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난이도가 오르기 시작한다
몇 달 전부터 진행 중인 문화유산 스탬프 투어.
세 개 까지는 정말 쉽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종묘.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하루면 쫙 찍을 수 있죠.
전주는 마침 친구가 내려가 있어서 겸사겸사 찍을 수 있었고요.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마지막 상품을 얻으려면 총 20개를 찍어야 하니까요.
그나마 수도권에 열 개 가량이 있기는 하지만 다 찍으려면 말 그대로 전국 투어가 필요해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못 한다고 단정 지으면 재미 없죠.
일단 지하철과 버스로 갈만한 수도권부터 노려 봅니다.
인천... 수원 화성... 남한 산성.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예전에 가족들과 가본 추억이 있는 남한 산성행을 택합니다.
택한 루트는 중앙선-분당선-버스.
막상 가다보니 아 산성역으로 갈 걸 했지만요.
세계문화유산센터
집에서부터 이래저래 두 시간 가량 걸려 도착합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지쳐서 몬스터 한 캔을 비워줍니다.
요즘은 뭘 하더라도 에너지 드링크 없이는 어렵네요.
구경을 먼저 할까...
하다가 도장 미리 안 찍어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그쪽부터 향해줍니다.
관광도 관광이지만 도장이 진짜 목표니까요.
조금 걷다 보니 한옥 건물이 하나 튀어나옵니다.
아무래도 버스 정류장 주변엔 음식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요.
관광지구나 싶다가 저 멀리서부터 한옥이 보이니 괜히 반갑습니다.
옛날 군인들은 이런데서 도수체조라도 한 걸까...
멍하니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둘러 봅니다.
전주서도 그랬지만 몇몇 건물들은 한옥으로 돼있습니다.
사실 경찰서나 소방서 같은 건 본 것도 있고 요즘 추세도 있는 덕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교회가 한옥으로 돼있는 건 좀 신기하네요.
어쩌면 좀 더 자주 볼 수도 있었던 형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됐든 길을 쫄쫄쫄 따라서 가봅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는지라 우산을 폈다 접었다 성가시네요.
그렇게 도착한 세계유산센터.
사실 책자로 이름만 봤지 미리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박물관 같은 데려나... 했는데 전혀 아니라서 당황했네요.
사무실 내지는 안내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잘못 찾았나 하고 주위를 배회하다 그냥 여쭤보기로 합니다.
스탬프 찍으러 왔는데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여기가 아니라네요?
순간 뇌정지가 와서 책자까지 보여 드립니다.
직원분들끼리 무어라무어라 말을 하더니 그건가저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십니다.
그렇게 안내 받은 도장의 상태.
정말 덩그러니란 말이 딱 어울리네요.
그동안 이렇게 전달이 안 되거나 대충 놓인 적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네요.
보통은 도장이랑 같이 받침도 있고 펜도 있는데 말이죠.
듣자하니 놓으래서 그냥 놨다고 합니다.
이걸 참 뭐라 해야 할지...
그래도 이걸로 다섯 번째 스탬프까지 완성.
곧 한 바닥도 완성이네요.
6월 말 쯤 찍은 거니 이전 거랑 한 달 언저리 차이나긴 하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페이스지 싶습니다.
행사 종료 전에 다 찍을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길을 되돌아 가다 보니 성당 하나가 나옵니다.
그냥 성당도 아니고 성지라네요.
바깥에 있는 순교자 현양비를 보면 천주교 박해를 다루고 있는 듯하네요.
이렇다할 종교는 가지지 않았지만 이런 걸 둘러 보는 건 좋네요.
특히 요즘 읽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글에서 종종 키리시탄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얼마 전에 본 자산어보에서도 정약전과 정약용이 유배 가는 걸로 시작하기도 했고요.
언제 한 번 교양으로 공부해보고 싶기도 한데 맨날 생각만 하네요.
성지를 뒤로 하니 어느덧 점심 시간.
뭐라도 먹어야지... 싶은데 주위엔 죄 백숙집들.
일인 메뉴가 없진 않지만 역시 주력 아니란 게 좀 걸립니다.
후술하기도 하겠지만 놀러 나오면 먹는 게 참 고민이네요.
일단 아침을 늦게 먹기도 해서 카페에서 가볍게 때웁니다.
카페가 2층에 있어서 그런지 뷰가 좋네요.
못난 사진으로는 티도 안 나지만...
음료랑 과자야 평범하기 짝이 없어도 부슬비 소리랑 같이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제법 기분이 좋네요.
마침 조금씩 날이 개는 참이라 조금 느긋이 있어 봅니다.
본격적으로 구경 시작
날이 조금 풀려서 다시 바깥으로 나와봅니다.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역시 행궁 쪽.
조금 북적인가 싶더니 판넬을 세워놓고 뭘 하고 있네요.
뭔가 하고 보니 6.25 행사인가 봅니다.
매번 잊고 살기 쉽상이니까 이렇게라도 환기 시켜주는 건 좋네요.
행궁도 무료 관람이 가능하네요.
종묘나 창덕궁과 달리 24세 무료는 없어도 충분히 다양하네요.
경기도민이라서 무료표를 받고 안으로 향합니다.
들어 가 좀 걸으니 전시실이 나옵니다.
남한산성 연표니 유니세프 등등의 이야기가 있네요.
다 좋은데 좁고 천장이 낮아서요.
협소한 걸 좋아하지 않는지라 가볍게 둘러만 봅니다.
전체적으로 안팎으로 나무가 많은 게 좋네요.
도시 한복판인 경복궁 창덕궁에 비해 좀 느슨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와중에 본래 기능 덕에 으레 있을 건 또 다 있으니까요.
