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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하기 어려운 책
다독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너무 양이 방대해서, 번역이나 여타 이유로 문체가 난잡해서, 혹은 단순히 재미 없어서, 또는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이 책은 분명 가장 마지막 사례에 속하리라. 사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어디가서 쉽게 손에 얹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물며 누가 보면 '왜 그런 책을 사냐, 무슨 힘든 일 있냐' 소리를 듣기 쉽상이리라.
그러나 이 책은 만인을 위한 책이다. 제목의 우리는 당사자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엇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우리 모두를 말한다. 책에서는 주로 자살 사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별도, 혹은 이별마저도 이야기 속에 품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용이 무거워 함부로 리뷰하기는 힘들지만 누군가와 이별을 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이별에 걱정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동생이 생전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채팅과 이메일을 밤늦게까지 살펴본다고 했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동생의 죽음을 해석해야 해요."
내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9p
제가 심리부검 면담에서 '추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무리 많은 자료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더라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고인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것이 혹여 심리적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살을 선택하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마주한다면, 17p
한번은 자살로 형제를 잃은 한 청소년이 어쩔 수 없이 듣게된 자살예방교육 시간에 안절부절 못했던 경험을 토로하며 제 앞에서 서럽게 운 적이 있습니다. "자꾸 자살하는 사람들은 경고 신호를 다 보냈대요. 신호를 보냈는데 우리가 몰랐던 거래요. 정말 그거 만든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없었나봐요. 정말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자살 경고 신호 목록은 여러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만 모든 자살에 해당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남일인 줄 알았다, 23p
우리는 흔히 누군가 자살을 선택하는 데에는 한두가지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아주 쉽게 단정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별자들은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명확한 한두가지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가 설마 '그것'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엉킨 실타래 속에 몸과 마음이 꽂여버린 사별자들은 그냥 입을 닫아버리거나 아니면 죽음에 다른 이유를 댑니다. 그 편이 고인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은폐되는 죽음, 자살, 42p
사별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죄책감입니다. (중략) 자살 위험군의 행동, 신체 변화, 내적 요인, 외적 요인 등 목록을 보다보면 '경고신호가 이렇게 많은데 난 왜 몰랐지?'하면서 또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는 거죠.
왜 알지 못 했을까, 50p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인용한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신발을 신고, 걷고, 벗어두는 이 모든 과정에서 사별자가 하는 이야기들은 사별자의 삶의 스토리라인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인에 대해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이야기, 상실을 견디게 해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요?
신발 신고, 걷고, 벗기, 82p
평소처럼 내 생각을 적을까 했는데 계속 생각이 많아져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많은 거 같아서 기억에 남는 부분만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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