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어린애 같이
자라다 보면 다들 각자 길로 가기 마련입니다.
그르다 보면 원래 살던 곳에서 벗어나는 일도 왕왕 있죠.
그런 와중에 저 혼자만 줄곧 똑같은 곳에 있습니다.
하물며 가벼운 "놀러 올래?" 한 마디에 즉답해 쫄래쫄래 내려가기까지 합니다.
어쩐지 저 혼자만 어린애로 남아 있는 거 같네요.
감상에 젖는 건 어찌 되었든 이번 목적지는 전주.
당연히 이전에 찾아 본 적은 전무.
안 그런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번번히 세상 참 좁게 살았구나 싶습니다.
사실 돈이 궁한지라 평소에는 버스를 애용하는 편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거리도 있고 해서 과감히 KTX를 선택.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타고 간만에 타는 거 같네요.
용산역을 돌아보니 지금은 손대기 애매한 것도 보이네요.
기분이 묘합니다.
기차 여행의 묘미가..
여하튼 그런 마당이니 기차 안에서도 이렇다할 감흥이 없네요.
줄창 노트북이나 하고...
역시 역방향은 탈 게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 정도 밖에 안 듭니다.
그렇게 대략 두 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전주.
다 좋은데 오자마자 사고를 칩니다.
위에 짐칸에 올려 놓은 우산을 두고 내렸네요.
부모님께서 챙겨주실 때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 말라 했던 게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어린애 맞네요.
그나마도 그걸 찾는답시고 다시 뛰어 올랐다...
칸을 잘못 타서 다시 뛰어 내리고;;
민폐는 민폐 대로 끼치고 결국 분실물 센터로 갑니다.
덕분에 회수하긴 했네요.
왜 이러고 사는지...
가는 날이 장날
여하튼 친구랑 합류하여 버스로 이동합니다.
친구 말로는 무슨 교회인지 성당인지가 이쁘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사 중이네요.
좀 아쉽습니다.
첫 행선지는 한옥마을.
조금 뻔한 느낌도 있지만 으레 그런 법이니까요.
먼저 전주를 찾아 본 동생의 "너무 기대 말라"는 말만 가슴에 새겨둔 채 주변을 둘러 봅니다.
확실히 동생 말처럼 관광지화가 너무 잘 되어 있는 느낌이긴 하네요.
사실 그마저도 가족끼리 오면 좀 즐겼지 싶은데...
아무래도 꼬추 친구끼리 오면 말이죠.
사실 전 남자끼리 왔다고 뺀다거나 그런 건 좀 아쉽지 싶습니다.
뭐 어때요, 같이 한복 빌려 입고 같이 탈 것도 타고.
그런 게 다 경험인데 말이죠.
막상 한 번 시작하면 재밌게 노는 게 남자지만 그 시작을 권하는 게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별 수 있나요. 언젠가 여친이라도 생기면 그때 즐겨봐야지.
평생 못 즐길 거 같습니다만, 예.
날도 더워졌겠다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물줄기를 따라 터덜터덜 걷곤 합니다.
사진을 잊었는데 길가에 수로가 있는 게 꽤 마음에 드네요.
어린 애들이 샌들 하나 신고 쫄래쫄래 걷는 걸 보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지나가는 길에 마침 서예관 같은 게 있어 잠시 들렀다 옵니다.
서예라 퉁쳐졌지만 시에 글에 그림에...
당시 예술가들은 고생이 많았지 싶습니다.
여하튼 한 바퀴 가량을 둘러서 시간은 11시.
군것질을 하자니 점심을 못 먹을 거 같고, 점심을 먹자니 이른 시간.
친구는 덕진 공원에 가보자 제안합니다.
여름이면 연못에 연꽃이 가득 피는데 굉장히 이쁘다나요.
곧장 둘이서 택시를 잡아 향해 봅니다.
그리고...
가는 날이 장날(2)이네요, 넵.
친구야 자주 가지 않으니 모를만도 하겠지만 택시 기사님 정도는 아셨지 않을까 싶은데... 크흠.
이래저래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발길 닫는대로 걸어 봅니다.
이거 먹나 저거 먹나 하는 와중에 들어 간 건 프렌차이즈 짬뽕집(?)이었습니다.
전주까지 가서 웬 프렌차이즈 짬뽕이야.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저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백반이나 먹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걸...
단지 그런 거치고는 굉장히 잘 먹고 나오긴 했습니다.
프렌차이즈 + 짬뽕하면 맵기만 이미지만 있었는데 적당히 칼칼한 게 좋네요.
(맵게 먹고 싶으면 조절할 수도 있고요.)
짬뽕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같이 나온 공기밥까지 말아서 잘 먹고 나왔습니다.
친구 녀석도 웬일로 잘 먹냐고 놀라네요.
언제 한 번 다른 지점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어찌 됐든 그렇게 밥을 먹고 다시 이동합니다.
여행이란 게 참 딜레마죠.
한 곳에 쭉 머물러 있으면 많이 못 봐서 손해.
그렇다고 돌아다니기만 하면 자세히 못 봐서 손해.
그런 게 꼭 인생 같기도 합니다.
