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이 미치는 여파
현실이 작품의 여운에 침범할 때가 왕왕 있다. 현실적 사정에 따른 작품의 변형, 작가나 제작진의 입방정, 혹은 주위의 평판마저도. 익히 알려진 것처럼 <100일 후에 죽는 악어> 또한 이 경우에 속한다. 완결이 나고 한참 여운에 젖어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숱한 현실이 몰려왔다.
한 달만 좀 참지 그랬어…… 하는 생각은 당시에나 지금에나 하고 있다. 단지 억지로라도 그런 논란을 제외하고 본다면 <100일 후에 죽는 악어>는 결코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기사 나쁘지 않은 작품이기에 그만큼 인기를 끌고 상품화도 가능했던 걸 테지마는.
<100일 후에 죽는 악어>라는 직설적인 이름처럼, 이 작품은 악어가 죽기 100일 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병으로 고생하거나 노환으로 살 날을 앞둔 어르신하고는 경우가 다르다. 악어는 아르바이트나 간신히 하면서 꿈을 찾고 있는 소년에 가까운 청년이다.
작품은 100일 뒤에 악어가 죽을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시작한다. 반대로 100일 뒤, 그러니까 악어가 죽고 난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다. 보통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는 작품들이 죽은 뒤 이야기만을 묘사하거나 전후를 모두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제법 독특한 경우이지 싶다.
그런 만큼 악어의 일상이 특별할 건 없다. 언제 받을지 모를 물건을 예약하고, 꿈을 기약하고, 미래를 그리며 인간 관계를 가진다. 우리도 당장 하고 있는 일이지만 밑에 적힌 죽음까지 앞으로 며칠이란 문구만이 그 의미를 다르게 한다. 독자부터가 마치 악어의 지인이 된 것처럼 그 죽음의 여파를 경험하게 한다.
죽음의 여파.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죽어야 했는가. 그런 생각 따위가 그렇다. 물론 이는 나의 개념이고 나의 생사관이다. 단지 죽음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리란 건 누구나 매한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림도 단순하고 내용도 길지 않지만──덕분에 돈값 못한단 생각도 든다──마냥 가벼운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얼마 전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 나를 비롯해 누구도 그렇게 잃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사람이었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자랑하던 사람이 다음 달에 자취를 감추었다. 주위에 감도는 분위기는 부채감 그 차제였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고, 왜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모두가 알 겨를이 없었다.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이는 내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을 적의 이야기다. 내가 할머니와 가진 기억은 내가 할머니의 입에 딸기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이 또한 아무도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다.) 물론 그럴 리도 없지마는 어린 나는 이따금 그 딸기를 떠올리고는 했다. 그 작은 딸기 하나가 할머니의 몸 어딘가를 안 좋게 해 죽게 만든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어린 나름대로 느낀 모종의 부채감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에 담긴 것 또한 그런 부채감의 덩어리다. 가볍게 툭툭 던진 말이나 행동이 묘하게 꽂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누군가가 죽은 뒤, 누군가와 나눈 추억을 곱씹으며 그 부채감을 하나하나 맛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아이러니함이나 덧없음도 그런 무게를 더하는 덤이 된다.
이와 같은 부채감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는 독자 나름이리라. 적어도 나는 그런 부채감을 느끼는 게 나 하나가 아니리라는 위안으로 봤다. 무언가 조금 어깨에 쌓인 채무를 털어 놓은 기분도 들었다. 만약 누군가의 죽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별개로 책으로 접하기에는 미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위에 말한 분량이나 금액 이야기도 그렇지만, 실시간 컨텐츠를 한 번에 몰아보는 이상은 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으리라. 이제와서는 도리도 없는 일이지만 역시 트위터로 하나하나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 정도는 든다.
Ps. 작품과 별개의 이야기지만 본래 독서노트에는 교양서만 쓰고 만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 장르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단지 책을 읽고 무언가 이 감정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굳이 적어보았다. 물론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는 소설이나 만화도 다뤄보려 한다. 단지 내용 필사는 단지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옮겨 적는 정도로 그치려 한다.
100일 후에 죽는 악어
농담이라도 그딴 소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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