 사라질지 모르리라. 허나 생전에 손을 잡고 가까이 지낼 적에 그 용모를 보는데 질리지 못했고 그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으니 우리는 그대 없는 지금을 어찌 보내야 할까. 생각에 잠기니 가을은 깊어지고 안개는 눈물처럼 번지는구나. 달을 보며 모습이 떠오르면 누군가 또 이별을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일이라 하던가. 숭고한 영아, 잠시라도 좋으니 땅에 돌아오라. 그대를 동경하나 아직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들과 온화하고 정숙한 영부인에게라도 그 모습을 보여다오. 말이 이어지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며 작은 마음.. 2022. 8. 25.
아쿠타가와를 통곡하다 - 사토 하루오 마지막까지 이지를 친구로 둔 것처럼 보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서는 고인 또한 그러했던 것처럼 감상에서 벗어나 논평의 형태로 글을 남기는 게 옳을 테지. 이 사실이 내 친구의 좋은 영혼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오로지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이는 니체의 말로 나는 아직 한 번도 자신을 죽여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친구의 특별한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때문에 나는 결국 내게 보인 그를 통해 나 자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독자 또한 이 글이 와닿을 수 있을 터이다. 요컨대 보잘 것 없이 살아남아 있는 인간이 제멋대로 떠드는 꼴일지도 모른다. 내 좋은 친구였던 고인은 요즘 들어 나의 불손함을 장난스레 과감함이라 불러주며 관대히 봐주었다. 그러니..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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