여행이 즐거운 건 인생의 함축판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적으로 제 에고심 가득인 곳.
국립무형유산원입니다.
자꾸 있지도 않은 무형"문화"유산원이라 착각해버리네요.
기사님께도 몇 번이나 확인을 받았습니다.
목적은 몇 번인가 포스팅 했었던 스탬프 랠리의 일환.
별 대단치도 않은 일에 그 먼 전주 땅에서 친구를 휘두르나 싶지만...
애초에 전주에 내려 간 결심의 계기 중 2할 정도는 이거있으니 친구도 용서해주리라 믿습니다.
용서해...주겠죠?
문제는 (요즘 안 그런데도 없지만) 도장이 있을 법한 상설전시실인가가 잠시 휴장 중이었네요.
정원 구경을 하면서 달리 있을만한 곳을 찾아 봅니다.
전체적으로 터가 넓고 정원이 잘 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노는 분들이 많네요.
아이와 같이 물고기를 보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그나마 도움이 될만한 곳(이름을 까먹...)도 문이 잠겨 있네요.
다행히 가는 도중에 경비 초소가 있어 여쭤봅니다.
저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잘 알려져 있나?"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
시 기우였습니다.
그래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일처리가 좋네요.
상설전시장 2층에서 쾅 도장을 찍어줍시다.
근데 음ㅋㅋㅋ 잘못 찍었네요.
돌이킬 구석이 없는 건 아쉽습니다.
도장 찍는 곳엔 직원분들이 서너 명 가량 계셨습니다.
다들 묘한 표정으로 보시네요. 하필 손님도 없어서;;
그런 마당에 도장만 훽 찍고 가자니 어째 무안합니다.
더군다나 올라올 때 전시 보시나요? 도장 찍을 때 보실 거죠? 하는 데 묘하게 등도 떠밀립니다.
겸사겸사 전시도 구경하고 왔네요.
하긴 취지를 생각하면 도장 쪽이 "겸사겸사"가 돼야 할 테지만 말이죠.
무형 문화재라서 노래니 공연 같은 거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전시품을 보니 제작 기술 같은 거도 무형 문화로 치나 봅니다.
전체적으로 친근하니 좋네요.
창덕궁 같은 데도 이런 걸로 안 좀 채워 놓으면 좋을 텐데.
여하튼 전시장을 뒤로 합니다.
공연 같은 걸 볼까 했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네요.
걷다 보니 다시 한옥 마을이 나옵니다(?).
이제 보니 굉장히 가깝더라고요.
네, 그 가까운 길을 이리 가고 저리 가느라 택시비를 만원 가량 태웠습니다.
엄마랑 동생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네요.
친구가 벽화 마을(?)인가 있다 해서 거기로 가고 있었는데...
넋 놓고 이야기하다 어영부영 다시 한옥 마을로 돌아갑니다.
왜 이러고 사는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저녁 시간이 돼서 친구가 생활하는 곳으로 갑니다.
밥이 잘 나온다나요.
학생 식당에서 먹을 수 있으면 괜찮고 안 되면 만다는 심정으로 가봅니다.
근데 글 쓰면서 안 건데 주소가 귀엽네요.
콩쥐팥쥐로... 대체 왜 콩쥐팥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입구에서 청경 아저씨 왈.
구경은 되는데 기숙사나 학생 식당 출입은 어렵다네요.
어디서 배달 시켜 먹거나 나가 먹으랍니다.
그래서 일단 구경만 하기로 합니다.
농수산 대학 답게 실습 결과물이 직관적으로 보여서 좋네요.
조경이나 농업이나 학생들이 열심히 한 결과물이니까요.
괜히 속으로 비교해서 살짝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잘 몰랐는데 과일 같은 건 원래 나무보다 작게(? 설명을 들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키운다네요.
여러모로 생각한 거랑 살짝 이미지가 달라서 놀랐습니다.
동화책에서 보던 사다리에 올라 사과 따고 이런 거랑은 시대가 다른 거겠죠.
농담 삼아 서리 운운했는데 아직 먹지는 못 한다네요.
잘 안 보이지만 드론 교육장인 듯합니다.
보면서 게이머들이 드론을 잘 다루네 어쩌네 했었네요.
관심은 있긴 한데 은근히 값도 나가고 제약도 많다니 조금 접어두고 삽니다.
여하튼 이래저래 학생 식당 도착.
이제까지 줄창 끌고 다니기도 했고, 학교가 접근성이 썩 좋아 뵈지 않아 여기서 헤어집니다.
친구도 나갔다 들어 오면 번거로울 테니까요.
곧 올라오기도 하겠다 선선히 헤어집니다.
정류장앞 멍뭉이.
큽니다 무섭습니다...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합니다.
사실 오는 기차표만 끊었거든요.
당일치기로 할지, 모텔 잡아 하룻밤 자고 더 놀다갈지.
가족한테도 즉흥적으로 정할 거라 말해두고 나왔습니다.
사실 더 놀곳도 많고 더 놀고 싶기도 했는데...
돈도 돈이고 아직 시간이 많이 늦지 않은 거 같아(ㅋㅋㅋ) 그냥 저녁 먹고 집에 갈 생각을 합니다.