넓다 보니 한 번으론 놓치는 것도 많고 딴길로 새기 쉬운 두 궁에 비해 좀 더 진득히 볼 수 있는 것도 좋네요.
앉아서 이긴다는 게 묘하게 재밌네요.
이런 것도 느긋히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가장 뒤쪽까지 올라가니 소나무뜰에 정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네요.
이런 데서 느긋이 책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기쁠 텐데 말이죠.
잠시 주변을 두르며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전쟁통에 피난 온 와중에 난 그런 건 모른다는 양 뒤뜰 정좌서 뒹굴뒹굴 삼국지를 읽는 어린 왕손.
깜짝 놀라서 왕손을 찾는 궁녀와 신하들.
거리 탓에 소리는 들리지 않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아이...
역사에 무관하게 상상은 뭐라도 재밌는 법이니까요.
다만 실제로는 활을 쏘기 위한 곳이었다네요.
이따금 상상만 앞서다 틀리면 묘하게 아쉬워집니다.
옆으로 빠져 좌전 쪽으로 올라가 봅니다.
살짝 높이가 있어 하늘과 등선과 행궁이 한 번에 보이는 게 이쁘네요.
옆길로도 빠질 수 있는 모양이지만...
정돈된 길도 힘든 마당인지라 뒤로 물러납니다.
성곽 걷기
소나무 숲을 좀 걷다 성곽쪽으로 빠지기로 합니다.
여름이 되기 시작하니 본격적으로 날벌레가 꼬이네요.
문득 드는 생각인데 옛날 사람들은 모기 대책을 어떻게 했으려나요.
어디 앉아서 시 같은 거라도 짓다 모기 꼬이면 상당히 짜증날 거 같은데 말이죠.
물파스 같은 거도 없을 거고...
사실 올 때까지만 해도 성곽을 다 돌아보려 했는데...
약도를 보니 택도 없지 싶네요.
아무래도 한 서너 번은 왔다 갔다 해야 겨우 다 돌아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몰랐는데 세 지역구에 걸친 것도 재미 있네요.
일단 되는 대로 걸어보기로 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역시나 오르막길입니다.
뭔가 요즘 들어 어디 가기만 하면 죄 오르막길만 나오는 기분이네요.
그래도 포장된 길인지라 별 어려움 없이 슥슥 걷습니다.
성벽 틈으로 성벽 너머로 보이는 도심풍경.
다 좋읃데 설명문이 벗겨져 좀 읽기 힘드네요.
관리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렇게 남문에 이릅니다.
사실 있기는 성곽에 제일 오래 있었는데 죄 길 밖에 없어서 뭐라 쓸 글이 없네요.
단순히 필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은 남한산성 말고도 여행기가 두루 재미 없게 써지는 느낌이로 실제로 고민이긴 하네요.
뭔가 여행기 쓰는 법 책이라도 읽어야 할까요...
지금은 단지 쓰다보면 는다란 말만 믿고 있습니다.
깃발은 항상 옳습니다의 한컷.
더 돌아볼까 싶었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걸음을 돌리려 합니다.
행궁 쪽이 더 재밌었던지라 그쪽으로 빠지는 길을 선택.
그렇게 엉뚱한 길을 헤매다...
흠흠.
항상 일이 잘 풀린다 싶으면 이 모양이란 말이죠.
결국 한껏 헛걸음을 하여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 옵니다.
그래도 오르막길은 걸음만 돌리면 내리막길이 되는 법.
돌아가는 길은 이래서 즐겁나 봅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보인 어쩌구의 눈...
이쯤 되면 어디까지 가야 안 보이나 싶을 정도네요.
누가 알아 본 거 없으려나.
내려오니 시각은 저녁 시간.
단지 여름이 되었는지 밝기만으론 뭘 알아보기 힘드네요.
이번에는 정말 저녁을 먹어야지...
해도 주위는 역시 백숙 뿐.
그나마 1인상이 될 거 같은 곳은 또 제법 값이 나갑니다.
이래저래 고민을 좀 해봤지만 결국 시내 가서 먹기로 결정.
요즘 들어 주머니 사정이 곱지 않네요.
산성역 입구서 밥 먹을 곳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그런데 밥집은 안 보이고 요상한 것만 눈에 들어 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여점이라니...
동네 대여점은 벌써 사라진지 5년이 넘었으니 참 간만입니다.
들어가 볼까 싶었지만 괜히 책 사고 싶은 욕심만 생길 거 같아 뒤로 합니다.
저녁은 중국집 우동.
놀러가기 전후로 중국집 우동에 관한 이런저런 글을 봤으니까요.
먹어 볼까 벼르다 이번 기회에 먹어 봅니다.
맛은... 매운맛 빼고 계란국 넣은 거 같은 짬뽕이네요.
없진 않지만 그냥 먹던 거 먹을 거 같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랑 다른 루트로.
여름은 역시 귀가 때에도 밝아서 좋네요.
타협
돌이켜 보면 평소보다 적당히 끊고 온 게 많은 거 같네요.
엉성한 도장 찍는 장소도 그런갑다...
성벽도 대충만 돌고 오고...
음식도 남한산성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중국집이나 다녀 오고...
그래도 살다 보면 타협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흔히 완벽주의자들은 실패할 걸 두려워 해서 시작도 안 한다니까요.
어중간하게 끊고 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절반은 다녀왔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글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도 벌써 한 달이 넘은 일이죠.
본디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7월에 이래저래 일도 많아서요.
어차피 대단한 내용도 없는데 쓰지 말까...
뭐 얼마나 재밌는 내용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적어 봅니다.
계속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다, 그런 말을 믿어 보고 싶습니다.
요즘 글 쓰는 일로 고민이 많네요.
독서량도 늘리고 글 쓰는 것 자체를 늘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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