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전체에 도움이 될 듯한 책
그림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꿈이다. 초보용 작법서도 여럿 샀고 너무 초보용이라 안 하게 되나 싶어서 그림체가 마음에 드는 작법서로 산 적도 있다. 물론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하면 된다는데, 해서 되는 사람도 봤는데 난 손가락만 빨면서 부러워만 한다. 누구 말처럼 잘 그리는 사람을 커비처럼 흡수하고 싶을 지경이다.
'잘 그리기 금지'는 분명 그림 작법서이다. 제목은 독특한 게 되려 평범하다. 클리셰란 느낌이다. 작법서 계열에서 "못 해도 된다" 만큼 흔한 말도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만약 이 책이 랩핑된 채 전시되어 있었다면 아마 나는 사지 않았을 터이다. 그림은 확실히 내 취향이긴 했지만(포켓몬 TCG 일러레란 건 책을 사고 알았다) 적어도 제목이나 띠지가 썩 내키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몇 번 팔랑이고 나서는 곧장 '사야지' 싶어졌다. "팔로워가 늘지 않는다", "SNS에서 흥하고 싶다",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질투난다", "프로가 되고 싶다", "일을 받고 싶다" 등등등. 작법서를 품으면서 그 이상으로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 게 느꼈다. 멘탈 관리 이야기도 보이는지라 '나한테도 해당되겠다' 싶어서 집어 왔다.
실제로 읽어 본 감각으로도 꽤나 "실전 지향"적인 게 느껴졌다. 반대로 외려 테크닉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권할 수 없는 책이다. 잘 그리기 금지라고 제목에 써놓은 것처럼 잘 그리는 방법은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당신의 그림을 좀 더 괜찮은 상품으로 바꿔 줄 뿐이다. 아니, 여기선 그림만 아니라 글이나 여타 창작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창작에 관한 실전과 멘탈 관리를 배우고 싶다면 한 번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잘 그리기 금지
그림에 깃든 힘은 재능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신이 얼마나 감동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며, 3p
고찰점: 창작이란 결국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하지만 남의 감동을 우선시하다 자신의 감동을 놓쳐서는 안 될 터이다. 그야 물론 자신의 감동만을 앞세운 독선적 작품도 문제는 있지만(내가 이전에 쓴 소설도 그렇다), 자신이 감동하지 못한 채로 남의 감동만을 챙겨서는 수동적이고 색채가 바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론은 중용 같은 뻔한 말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대목이지 싶다.
Q. 팔로워가 전혀 늘지 않아요.
A. SNS는 전략이 중요해요!
사람들이 봐주지 않아요, 58p
고찰점: 평소와 달리 인용이 아니지만 이 부분 전체가 흥미로웠기에 이렇게 기재한다. 궁금하면 사서 확인해달라(나도 광고비 받으면서 이런 멘트 하고 싶다...). 난 이 부분을 접해서 작법서에서 이런 이야기도 해?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 같은 생각도 했다.
물론 다른 작법서 중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내가 보는 건 처음이라 꽤 신선했다. 사실 다른 방면으로 열심히 해도 '실전적이고 현실적인'면이 부족해서 빛을 보지 못하는 아마추어는 결코 적지 않으리라 본다. 이런 건 좀 더 널리 퍼져도 좋지 싶다.
그와 별개로 난 SNS를 전략적으로 쓰고 있을까. 조금 반성이 필요할 거 같다.
문제로부터 계속 도망치다 보면 그것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 그곳에 계속 머물게 되는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언젠가 받아 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로 바뀝니다. 문제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무력함'이 '가능성'으로 바뀝니다.
사람들이 봐주지 않아요, 83p
고찰점: '고민의 가시화'는 이전부터 신경 쓰는 점인데 좀처럼 쉽지 않다. 특히 잘못 삐딱선을 타면 단순한 우울글이 되는 경우도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마 전에는 긴 고민글 하나를 적은 덕에 어느 정도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노력해볼 일이다.
Q. 내 그림이 안 좋은 비난을 받으면요?
A. 전부 무시하세요!
사람들이 봐주지 않아요, 85p
고찰점: 이번에도 인용이 아니라 단락 전체가 취향 저격이다. 이 책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사실 난 비난이라도 받고 싶을 정도였다. 한 때는 받지도 않은 비난에 지레 걱정하곤 했는데, 오히려 그런 것마저 없이 깔끔히 묻히니까 그게 더 속상했다. 어찌 됐든 이번에는 좀 재기를 도전해보려 한다. 그때도 묻히면? 그땐 깔끔히 포기해야지 어쩌겠나.
(전략) 반대로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해두면 '열심히 노력하자!'하고 급격히 머리가 돌아가게 됩니다.(중략) 명함을 만들어 자신은 일러스트레이터라고만 말하기만 해도 자기 스스로 성장을 가속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요, 95p
고찰점: 요즘 들어 바깥에서도 '블로그를 하고 있다', '번역을 하고 있다', '소설을 쓴다', '리뷰 같은 걸 쓴다' 같은 말을 자주하게 되었다. 블로그 내에서도 소설을 쓰니 뭐니 하는 말을 늘리고 있다(그러면서 기어코 감추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자존감이 붙고 내 하는 일에 의욕이 생기는 경험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아 그래요, 대단하네요'하고 드라이하게 받아주는 반응이 많은 덕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기회를 늘려 볼 생각이다.
책,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레저 등 예산 범위 내에서 인풋을 늘리기를 추천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이런 인풋이 중요합니다. 단, 막연하게 그저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인풋'으로 승화해야 합니다.
일이 들어오지 않아요, 112p
고찰점: 인풋까지는 꽤 열심히 하는 편이라 보는데 해석면에서 부족한 게 아쉽다. 생각해보면 독서 분야를 제외한 작품 리뷰에선 이런 면의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애니메이션 리뷰를 한 게 루팡 3세였던가. 그 이후로는 몇 줄 찍찍 긋는 게 고작이다. 조금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러프 단계의 그림에 만족하고는 그때부터 연필이 더 나아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순히 그쯤에서 만족해버립시다! 처음부터 높이 뛰려 하지 마세요! 만족스러운 부분까지 그리며 몇 개가 됐든 다양한 작품을 만들면 됩니다.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196p
고찰점: '내 글 구려 병'을 탈출하고 싶다면 그냥 구리게 두자. 꽤 전부터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내 성격상 한 번 고치기 시작하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갈아 엎고 뒤집고 갈아 엎고 만다. 한 번은 1권 분량만 네 번 가까이 쓴 적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건 결국 도중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반대로 구려서 못 참는 게 있어도 그냥 다음 편으로 넘어간 건 완결을 봤다. 이게 정말 좋은 마인드인지는 둘째치고, 만족도나 지속도가 높았던 게 후자인 건 분명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볼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심하면 독이겠지만.
"그건 실패했어. 이야~ 못 하겠더라고~" 정도로 '뭣하면 좋은 이야기거리 하나 생겼네, 아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든 여러분에게, 218p
고찰점: 실패한 이야기는 꽤나 우스꽝스러워서 되려 재미 있을지도 모른다. 무한도전 등에서 박명수와 정준하가 3수, 4수 가지고 투닥거리는 것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언제 한 번 거하게 실패담을 줄줄 늘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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