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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혁명 전이었던가, 혁명 후였던가.――아니, 그건 혁명 전이 아니었다. 왜 혁명 전이 아니냐면, 내가 당시 주워 들은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푹 찌는 밤, 무대 감독 T군은 제국 극장의 발코니에 앉아 탄산수 컵을 한 손에 든 채 시인 단첸코와 대화를 나누었다. 황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맹목 시인 단체코 말이다. "이것도 역시 시대 흐름일까요. 저 먼 러시아의 그랜드 오페라가 일본의 도쿄까지 오다니." "볼셰비키는 과격파니까요." 이 문답이 있었던 건 첫날부터 다섯 날이 지난 밤――카르멘이 무대에 오른 밤이었다. 나는 카르멘 역할을 맡은 이이나 불스카야에 빠져 있었다. 이이나는 눈이 크고 작은 코가 오똑한 육감적인 여성이었다. 나는 물론 카.. 2021. 2. 24.
가장 기분이 내킬 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겨울을 좋아하여 11월, 12월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건 12월에 보는 자연이나 도쿄의 모습이 좋다는 뜻이다. 자연이 좋다는 건 내가 교외에 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기 때문인데,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밤늦게 집에 돌아올 적이면 말로 다 못 할 냄새가 풀풀 풍긴다. 낙옆 냄새나 안개 냄새, 갈라진 꽃향이나 과일이 썩은 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좋은 냄새가 난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나무 사이가 투명하게 비친다. 나뭇잎이 떨어진 후에 가지 사이가 낭랑히 빛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지빠귀도 찾아온다. 직박구리가 온다. 이따금 할미새가 올 대도 있다. 밭 구석의 이름 없는 강에는 겨울이 되면 항상 할미새가 찾아온다. 그 녀석이 이 정원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여름처럼 백로가 하늘.. 2021. 2. 24.
콘도 코이치로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콘도 군은 만화가로 유명했다. 지금은 정도를 밟는 일본 화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 아니다. 만화에는 발상이 해학적인 만화가 있다. 그림 자체가 해학적인 만화가 있다. 혹은 양쪽 모두를 겸비한 만화가 있다. 콘도 군의 만화의 대다수는 이 둘을 겸비한 만화가 아니라면 그림 자체가 해학적인 만화였다. 단지 차림새만 가다듬으면 한 장의 만화가 곧 한 폭의 산수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콘도 군의 그림은 예스럽지 않다. 낭과와 같은 물과 산의 그림에서도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나는 고집스러운 면모가 숨어 있다. 곳곳에 예술가로서의 탐욕이, 갖은 것에서 수분을 흡수하려는 바람이 노골적으로 느껴져 유쾌하다. 오늘날의 풍속은 어제의 풍속과 같지 않다. 어제의 풍속은 반항적인 한 편으로 냉담한 게 기본이었다.. 2021. 2. 24.
옷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런 꿈을 꿨다. 보아하니 음식점인 듯했다. 넓은 좌식 자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다들 제각기 양복이나 전통 옷을 입고 있다. 입고 있을 뿐일까. 서로 타인의 옷을 바라보며 멋대로 품평하고 있다 "자네 원피스는 구식이군. 자연 주의 시대의 유물 아닌가?" "그 직물은 걸작인걸. 말로 못 할 인간미가 느껴져." "뭔가 그 하오리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저 감색 서지의 정장을 보게나. 완연한 프티 브르주아니." "오, 자네가 만담가처럼 띠를 두르고 있다니 놀라운걸." "역시 자네가 오지마 명주옷을 입고 있으면 산사람 같군."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물이 올라 있다. 그러자 가장 말석에 묘하게 마른 남자가 있는 게 보였다. 그 남자는 고풍한 옷칠 문양이 된 생모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이 .. 2021. 2. 24.
봄날의 밤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나는 콘크리트 건물이 줄지은 마루노우치 뒷골목을 걸었다. 그러자 무언가 냄새가 느껴졌다. 무엇일까?――아니, 야채샐러드의 냄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스팔트 거리에는 쓰레기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건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둘 U――"자네는 밤이 무섭지 않나?" 나――"딱히 무섭다 느낀 적은 없는데." U――"나는 무서워. 어쩐지 커다란 지우개라도 씹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이 또한――이 U의 말 또한 참으로 봄날의 밤 같았다. 셋 나는 중국 소녀 하나가 전차에 올라타는 걸 바라보았다. 계절을 파괴하는 전등불 아래라 하여도, 분명히 봄날의 밤이었다. 소녀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전차에 발을 걸치려 했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소녀의 귀뿌리에 때가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는 .. 2021. 2. 24.
교정 후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앞으로도 이번 달과 같은 소재를 써서 창작할 생각이다. 그걸 단순한 역사 소설 중 하나로 두는 건 내키지 않는다. 물론 지금 게 대단하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곧 좀 더 괜찮아지리라.(신사조 창간호) ○주충은 요재지이에서 소재를 따왔다. 본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신사조 4호) ○주충은 "しゅちゅう(주충)"라 읽는 것이지 "さかむし(술벌레)"라 읽는 게 아니다. 거슬리기에 덧붙인다.(신사조 6호) ○나는 신소설 9월호에 '참마죽'이란 소설을 썼다. ○아직 빈 공간이 있어 좀 더 적겠다. 마츠오카의 편지에 따르면 신사조는 니이가타현에 성실한 독자를 제법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창작에 뜻을 둔 청년도 많다고 한다. 단지 신사조만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도 그런 사람이 많아지기..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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