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무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본은 어쩐지 '무기'란 말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독서노트를 처음 쓴 계기가 된 그 책에도 '무기'란 표현이 들어갔다. 단지 나는 무기란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저자들의 의도야 물론 그런 뜻이 아니겠지만, 가능하면 무기보단 방패이고 있다.
내 성격이 워낙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탓도 있겠지만 지식이나 경험,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휘두르기 보다는 내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걸 해결하거나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 써먹고 싶다. 어느 쪽이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일맥상통할지는 모르나 개인적인 마음가짐 영역에서는 제법 큰 차이가 있으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도움이 되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지는 않다. (이제는 날아갔지만) 이전에 유머글 등지에서 본 "식물인간이 눈으로 로봇을 조종해 알바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사람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면이나, 이미 실천하고 있는(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단지 역시나 '잘 포장된 괴짜 스토리'라는 생각도 마냥 떨쳐낼 수 없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지 않은가. 학창 시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진짜 자신이 잘 하는 걸 찾고, 주위가 무어라 말하든 그걸 묵묵히 관철하여 성공한 사람들. 삐뚤어진 생각이란 건 알지만 이렇게 마냥 성공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분명 대다수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일 터이다. 자칫하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킬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의 독자를 타게팅한 책이기에 더더욱.
물론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면 권할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움츠러든 채 움직이지 못하는 괴짜들에겐 더더욱. 책과 내용은 좀 동떨어져 있으나, 나는 요즘 들어 부쩍 일본의 '괴짜' 비율을 좀 생각해 보고 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사회 분위기는 크게 차이 나지도 않을 터이다. 억압적이고, 개인을 누르고, 삐져 나온 못을 손가락질하는 그런 분위기.
그럼에도 일본은 한국보다 괴짜가 더 많은 나라란 느낌을 받는다. 하물며 그 괴짜들이 "뭐 어때 남은 남이고 나는 나야"하고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더 많은 거 같다.(내 좁은 소견 탓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이전부터 생각하던 일인데 왜 그런 건지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다른 책이나 공부를 통해 배워보고 싶은 일이다.
열중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수업 미래의 무기
누가 시키셔 하는 것도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게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남들과 달라도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해본다, 23p.
고찰점: 뻔한 이야기지만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 인용해본다. 사실 이 이야기의 겉면(특히 돈벌이와 직업적인 면에서)은 어느 틈엔가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게 AI 그림이다. 익히 알다시피 그림은 예술의 영역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원해서 하는 일'에 가깝기도 했다.
이처럼 누군가가 원해서 하는 일──그게 그림이든,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일인 발명이든, 내가 하는 일인 소설이나 번역이든──이라도 금세 누군가 아닌 무언가가 대체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박탈감 속에서 자신이 원해서 하던 일을 내려 놓게 되리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일을 원했는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번역을 하던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웠을 수도 있다. 남들의 관심이 기뻤을 수도 있다. 자신이 해낸 일이 주위에 모종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게 기뻤을 수도 있다. 우리가 원했던 건 단순히 그림이나, 소설 쓰기, 번역... 나아가서는 그 행위에 붙여진 이름만의 존재가 아니었을 터이다.
그야 이런 이야기가 단순히 꼰대 소리처럼 들릴 수는 있겠다. 돈은 언제나 현실이다. 당장 나 스스로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물며 나중에는 기본 소득으로 누구나~ 운운하는 꿈 같은 소리도 하고 싶지 않다.
요지란 결국 하고 있을 때나 무언가를 하게 될 때나 행위 너머의 걸 바라보는 눈이다. '원하는 것'을 행위 너머의 영역에서 봐야만, 성장이 따라 오지 않을까. 또 성장 뒤에 성공이 따라 올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그 사실을 바라고 축복해주는 듯했다. 아마 그 또한 이 저자가 책을 낸다는 행위 너머에서 본 무언가지 않을까. 나 또한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아마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나에게는 오직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세계에서 혹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발견한다면 내 존재 가치가 사라질 테니까.
