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과 캐릭터로만 도망치지 않는 일상물
인간 관계란 건 결코 쉽지가 않다. 혹은 인간 최대의 과업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나이를 먹을 수록 학창 시절 친구 관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제법 느끼게 된다. '히토리 봇치의 OO 생활'은 바로 이 부분을 공략한다. 단순히 캐릭터만으로 흐르는대로 두는 여타 일상물과 달리 '반 전체와 친구 되기'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뚜렷한 목표성은 작품 전체에 씹는 맛을 준다.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가는 소년 만화를 보듯이 매권매권, 미약하게나마 성장하는 히토리의 모습에서 읽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칫 헤이해져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캐릭터를 향한 정이 떨어지는 순간 작품에 관한 흥미도 떨어지게 되는 여타 일상물과 차별화되는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히토리 봇치의 OO 생활'도 장르 자체의 맥락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차별화된 목표와 달리 실제 내용물 자체는 별 반 다를 바가 없다. 학교 쉬는 시간마다 재잘재잘 떠들고, 방학 계획을 세우고, 여름 피서를 보내고, 다 같이 숙제를 하고, 수험을 보고, 새해 참배를 한다.
단지 그 모든 요소 안에 히토리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개가 담겨 있기에 엇비슷하다는 인상이 희박해진다. 되려 버킷 리스트를 채우는 듯한 즐거움마저 있다. 비단 일상물만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목표 설정이 가지는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스케일은 다를지언정 히토리 봇치의 '봇치(= 외톨이) 탈출에는 루피의 '해적왕'이나 나루토의 '호카게'에 비견가는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정이란 소재 또한 결코 가볍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름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여러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어떤 개성이나 우정에도 정답은 없다'는 견지를 보여준다. 친구를 위해 독해지는 우정(야와라 & 봇치)도, 서로 투닥투닥 한 마디씩 주고 받으면서 노는 우정(혼쇼 & 나코)도, 착각에서 시작된 동경(라키타 & 봇치)도 모두 소중한 우정이며 우열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웹연재 당시의 어두웠던 부분까지 생각하면, 작가는 단순히 창작물 특유의 기호화된 우정이 아닌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우정의 형태를 그리고 싶었던 걸로 추정된다. 특히 마지막 권에서 기존의 과장된 캐릭터성(과 그걸 대표하는 기이한 이름들)을 탈피한 야마다 하나코와 마지막 친구가 된다는 점에서 그 확고한 뜻을 느낄 수 있었다. 봇치를 따라 온 독자라면 누구나 현실에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응원 메세지라도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히토리 봇치의 OO 생활'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종의 코드가 담겨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캐릭터와 흘러가는 듯한 일상물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애당초 내가 좋아하는 유루캠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호화된 일상물에 질린 독자라면 한 번 쯤 찾아 보기 좋은 작품이라 본다. 또 내용의 자극성이 그리 크지 않고 권수도 적당하기에 어린 아이들의 만화 입문작 등으로도 추천할만 하겠다.
히토리 봇치의 OO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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