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독서노트] 내 이름은 샤이앤﹒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by noh0058 2022. 8. 31.
728x90
반응형
SMALL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어려움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진정한 자신을 마주한다. 창작물, 특히 노래 가사 등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속 공허를 메운다는 갖은 창작물의 특성상, 이는 거꾸로 뒤집어 말한다면 그만큼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책의 특성상,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과 동떨어진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은 굳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일 터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게 학업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그게 직업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사회적 위치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게 국적일 수 있고, 이 책의 사람들에겐 그게 성별이었다.

 단지 그들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성별이란 것이 학업이나, 직업, 사회적 위치, 국적처럼 쉽게(그야 국적은 앞서 세 개보단 어려울지 몰라도) 바꿀 수 없다는 점 하나에 있다. 문과에서 이과로, 마지못해 하는 일에서 원하는 일로, 위에서 아래로 혹은 힘들어서 위에서 아래로, 한국보다 미국이 좋아서, 미국보다 한국이 좋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으로 바뀌어 가려는 것처럼, 그들 또한 진정한 자신으로 바꾸고 싶다 바라고 만다.

 결국 영역에 차이일 뿐, 정도의 차이일 뿐, 어려움의 차이일 뿐—혹은 매사가 그런 것처럼—사람 사는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일을 개척하고 관철하는 모습이라면 누구에게나 빛이 되고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

 진정한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리고 아직 되지는 못 했지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만 사람에게는 꼭 한 번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나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마가리타이다.
또 나는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공포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커피는 항상 달게 마신다.
그리고... 나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내 이름은 샤이앤, 12p,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고찰점: 샤이엔의 도입인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자신을 증명할 때 관계보다, 신분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가장 앞서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는데 이 도입부는 그런 내 생각과 정확하게 합치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자신의 증명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개입되지 않은 자신을 증명하게 되는 행위가 된다. 또 자신을 열어두고 같은 동지를 모으는 일도 되지 않을까. 이 부분이 정확히 그렇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내가 트랜스젠더라니 말도 안 돼."
많은 성소수자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시기, 즉 다나이얼 시기를 거친다.
"모든 것이 역할극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에 천천히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구나..."
내 이름은 샤이앤, 39p, 디나이얼 시기

고찰점: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런 말이 무례하게 느껴질진 몰라도—을 하고 있는데 나의 꿈과 관련된 일이다. 꽤나 시간을 공들여 준비하고 꽤 자신감도 가진 일이 있었는데, 현실은 이를 무참히도 박살내 버렸다.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때 사용한 말이 '취미'였다. '취미니까 망해도 괜찮다', '나 좋아서 한 일이다', '결과가 안 좋을 줄 알았다'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자신을 속여 넘기려 했다. 그후 어찌어찌 그 일은 계속하고 있으나,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진정한 나와 올바르게 마주하지 못한 채 그럴싸한 말로 자신부터 속이려는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하물며 요즘은 그 관문(이라 생각하는 것)의 앞에 서있는지라 더욱 어렵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다른 고민까지 섞여 지금은 그야말로 머리가 터질 거 같은 시기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마주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쫓는 건 큰 힘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이제야 출발선에 섰는데 다른 시스젠더들은 이미 멀리 앞에 가있어서 뒤처졌다고 느끼게 된다
내 이름은 샤이앤, 102p, 트랜지션 후의 정신 건강

고찰점: 이 부분은 내가 제일 안타깝게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꿈과 하고 싶은 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그 부분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측면을 지녔기 때문이다. 단지 성별이 잘못되었단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시간과 금액을 할애하며 다른 방향의 진정한 자신—꿈, 자기계발, 자아 실현 등의 문제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많은 게 친화적이고 쉬워져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스스로를 미워하라고 말하지만
그럴 때는 기억하세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좋아해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혁명이나는 것을요!
내 이름은 샤이앤, 148p, 에필로그

고찰점: 아름다운 말이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미워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너는 능력이 떨어지니까, 네가 하는 일은 모두 글러 먹었으니까, 네가 열심히 하지 않은 업보니까 스스로를 미워하라.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필요 없을 것이다. 잘나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특별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달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지 태어났으니까 자신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후에도 끊임 없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
부작용, 비용, 시간. 그 모든 걸 다 고려해도
트랜지션을 하는 게 행복할지는 본인밖에 모르는 거니까.
내 이름은 말랑, 25p, 트랜스젠더와 트랜지션의 기준

고찰점: 행복이란 게, 삶이란 게 이래서 어렵다. 본인밖에 모르는데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본인밖에 모르는 행복을 찾아도 주위가 행복하게 두지를 않는다. 꼭 한 마디씩 많다. 그 말에 휘둘려 본인밖에 모르는 행복마저 다른 걸로 덧칠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으리라.

되도록 겉모습, 행동, 말투와 더불어 성장 배경까지 트랜스젠더에 대한 보편적 편견대로 꾸미는 편이 좋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은 그런 편견대로의 모습이 아니라면 트랜스젠더로 인정해주지 않는 의사들도 많다
내 이름은 말랑, 97p, 트랜지션을 위한 정신과 진단서

고찰점: 자신을 증명하는데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이는 비단 트랜스젠더만의 문제가 아니란 건 알고(우울증 같은 사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의사들도 직업적 고난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사람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공간인 만큼 좀 더 열려 있는 걸 기대하고 만다.

나도 만화를 통해 그런 교류의 창구를 열고 싶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내 이름은 말랑, 184p, 퀴어끼리의 교류

고찰점: 창작물을 통해 서로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단 작가의 노력은 분명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글마저도 온전히 솔직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수놓고 있는 건 분명 이 책들에게 어떤 용기를 받은 덕이리라. 이 감정을 오래 간직해두고 싶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