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제목이 우습긴 하다. 제목 자체가 우스운 게 아니라 이 책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나는 욕심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누군가가 시간가 기회를 줄 테니 전부 말해보라며 무대에 세우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할 묘한 자신도 있다.
단지 그런 물욕을 쫓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일전에 '앞으로의 교양'이란 책을 잘 읽었는데 그 안에서 작가의 전작인 '물욕 없는 세계'가 종종 언급으로 등장했다. 단편적인 언급이 재밌어 보여 구매하게 된 게 읽게 된 계기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욕심을 줄이는 법 내지 욕심을 줄여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책은 물건과 물욕을 등지고 경험과 가치관을 우선하게 된 요즘 세대의 소비를 쫓으며 시작한다. 그런 물욕과 물질 담론은 이윽고 현 시대의 자본주의 점검으로 넘어가고, 마무리로 물욕이 없어질 세계를 살기 위한 철학도 짧게 집고 넘어간다.
'앞으로의 교양'도 그랬지만 '대충 이 정도면 알고 있겠지?'하고 설명을 할애하는 부분이 있어 조금 알기는 어려웠다. 특히 자본주의 담론 쪽은 거의 글자를 쫓는 수준으로 밖에 읽지 못 했다.(실제로 아래의 인용만 봐도 백 페이지 가량 뛰어버렸다.) 하지만 관찰로 시작되어 철학으로 마무리 되는 글의 완성도가 굉장히 좋았다. 이런 책을 쓰고 싶다. 그런 욕심 내지 부러움마저 드는 책이다.
또 이야기의 흐름은 어찌 되었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도 되기는 한다. 제목값을 못하지는 않는 것이다. 때문에 읽으면서 아쉬웠던 유일한 점은 내가 이 책을 너무나도 늦게 접했다는 점뿐이다. 특히 코로나 19가 가져 온 새로운 소비 현상 등을 볼 때는 묘한 씁쓸함마저 느꼈다. 물론 이는 그만큼 좋은 책이란 뜻이리라. 만약 물욕, 라이프 스타일, 자본주의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독서를 권하는 바이다.
물욕 없는 세계
라이프스타일 붐이란 소비사회의 성숙을 가리키는 것이며 오늘날 사람들은 단순히 상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상품을 둘러싼 이야기나 생활의 제안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업은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얽힌 라이프 스타일을 팔아야 한다. 이런 생각은 현재 기업 마케팅 담당자나 광고 담당자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14p, '삶의 방식'이 최후의 상품이 되었다.
고찰점: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아, 이런 거였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이 문장은 흘려 보낸 광고를 다시 보게 했다. 이를테면 전자기기의 광고가 그렇다. 이전과 달리 컴퓨터나 핸드폰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강력한지를 정면으로 내세우는(아예 첫 공개하는 이벤트라도 아닌 이상) 광고는 많이 줄어든 거 같다. 대신 이 기기를 구입하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내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삶에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광고한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편집하고 핸드폰이나 태블릿 광고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부분이리라.
개인적으로 친근한 경우를 찾는다면 아마 닌텐도의 닌텐도 스위치 광고지 않을까 싶다. 개별 게임 광고면 또 모를까, 매 분기마다 제작되는 종합 광고는 항상 다른 생활에 스위치가 함께 하는 내용을 그린다.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여행 가서 짬짬히 한 판, 또는 얼굴을 보지 못하는 가족이 게임에서 만나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수치나 게임보다 '스위치를 사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생활 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내겐 "왜 이렇게 만들까"하는 의문을 덜어주는 한 문장이기도 했다.
행동점: 광고와 상품에 담겨 있을 라이프 스타일을 고찰해본다. 물건을 살 때에 단순히 물욕 때문인지, 구매가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변화를 줄지 고민한 후 구매한다.
(전략) 저는 이전에 '언젠가는 부업을 허용하고 주에 3~4일 쉬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 말은 최종적으로는 회사를 커뮤니티화하겠다는 말인데요, 주에 3~4일 쉬면 이틀 쉬는 사람보다 월급이 적어질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점 경영이나 그림 그리기, 서핑하기 등, 여러가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후략)43p,'삶의 방식'이 최후의 상품이 되었다.
고찰점: 이건 요 n년 동안 국내서도 자주 이야기되는 n잡의 이야기와 겹쳐 보였다. 물론, n잡의 불안전성이나 저임금 노동을 감추기 위한 빛 좋은 개살구로 여기는 반응이 있다는 건 안다. 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도 있다. 단지 거듭되는 Ai 발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일자리 감소와 기업 및 인플루언서의 갖은 구설수, 또 국내외 사회서 대두되는 인문학 부재의 문제 등을 생각해 보면, 미덕과 자신을 갈고 닦는 일과 그 시간의 필요성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
모두에게 제각기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와 시간을 허용되면서, 자존감 및 교양을 쌓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사회가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n잡(혹은 n개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여러 방면의 소비와 도전을 반복하는 걸 통해 경제 흐름에도 새로운 공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앎이 얄팍하여 검증할 도리는 없으나 그러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는 가져 본다.
행동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라이프 스타일을 점검해 본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보고, 실현 가능성과 그 이후에 변화돼 있을 생활상을 생각해 본다.
(전략) 대형 명품 브랜드가 위세를 떨치는 시대가 끝나고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작은 브랜드가 다수 생겨나는 시대가 될 것이라 확신해요. 소비자들 스스로 더 마음을 울리는 소비로 원점 회귀하겠죠.
