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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독서노트] 상냥한 수업

by noh0058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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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기억

 

 학창 시절의 추억 중에서 교사, 선생님들하고 나눈 건 그리 많지 않다. 인간 대 인간으로 깊이 교류한 경험도 없이 단지 기계적인 상담만 몇 번 나눈 정도이다. 어떤 선생님에 이르러서는 그 상담마저 적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탓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원망한 적도 있다.

 단지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들에게 높은 벽을 두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 탓도 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그들과 무언가를 주고 받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위에서 말한 기계적인 상담도, 생각해 보면 나는 그보다 더 딱딱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하물며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은 그들에게 동질감이나 연민 따위도 느끼고 있다. 정말 일찍 교사가 된 선생님이라면 지금의 나와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을 터이다. 내가 고작 몇 년 더 먹는다고 학생들 앞에서 어른으로서 행동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가정하면 나도 참 너무했지 싶어진다.

 그러한 경위는 어찌 되었든, 학창 시절에 여러 어른과 교류를 가지지 못한 건 못내 아쉬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접한 게 이 책이다. 작가는 하이타니 겐지로. 독후에 따로 정보를 찾아 본 건 아니니, 책안의 정보로만 판단하자면 전 선생님이자 글작가인 듯하다.

 책은 저자가 학생들을 보는 시선들로 차있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 교단에서 내려와 강연 형식의 수업을 할 때 만났던 제자들. 장차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교사 꿈나무 제자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고 배우려 하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어른들까지.

 글은 아이들이 가진 개성과 순수함, 엄격함, 또 놓치기 쉬운 복잡함까지도 빠짐 없이 포착해 담아냈다. 그런 걸 쫓아가다 보면 저자의 인간 됨됨이가 보이고, 그런 인간 됨됨이 속에서 차분하게 절제된 문장을 읽다 보면 마치 사람 좋은 어르신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저자가 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찾는 동안, 독자는 그런 저자의 모습에서 옳은 어른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통해 배우는 어른과 삶의 모습. 그런 걸 찾아 볼 수 있는 유니크한 책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나처럼 어른 멘토가 부족했다 여기는 사람에게도 권하는 바이다.

 

상냥한 수업

 

그들은 아이들이란 얽매이기 싫어하며 자유롭고 활발할뿐 아니라 섬세한 인간의 원형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존중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특별한 존재인 양 칭송하지는 않았습니다.
14p, 어린이 시 잡지 <기린>

고찰점: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좋았다. 특히 첫 문장과 이어진 문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고 얽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탓에 어른들은 아이를 그 틀안에 넣어버린다. 아이들도 충분히 복잡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괴로워할 줄 알고,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것도 단편적이지 않고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다. 그렇 건만 어른들은 '아이니까 단순하겠지', '금방 잊겠지'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버린다. 그렇게 치부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지는 않을까.

 

행동점: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창작물을 들여다 본다.

나는 스물두 살에 교사가 되었습니다.
(중략)
보통 교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반의 담임을 맡습니다. 어떤 직업이나 마땅히 거치는 말단 사원의 기간이 없는 셈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서운 일일입니다.
나는 전문 교육을 받은 교육 전문가다' 하는 생각에 빠져 있으면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사라져버립니다. 배움을 통해 변화하려는 지점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27p, 아이들의 가능성은 잴 수 없다.

고찰점: 이는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무언가 크게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고 방식이, 사상이, 행동 거지 따위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 나는 내 정신이 아직도 십 대 시절에 머물러 있다 자부할 수 있다. 변화하려 하지 않았기에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제까지 어른으로 접해왔던 사람들(물론 그들은 속내 또한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겠지만)이 얼마나 부던한 노력으로 어른으로서 행동해왔는지 경외스럽기만 하다. 한편으로 나 또한 누군가의 어른이 된다면 그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겉으로나마 어른으로서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행동점: 나를 바꾸는 방법을 생각한다, 어른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즐겨 예로 드는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행착오의 진폭이 클수록 어린이는 꿋꿋하게 성장한다.

이리저리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뇌는 발달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않습니다.
83p, 교육의 두 바퀴

고찰점: 멋있는 말인 동시에 씁쓸하기도 하다.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시행착오란 게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게 많아지는 시대에서 도전은 도박이 되고, 작은 걸음도 쌓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매몰비용이 되고 만다. 넘어졌다 일어서는 게 말은 쉽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일어난 본인보다 넘어졌던 과거를 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넘어져 있을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이제는 적지는 않다.

 

행동점: 무어라 적기 어렵다. 안일하게 찍찍 동사를 적고 있지만 이것만큼은 그것도 쉽지 않다. 시행착오를 해본다. 남의 시행착오를 관대하게 본다. 겨우 그 정도로 되는 문제일까. 갑갑하지만 똑똑하지 못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님의 수업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출발한 독사(doxa, 플라톤이 두 번째 단계의 지식으로 분류한 것으로,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상식적으로 품게되는 견해를 말한다)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독사는 참된 인식보다 낮은 주관적인 인식을 뜻하는데 쉽게 말하면 빌려 온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사를 깊이 생각한다. 곧 빌려 온 지식을 벗겨 낸다. 그 과정이 하야시 선생님의 수업입니다.
127p, 인간에 대한 수업

고찰점: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 생각이지만 결국 내가 적고 있는 모든 게 독사의 영역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다. 그런 한 편으로 그렇게 빌려 온 지식을 벗겨 낸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하야시 선생님의 수업이라도 한 번 듣고 싶을 정도로.

 처음엔 단순히 글로 배운 걸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독서노트들을 쓰면서도 마치 뭐라도 된다는 양 행동점들을 나열한 것들도 그렇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정말로 그런 것들을 행동하긴 했나? 싶어진다. 또 쓰면서도 깊게 생각나지 못하고 단지 고찰점의 요약마냥 간단한 동사를 던지고 만다. 이래서는 안 되겠지 싶다. 그런 가벼운 행위가 되려 고찰을 가로 막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한동안은 또렷히 떠오르는 게 있을 때만 행동점을 적어 볼까 싶다.

아무리 지식을 쌓아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쓸모없을 뿐 아니라 남을 얕잡아 보거나 남의 불행을 밟고 올라서서 지위나 재산을 얻으려 하거나 자연을 파괴하거나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의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교육은 모든 생명에 쓸모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170p, 소중한 생명들 속에서

고찰점: 어떤 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쓰는 일일까.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적혔다는 감개는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게 상냥함이란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이 책에는 그런 바람이 잔뜩 담겨 있다. 또 변화를 위한 단서도 여럿 실려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언젠가 이런 글을 써보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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