기대 없이 가볍게 도전해본다, 71p
고찰점: 이건 늘 마음에 담아두려는데 잘 안 된다. 입으로는 맨날 기대 안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예방선을 깔면서도 속으로는 묘하게 앓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되려 더 많은 것에 도전해보고 있다. 얄팍하게 실패해 가면서 기대하지 않는 노력과 실패하는 노력을 쌓고 싶다. 생각이 많아지는 타입이라 쉽지 않지마는.
"기왕 할 거면 사람들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할 정도까지 해야지. 튀어나온 못이 얻어 맞는다고 하지만 너무 튀어나오면 때리지도 못해."
'이 정도면 되겠지'싶을 때 한 번 더 고민한다, 95p
고찰점: 이건 아쉽게도 나와 안 맞는 이야기인 듯하다. '마무리가 어설프다'라는 건 나 스스로도 느끼는 단점이다. 글도 초고를 쓰면 개고를 거의 하지 않고(못하고라 말하고 싶지만...), 오탈자 같은 것도 잘 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또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지'하면 그 하나를 도무지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진전이 없는 셈이다.
하물며 그렇게 '제대로' 하는 사이에 위에서 말한 '기대감'이 생기고 만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이번에는 붙겠지?"하고 기대하고 만다. 그러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못하면... 고쳐야 하는 걸 아는데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잖아' 같은 편한 말로 도망치려 든다. 내 나쁜 버릇이다.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성적 향상이나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가 원동력이 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사랑하는 가족의 미소라던가 타인의 부탁을 들어줄 때 느끼는 만족감,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 나를 원하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계획대로 일을 완벽히 끝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 혹은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행동 그 자체가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뭔지 생각해본다, 142
고찰점: 이건 생각해보기 위해 인용했다....지만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그나마 마음이 와닿는 건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행동 그 자체'에 가깝지 않을까. 퀄리티나 결과물은 둘째치고 어찌 됐든 뭐라도 했다는 마음에 안닉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가 하면 요즘 들어 부쩍 '결과'나 '성과', '금전' 따위에도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나도 무언가 물질적인 걸 바라고 있는 걸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의미가 없더라도 다양한 것을 접해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경험이 훗날 어떤 일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뭐든지 해보며 나를 알아간다, 147p.
고찰점: 이건 자그마한 경험이다. 얼마 전부터 자주 찾는 일본 블로그가 있다. 4컷 만화를 올리는 블로그인데 거의 평균 1일 1포스팅을 실천하고 있다. 그야 으레 하듯이 세이브 원고가 어느 정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역시 신기하지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만화 어시스턴트의 ABC~2020GW편~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미리 캐릭터 파츠를 여러 종류 만들어놓고 상황별로 배치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고나니 확실히 일상 설명계 만화인 만큼 여러 파츠를 돌려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제작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야 이는 조금이라도 만화(제작)에 박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어찌 됐든 내게는 꽤나 신기한 감각이었다. 만화 어시스턴트 시리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소개(커흠)한 건데 오히려 내가 배운 게 더 많은 느낌이다.
학교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쌓는 일.
경험을 쌓는 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는 일.
그리고 그 생각을 공유하는 일.
이것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다음 세대에 넘거야 하는 바통이 된다.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우리의 살아 있는 무기이다.
꼬리말, 256p.
고찰점: 결국 이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리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역시 '무기'란 단어를 다루는 방식이 크게 다른 모양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내가 무언가를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속좁기에 단지 나 한 명의 정신건강이 최우선인 듯하니까.
그럼에도 단지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아, 이런 식으로 나를 지키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나를 발견해주길 바랄 뿐이다. 어려운 주문일까. 응, 어려운 주문 같다. 결국 삶이 어려운 건 어떤 방면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럼 실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세 번째 항목부터는 특히 어려울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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