77p, 두 초강대국 속 물욕의 행방
고찰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TV 방송사와 개인 방송이었다. 영상 매체는 공급이 다양해지면서 개인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TV 시청률이 높아도, 또 구독자가 200만이든 300만이든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시대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게 이미 너무 많아서, 모르는 것까지 찾아 보고 다시 알아가는 건 너무 귀찮고 빠듯한 일이 되어버렸다.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란 이미 우리가 구독하고 있는 숱한 유튜버들과 다를 바 없으리라.
소비 또한 그런 매체와 다를 게 없는 시대가 올까. 오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나 공급은 날로 쉬워져 가고 있다. 좀 더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옮겨 가는 느낌이다. 모든 생산이 간편해지는 그 시대가 오면, 물건으로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건 먼 옛날의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닌빠'도 그때 쯤이면 졸업하게 되겠지.
행동점: 개인화를 의식해 보자. 모두에게 사랑 받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된다면 나를 사랑해주는 일부를 위해 열심히 할 줄 알아야 하리라.
(전략) 산업혁명 이전 사람들은 자기의 소유물을 대부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물건에는 다양한 추억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절대 쓰레기더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경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과거 자기가 손으로 만들던 시절에는 물건을 바로 버리는 일이 드물었을 겁니다. 그 물건에는 물건을 만든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물건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쓴다면 쓰레기더미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든 물건은 다시금 사람의 기억을 되돌리기 때문입니다.
107p 물질과의 새로운 관계
고찰점: 듣고 보니 그렇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가정 시간에 만든 후즐근한 필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물론 쓰지는 않고 가지고만 있다. 단지 이건 내가 근본적으로 연필이나 노트와 거리가 먼 게으른 인종이라 그렇다. 즉, 이 필통 말고는 딱히 마땅한 필통도 없다는 소리다. 서랍에 있지만 버리지는 않았다. 확실히 쓰레기는 되지 않았다.
비슷하게 프라모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이유(주로 금전)로 더는 자주 만들지 않지만 한 번 만들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 내가 도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먹선을 기가 막히게 넣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게이트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초등학생이 만든 거나 다름 없는 가조립 프라모델인데도 애착이 가 버리지 못한다.
만약 만물이 이런 필통이나 프라모델만 같다면. 아마 쓰레기는 죽기 전에 단 한 번만 내놓으면 되지 않을까. 그야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반복 되는 쓰레기 처리 비용 정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쓰레기 문제와 그 해결법 이야기는 흔히 듣지만 이런 제안은 또 처음이었기에 제법 신선했다.
행동점: DIY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본다. 손재주를 가져본다.
(전략) 저는 이 경험에서 그저 강하기만 한 것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쇠퇴하는 것과 약한 것, 주류가 아닌 것이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159p,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고찰점: 쇠퇴한다는 건 이미 한 번은 강점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비슷하게 약하고 주류가 아닌 것은 아직 개척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관심을 받지 않기에 더욱 유연해질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농업을 들었는데, '농업은 나 하기 나름'이라며 농촌을 찾는 미국과 일본 젊은이들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구속되기 싫어하는 젊은 세대라면 매력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말라는 말도 떠오른다. 하지만 요는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본다. 자기 하기 나름이란 말은 그런 주체성을 똑똑히 보여주기도 하니까. 변화를 바라고 또 변화로 모종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면 강한 데 매달리는 게 아니라 약한 것을 강하게 끄는 힘이 필요로 하지 않을까.
행동점: 쇠퇴한 걸 되돌아 본다. 흔들리지 않는 줏대를 가진다.
현재 진행 중이며 점차 뚜렷해지는 '물욕 없는 세계'는 가난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근원적인 풍요와 지성을 누리는 세계가 될 것이다. 다만 '무엇을 행복이라고 여길 것인지' 하는 가치관의 대립은 여태보다 심해질 것이다. '보이는 가치=경제적 가치'를 믿는 보수파와 '보이지 않는 가치=비경제적 가치'를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간의 싸움이 여러 국면에서 발생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자문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뭘 원하는가?' 하고 말이다. 이 질문의 해답을 경제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대답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다가오고야 말 '물욕 없는 세계'의 승자가 될 것이다.
243p, 자본주의 너머에 있는 행복을 위해
고찰점: 부라는 명확한(혹은 그렇게 보이던) 척도가 사라진 세계에서 사람은 무엇을 행복으로 규정할 것인가. 친구가 많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 몰두하는 사람, 많은 일을 하고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는 넓은 사람. 즉시 떠오르는 것도 적지 않고 내심 우열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리라.
하물며 나 자신이 떠오른 어떤 것에 속해 있단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어느 쪽도 노력하곤 있다지만 잘 되지 되지 않는다. 단지 좀 더 열심히 해볼까란 생각 정도는 들었다. 아직 '다른 언어'가 무엇인지는 또렷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곳을 향해 다가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정도는 품어도 되리라.
행동점: '다른 언어'가 될 행복의 기준을 생각해 보자.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노트] 여자 없는 남자들 (0) | 2022.05.06 |
---|---|
[독서노트] 상냥한 수업 (0) | 2022.04.10 |
[독서노트]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0) | 2022.02.28 |
[독서노트] 100일 후에 죽는 악어 (0) | 2022.02.07 |
[독서노트]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창작법 (0) | 2022.01.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