네, 뭐. 결론부터 말하면 나중에 후회했지만요.
저녁을 어서 먹을까 하다 또! 한옥마을로 갑니다.
빙글빙글 쳇바퀴 도는 거도 아니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런 건가 싶습니다.
사실 좀 더 정확히는 그 옆에 시장이 있대서 거기로 가려던 건데...
아직 저녁 메뉴도 안 정했거든요.
백반 vs 비빔밥을 고민하다 후자를 택해서 리뷰 많은 집이 한옥마을에 있었던 탓도 있습니다.
비빔밥...
전주=비빔밥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은,
어차피 입에도 안 맞을 텐데 비빔밥 먹지 마.
먹지 말라는 동생의 조언.
즉 청개구리 심보입니다.
아, 변명을 해보자면 전주 비빔밥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 입맛이 완전 초딩 입맛이라서요.
전주 가서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냔 거죠.
하지만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지는 법.
대로변이란 게 살~짝 걸리긴 하지만 리뷰수를 믿고 찾아가 봅니다.
혹여 한 사람이라 안 받아주실까 했는데 그런 건 없네요.
육회 비빔밥과 떡갈비를 시켜봅니다.
차림 구성입니다.
시킨 거도 별로 없는데 반찬이 많아서 좀 놀랐네요.
문제는... 비빔밥은 비빔밥이군요.
결국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입맛은 극복하지 못하나 봅니다.
끝내는 싫어하는 채소를 옆으로 슥슥 치우고 육회만 골아 먹었으니...
누가 보면 왜 온 거야 싶겠죠.
다만 떡갈비는 달짝지근하면서 고기가 잘 씹히는 게 맛있네요.
전에 캠핑 갔을 때 먹은 완자도 생각납니다.
두께는 더 얇은데 씹는맛이 더 좋은 게 신기하네요.
이것만으로도 먹으러 오길 잘 했지 싶더라고요.
그와 별개로 밑반찬 잡채가 진짜 맛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메뉴에 있었던가 없었던가...
마지막으로 카카오 프렌즈샵을 들릅니다.
동생이 전주 초코파이 노래를 불러서요.
원래는 그냥 가게서 사오려 했는데 카카오 프렌즈에서도 카카오 포장된 채로 팔길래 이쪽으로 구매합니다.
조금 뜬금 없을지 모르겠는데, 전주 여행 중 가장 만족한 게 이 카카오 프렌즈샵이었네요.
IP 사업이라고 할까요.
캐릭터 컨텐츠 사업에 좀 관심이 있는데 카카오 프렌즈가 제법 잘 하는 편이죠.
그런 데다가 이렇게 지역 밀착형 컨텐츠까지 있으니 좋네요.
좀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해줬으면 하네요.
언젠가 반대로 카카오 프렌즈 때문에 어디로 놀러간다! 하는 문화도 정착되면 좋을 거 같고요.
여하튼 다시 전주역으로 돌아와 KTX를 탑니다.
사실 어두워져서 이때라도 선택을 돌렸어야 했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좁은 좌석에 불편히 앉아 있으니 피로가 몰려 오더라고요.
이번에 결심한 게, 어디 지방에서 놀 때는 반드시 하룻밤 자야할 거 같습니다.
당일치기 여행도 뭐 제법 매력이 있겠지만... 이젠 체력적으로 힘드네요.
집에 돌아오니 아슬아슬하게 하루가 넘지 않은 시간.
가족들도 아직 자지 않아서 야식 삼아 초코파이를 나눠 먹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그래도 일찍 돌아오길 잘 했다 싶긴 했네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 같습니다.
후회와 여행
안 그런 여행이 있을까 싶지만...
전반적으로 후회가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검색 좀 해볼걸.
점심으로 백반이나 먹을걸.
비빔밥 먹지 말걸.
좀 더 돌아볼걸.
하룻밤 더 자고 갈걸.
그뿐일까요.
친구하고도 엇비슷한 이야기만 합니다.
고등학교 때 어쩌고.
대학 다니면서 저쩌고.
이랬으면 저랬으면.
그나마 여행은 낫습니다.
전주야 또 오면 되죠.
차비야 비싸지만 한 번 정도 기회가 없을까요.
인생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뭐...
중요한 건 마음 먹고 열심히 하는 거겠죠.
다시 전주에 오자고 마음 먹은 것처럼요.
그럼 분명 인생도 여행과 다를 바 없으리라 믿습니다.
...라고 말은 합니다. 말만 합니다.
해야 할 게 한참 많은 와중에 정작 머릿속으론 다음 도장은 어디서 찍을까 생각만 하네요.
아, 여담인데 전주엔 이거 한글판 놓여 있었습니다.
역시 만들었는데 다 가져 간 모양이네요.
가져왔는데 귀찮아서 안 찍어놨네요.
언제 한 번 찍어놔야겠습니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개인적으론 부여 쪽이 와닿네요.
실은 친구랑 한 번 갔는데 그땐 이런 이벤트를 안 하고 있어서요.
한 번 혼자 느긋히도 걷고 싶고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좀 후회가 적은 여행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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